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쿠스. 설레는 이름이다. 이야기 속에서 만났던 도시. 지금은 전쟁으로 황폐한 도시. 서기 635년에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예들이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키고 이곳에 아랍 제국의 도읍을 정했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슬람 정복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이슬람 정원 기행은 사실 다마스쿠스로부터 시작해야 맞다. 다만 옛 다마스쿠스 정원에 대한 흔적은 멀리 안달루시아로 망명한 어느 왕자의 추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왕자가 그리도 그리워했다는 정원이 어떠했는지는 물론이고 어디에 있었는지도 확실치가 않다. 왕자의 이름은 압드-알-라만. 그의 할아버지 히샴 왕은 우마얀 왕조의 명군이었다. 그의 그늘에서 왕자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다마스쿠스에 역병이 돌자 할아버지 히샴 왕이 사막에 새 궁전을 짓고 그곳을 거처로 삼았다. 그때 왕자는 세 살배기 어린아이였다. 그러므로 아마도 다마스쿠스와 사막 궁전을 오가며 성장했을 것이다. 거기서 가까운 레사파에도 궁전 도시가 있었다. 모두 지금은 폐허일 뿐이다. 왕자가 후일 안달루시아의 코르도바에 지었던 알 루사파 궁전 도시도 사라졌다.

압드-알-라만 I세.

알 안달루스의 압드-알-라만 1세(731-788) 이야기다. 그는 멀리 떠나온 고향 다마스쿠스 쪽을 바라보며 수시로 한숨 지었다고 한다. 그가 스무 살 되던 해 숙부가 역모를 일으켜 할아버지 히샴 왕을 죽이고 왕자들도 모조리 죽였다. 우리로 말하면 왕자의 난과 수양대군의 반란을 합친 것과 같았다. 압드 알 라만 왕자만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아 도망쳤다. 시리아 사막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를 거쳐 알 안달루스, 이베리아 반도 남부 해안에 상륙했다. 다마스쿠스에서 암살자를 피해 도망친 지 다섯 해 만이었다. 숙부가 보낸 암살자들이 끈질지게 따라붙었다. 왕자는 번번이 암살자들을 따돌렸다. 그러는 사이에 철없는 왕자에서 온갖 고초로 단련된 강인한 청년이 되었다. 그에게는 <왕조를 다시 세울 것>이라는 예언이 따라다녔다. 그 예언을 믿고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점점 늘었다.

왕자는 그의 무리와 함께 코르도바로 향했다. 거기서 다마스쿠스에서 세운 집정관을 쫓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그리고 스스로를 에미르라 칭했다. 그리고 숙부가 본토에 세운 아바스 왕조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압드-알-라만 I세가 세운 왕조는 삼백 년 지속되며 알 안달루스, 지금의 안달루시아에 번영을 가져왔다.

그는 다마스쿠스를 늘 그리워 하며 한숨 지었다고 한다. 시도 여러 편 남겼다. 특히 조부가 짓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궁전 도시의 정원이 그리웠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코르도바에 그 복사판을 지었다. 그리고 이를 알 루사파라 불렀다. 조부가 지었던 궁전 도시 레사파를 본뜬 것이다. 주택을 지어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강물을 끌어 수로를 만들고 시리아에서 대추 야자와 석류나무를 들여와 정원을 꾸몄다. 대추 야자와 석류나무는 궁전 도시에만 심은 것이 아니라 안달루시아 전역에 심게 했다.

정원의 흔적

사막에 지은 할아버지의 궁전 도시

폐허가 있는 곳에는 발굴단이 있고 고고학자들이 있다.

큰 성과 작은 성의 배치도. 출처: Mariabruna Fabrizi

시리아 사막 한 복판. 팔미라에서 동북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곳에 할아버지 왕 히샴이 지은 궁전터가 남아 있다.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미국의 발굴단이 조사하고 간 뒤 지금까지, 즉 시리아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시리아 팀이 넘겨 받아 발굴을 계속했었다. 도자기 등의 유품들은 다마스쿠스 국립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그들이 알아낸 것을 종합해 보면 이러하다.

할아버지 왕 히샴이 728-729년 사이에 건설했다. 이 궁전 도시 또는 사막 궁전의 이름이 카스르 알 하이르 알 샤르키인데 번역하면 동쪽의 수렵 궁전이라고 한다. 사막에서 무슨 사냥을 할까. 여기서 약 15km 떨어진 오아시스에서 물을 끌어 와 아낌없이 물을 댄 덕에 사막 한 복판에 숲이 자라났다. 이 숲 속에 동물을 풀고 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작은 건물, 큰 건물 두 채를 나란히 지었는데 작은 건물은 궁전이고 큰 건물은 일종의 도시였다. 이 두 건물과 수렵림을 성벽으로 둘렀다. 성벽의 길이가 16km가 넘고 총 면적 7 평방킬로미터의 방대한 궁전 도시가 되었다.

