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도우 광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메도우가 과연 정답일까?

유럽에 반잔디 친메도우 광풍이 불고 있다. 영국은 물론이고 독일에서도 지난 몇 해 동안 거의 모든 도시에서 다투어 “야생화풀밭” 을 조성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원의 잔디밭 일부를 벌초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러나 잔디밭 식생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꽤 오래 기다려야 다른 야생화들이 깃든다. 좀 더 삘리 메도우를 만들려면 기존의 잔디를 뜯어 내고 새로 혼합종자를 파종하는 편이 유리하다.

공원녹지 뿐 아니라 이제는 개인정원 소유주들 사이에서도 잔디밭을 뜯어내고 야생화풀밭으로 바꾸는 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각종 정원잡지에서 야생화풀밭 만드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 독일자연보호연맹이 가장 앞장서고 있다.

아래 영상은 독일자연보호연맹에서 홍보용으로 만든 것인데 독일어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독일어를 몰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한 번 클릭해서 보아도 좋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움직임이 있었다. 처음 보았던 것이 1995년경이었던 것 같다. 베를린 박람회장(정원박람회장이 아니라 일반 박람회장) 중앙에 서머가든이라고 타원형의 대형 행사장이 있는데 행사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는 일년생 꽃을 가득 심어 장식했었다. 1930년대에 조성한 것이라 1990년대 중반 전격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했고 내가 근무하던 설계회사에서 그 일을 맡았었다.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어서 원형은 바꿀 수 없었다. 사방에 둘러 심었던 기둥형의 이태리포퓰러 수명이 다해 이를 교체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그 다음 일년초를 심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졌기 때문에 다른 식재개념을 개발해야 했다. 당시 나는 그 프로젝트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친한 선배가 담당했는데 어느 날 보여줄 것이 있다며 같이 가보자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6월이었던 것 같다. 서머가든은 경기장처럼 디자인 되어 있어서 들어가려면 우선 건물을 통과해야 한다. 그때 별 생각없이 건물을 통과하여 들어갔다가 나는 그만 말을 잊고 말았다. 거대한 타원형에 야생화가 가득했다. 그때의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말이 없다. 수천가지의 꽃이 하늘거렸던 것 같다. 꽃이라기 보다 흰색, 연노란색, 남색, 오렌지 색, 붉은 색의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도 같았다. 번잡하다거나 어지럽다는 느낌 하나 없는 완벽한 하모니였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하늘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나중에 설명을 듣고 보니 조경연구원에서 혼합종자를 개발했는데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베를린 시에 요청하여 테스트할 장소를 물색했고 마침 리모델링을 위해 기존 식생을 모두 걷어낸 서머가든이 맞춤해 보였다. 베를린 시 녹지과 담당자가 선배와 의논하여 전 면적에 모조리 파종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절대적 아름다움이었다. 혼합종자를 개발한 당사자들도 놀랬던 것 같다. 1 헥타르가 넘는 큰 면적이었던 것도 효과적이었다. 아쉽게도 테스트 용이었기 때문에 그해 겨울 모조리 철거했다. 그리고 행사에 적절한 잔디를 다시 깔았다.

나도 여러 번 시도해 보았으나 아직 보편화되기 이전이어서 중간 녹화용 이상으로는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조경 공간보다는 오히려 자연보호 분야에서 꾸준히 적용해 왔다.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적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자연주의 정원가들이 메도우를 발견하여 정원과 공원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의식도 점차 달라져 작은 물결이 파도로 확대된 것이다.

베를린 박람회장 중앙의 서머가든. 출처: Messe Berlin

반잔디밭 운동Anti-Lawn-Movement

특히 미국에서 반잔디밭 움직임 Anti-Lawn-Movement이 활발하다. 오랫동안 잔디밭은 미국 정원의 상징이었다. 1960년대 볼프강 외메[1]Wolfgang Oehme 1930~2011. 독일 출신의 미국 조경가. 워싱턴을 중심으로 동부 해안에서 활약하며 뉴어메리칸가든이라고 불리게 된 새로운 정원 개념 도입. … Continue reading 라는 이름의 조경가가 잔디밭과의 전쟁을 선포한 바 있었다. 유명한 잔디혐오주의자였고 스스로를 그라스의 황제라 불렀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나서야 미국에서도 반잔디밭 움직임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잔디밭에 식상하여 대안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우선적으로 종다양성, 곤충, 벌의 서식처 확보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메도우

그런데…

올해 유럽은 극심한 이상기후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가뭄이 심해 뙤약볕에 조성해 놓은 메도우들이 모조리 타들어가고 있다. 메도우를 조성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에서처럼 무관수 무관리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원의 잔디밭이 먼저 타들어 갔고 그 다음 메도우까지 덮쳐 꽃이 거의 피지 않고 갈색의 줄기들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곳이 많다. 이번 가뭄이 메도우 열풍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누렇게 타들어가는 메도우를 망연히 바라보며 과연 메도우가 정답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잔디밭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

2021년과 2022년의 메도우

잔디 이야기 계속됩니다.

 

반잔디 운동과 관련된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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