자연재개발 – 에코시스템 디자인의 시대

우선 구조물 디자인 경쟁에서 벗어나야
얼마 전 식물적용학을 수강하는 젊은 조경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질문을 받았다. 유럽의 출중한 식재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차례로 분석하고 있는데 아무리 식물적용학이라고 해도 구조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 생소하다는 질문이었다. 유럽 정원디자이너들은 구조물을 디자인하지 않는지? 정원에는 물론 담장, 연못, 분수, 앉을 곳 등 건축적 요소가 있고 조각 작품도 자주 세운다. 다만 이들을 식물로 풍성하고 아름답게 감싸 건축적 요소와 식물이 서로 윈윈하는 상승효과를 노리는 것이 관건이다. 구조물 디자인의 기준은 식물과의 어울림이다. 기능상 구조물이 필요한 경우, 기왕 만드는 것이니 기능에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무 기능이 없는 구조물 그 자체를 디자인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이 경우 예술 작품으로 인정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고 그래서 별도로 조형예술가에게 의뢰하는 것이 정석이다.

기후위기가 지구를 덮치고 있는 지금, 정원과 공원이 기후위기 극복의 거점이 되어야 할 시기에 아직도 구조물 디자인이 관건이 된다는 사실이 내게는 다소 충격이었다. 도시는 구조물의 정글과 다를 바 없다. 거대한 구조물에 둘러싸여 사는 도시에서 정원에서만이라도 온전히 식물로 이루어진 세상을 접하는 것이 그리 어려울까?
아마도 각종 정원박람회의 작가 정원에서 아직도 구조물 디자인을 통한 차별화 전략이 지배하는 듯하다.
이제는 정원도 조경도 구조물 디자인 경쟁에서 온전히 벗어날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조경이 시작된 당시의 여건 상 조경과 식물과의 관계가 매우 서먹서먹했다.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대신 구조물, 조형물 디자인에 비중을 두었다. 식물은 들러리 역할에 그쳐 나무 심고 지피식물 심고 잔디를 심었지만 어떤 나무를 왜 심는지에 관해서는 별로 깊은 생각이 없었다. 돈 되는 나무? 사람들이 선호하는 나무? 수급이 쉬운 나무? 기준이 대개 이랬다.
이제는 정원이 아니라 서식처의 에코시스템
정원붐이 일면서 자연정원주의자들이 식물에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그런데 식물을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태적 맥락을 따지는 것이 진정한 자연주의 정원일 것이다. 식물이 살아가는 곳을 서식처라고 한다면 정원을 디자인하는 것은 곧 서식처를 디자인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서식처라면 숲이 있고 숲자락이 있고 열린 들판이 있고 물과 물가의 습한 땅이 있다. 각각 살아가는 식물이 있다. 그뿐 아니라 척박한 땅에서도 살아가는 식물이 있고 바위틈에서 살아가는 식물도 있으며 건조한 모래밭에서 살아남는 식물도 있기에 돌무더기, 모래땅, 자갈밭도 서식처로 분류한다. 그리고 이런 서식처에는 각각 고유의 에코시스템이 살아 있다.

자연 재개발, 안 될까?
숲을 밀어내고 도시를 건설할 때 또는 도로를 지을 때 나무만 자르는 것이 아니라 에코시스템 전체를 파괴한다. 토양이 사라지고 식물종과 동물종이 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해당 장소의 미기후도 변한다. 바람이 거꾸로 불고, 공기는 건조해지고, 빗물이 침투를 못해 바로 쓸려내려가 홍수가 나고, 열섬 현상이 나타나고 등등.
그러므로 도시를 건설하고 그에 따른 조경을 할 때 이 에코시스템을 조금이라도 복구해 주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나무 심고 지피식물과 잔디를 심어주는 것 만으로는 생색이 나지 않는다. 요즘은 숙근초를 많이 심긴 하지만 이 역시 숙근초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치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보기에 좋은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또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전혀 다른 서식조건에 배치했던 것을 그대로 모방하기도 한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면 그것보다 더 좋은 건물을 세워준다. 그리고 그것을 재개발이라고 한다. 같은 원리를 자연에도 적용할 수 없을까? 자연을 ‘철거’했으면 그 보다 더 좋은 자연은 아니더라도 철거한 것에 준하는 자연을 다시 만들어 주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 땅에 그런 자연이 나타난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재개발, 안될까?
물론 도시를 재개발하면 큰 이익이 남는다. 그런데 실은 자연을 재개발해도 큰 이익이 남는다. 다만 그 이익이 지폐의 소나기가 되어 쏟아지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생태계 서비스는 대부분 공짜라고 여긴다. 자연이 주는 무료 서비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금전 가치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하다. 스튜디오 로사이의 박승진 대표가 숲의 가치를 기발한 방식으로 환산한 적이 있는데 한 번 살펴봄직하다. 일반적으로 본다면 숲 재조성 비용, 게릴라 홍수로 인한 피해 복구 비용(그중 인명피해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등은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로 발생한 비용이다. 그 복구비용이 바로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와 어느 정도 맞먹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뭄으로 망친 농작물은 다시 가격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 여파가 여러 해 지속될 것이다. 서민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다. 금전적으로도 크게 손해를 보는데 다만 이것을 생태계파괴의 결과와 연관짓지 못할 뿐이다.
팬데믹 – 생태계를 복구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팬데믹도 다르지 않다. 그로 인해 전 인류가 여러 해 고생을 하고 엄청난 규모의 국가 예산이 들어갔다. 모두 부채를 얻어서 충당했으니 언젠가 다시 가계의 짐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막연하게 바라고 있을 때가 아니다.
팬데믹은 쉽게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바이러스가 도시에 밀집해 사는 사람들을 숙주로 발견한 이상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본래 야생동물을 숙주로 삼아 존재했었다. 야생동물은 손대지 않은 자연에서 살았고 그 덕에 인류는 여태 무사했다. 손대지 않은 자연이 거의 사라져 야생동물이 도시로 진출하고 이들의 몸에 실려 도시에 나타난 바이러스가 야생동물에서 가축으로 가축에서 인체로 점프했다. 중국 우한 실험실에서 유출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감염된 인체에서 추출한 것이기 때문에 따져봐야 별 의미가 없다.
야생동물은 아무 피해없이 바이러스와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바이러스가 다시 야생동물에게로 역점프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 한다. 도시자연을 될수록 많이 조성하여 야생동물의 살 곳을 마련해 주고 바이러스가 야생동물을 따라 그리로 돌아 가 주기만을 기대해 보는 방법 밖에는 없다.
자연주의, 자연사랑, 자연존중 등의 이념이나 감성을 떠나 이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자연의 일부라도 복구해야 한다. 우리가 파괴한 자연의 에코시스템을 면밀히 연구해서 다시 디자인하거나 아니면 피눈물나게 아깝더라도 금싸라기 같은 도시의 땅을 자연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 다시 천이를 시작하여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젊은 조경인들도 이제는 구조물 디자인에서 에코시스템 디자인으로 점프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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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개발. 너무 좋은 단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