사냥을 즐기거나 역병을 피한다는 것은 표면상의 이유였다. 명군 히샴 왕이 그럴 리가 없었다. 시리아 사막은 고대로부터 여러 개의 무역로가 지나가는 곳이었다. 히샴 왕은 이곳에 거점을 두고 무역로를 보호하는 한편 사막의 유목 민족, 배두인들을 통솔했다.

작은 궁전에서는 왕이 가족들과 살았고 큰 성에는 관리와 군대와 그들의 식솔들이 거주했을 것이다. 둘 다 정사각형으로 지었으며 하맘이라 불리는 공중 목욕탕이 있었고 중앙에 큰 정원을 두었다. 정원은 다시금 사방을 석벽으로 두르고 탑과 두 개의 게이트를 세워 보호했다. 샘과 연못을 만들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여기서 어린 왕자가 자라면서 할아버지 어깨 너머로 정치를 배웠을 것이다.

궁전과 도시 중간에 모스크가 있었으나 지금은 탑만 남아있다. 사진 출처: Dina Bakkour “Qasr al-Hayr al-Sharqi” in Discover Islamic Art, Museum With No Frontiers, 2020.

코르도바에 세운 손자의 궁전 도시

할아버지의 정원을 그리며 지었다는 알 루사파 궁전 도시는 지금 아래 사진과 같은 몰골로 남아 있다. 그나마 ‘추정’할 뿐이지 확실치 않다. 왕자는 에미르가 된 뒤 할아버지에게 보고 배운 대로 나라의 기틀을 다져갔다. 우선 행정 구역으로 나누고 성벽을 높이 쌓아 방어하고 북쪽의 가톨릭 왕조와 수시로 전쟁을 치렀으며 멀리 프랑켄 국에서 쳐들어 온 카롤루스 대제의 군대를 막아냈다.

궁전 도시를 짓고 마을을 만들고 도시 전역에 관수시스템을 설치하여 농업이 번성케 했다. 다사스쿠스 쪽에서 이민자들이 계속 넘어 와 인구가 급증했으므로 도시 확장 공사도 했다. 그리고 물론 모스크도 짓고 모스크에 정원을 만들었다. 그 정원에 지금은 오렌지 나무, 사이프러스와 대추 야자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처음에는 대추 야자만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벽돌 몇 장만 남아 있는 그의 궁전과는 달리 모스크는 지금도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가톨릭 성당으로 쓰고 있으며 코르도바의 가장 중요한 명소이다.

대추 야자, 너와 나는 고향을 잃었구나 / 친구들과 멀어져 낯선 나라에 있구나 / 네가 우느냐? 잎들이 살랑거린다 / 너도 나처럼 유프라테스 강과 야자나무 숲을 노래하느냐 …. .

압드-알-라만 I세의 시
알 루사파 궁전 도시로 ‘추정”되는 발굴지. 동쪽 성벽의 기초만 겨우 발견한 상태. Source: Arqueo cordoba. Universidad de cordoba.

현대의 개발 붐이 의외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1997년 코르도바에 고속 철도를 짓기 위해 땅을 파다가 유적지를 발견했다. 일차 조사한 결과 10세기 후반의 궁전 도시로 추정되었다. 즉시 발굴단을 꾸려서 작업에 들어갔다. 발굴 작업은 몹시 힘겨웠다. 유적지 위에 쇼핑몰이나 새로운 주거 단지 등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2010년에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고속 철도의 유적지는 우리의 다마스쿠스 왕자가 지었던 것보다 훨씬 후세에 건설되었지만 원칙적으로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모스크와 가톨릭 성당이 공존하는 특이한 곳. 784년 압드 아르 라만 I세가 초석을 놓았다. Photo: Toni Castillo Quero, License: CC BY-SA 2.0
코르도바 메스키타의 중정. 오렌지, 사이프러스, 대추야자가 자라고 있고 좁은 수로를 통해 관수한다. Photo: bongo vongo, License: CC BY-SA 2.0

참고 문헌

  • Felix Arnold (2010): Eine islamische Palastanlage am Stadtrand von Córdoba. In: Madrider Mitteilungen (51), S. 417–457
  • Muñoz Molina, Antonio; Jetz, Klaus (2002): Die Stadt der Kalifen. Historische Streifzüge durch Córdoba. Dt. Erstausg., 3. Aufl. Reinbek bei Hamburg: Rowohlt-Taschenbuch-Verl. (rororo, 1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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