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 공작의  달력 – 1월

글: 고정희

1월 – 신년 하례

1월은 별자리 외에 요일과 달의 움직임 등은 미처 그려 넣지 못했다. 그 대신 하단, 신년 하례 장면에 매우 공을 들였다. 여기서 베리 공작을 만날 수 있다. 베리 공작이 직접 묘사된 달은 1월밖에 없다.

베리공장 기도서 중 1월력. ©Photo. R.M.N. / R.-G. Ojda

테이블 중앙에 앉아 있는 이가 베리 공작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남색 의상을 입고 굵은 금 펜던트를 걸었다. 왼쪽에 베리 공작과 “사회적 거리”를 두고 앉은 빨간 망토의 사나이는 헤어스타일과 의상으로 보아서 고위 성직자임이 명백한데 알고 보니 샤르트르 성당의 주교라고 한다. 정체가 밝혀진 인물은 베리 공작과 주교뿐이다. 주교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지금 막 입장한 하객들이다. 손을 들어 방어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실은 벽난로 불을 쬐는 시늉을 하고 있다. 추운 데서 들어왔음을 나타내는 중세 특유의 제스처라고 한다.

그중 회색 두건을 쓴 두 인물이 보인다. 한 명은 왼쪽 구석에서 뭔가를 마시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이 그림을 그린 장본인, 즉 림부르그 형제가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당시에는 화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는 일이 흔했다.

이 객들과 마주한 채 긴 봉을 어깨에 메고 인상 쓰고 있는 붉은 옷의 사나이는 의전관이다. 이 의전관이 “가까이 오세요! 가까이 오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의 머리 위의 ‘말풍선’에 그리 쓰여있다. 베리 공작은 주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눈빛이 방금 들어 온 하객들을 향하고 있다. 절묘한 묘사이다.

이 대여섯 명의 하객을 뒤쫓아 말 탄 기사들이 쳐들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앞에서는 잔치가 열리고 방 뒤쪽에서는 전투가 벌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전투 장면은 벽 양탄자로서 트로이 전쟁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15세기에는 트로이 전쟁 때의 의상이나 갑옷 등에 대해 전혀 고증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의 주인공들이 중세기사의 복장을 했다.

공작의 등 뒤에 둥근 원판이 보이는데 이는 벽난로의 뜨거운 불길을 가리는 가리개다. 이 가리개 색상과 베리 공작의 의상이 대비되어 공작이 두드러진다. 공작 뒤에 서서 의자 등에 감히 팔을 얹은 검은 모자의 젊은이는 그 제스처로 보아 공작의 가까운 친인척인 듯하나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른다.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붉은 천을 보면 우선 프랑스 왕실의 상징, 즉 파란 바탕에 금색 아이리스가 새겨진 원형의 문양이 있고 그 주변에 백조 다섯 마리와 곰 두 마리가 있다. 그런데 백조가 모두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상처 입은 백조와 곰이 베리 공작의 상징이다. 왜 하필 상처 입은 백조를 상징으로 삼았을까. 매우 궁금하다. 아직은 어디서도 설명을 찾지 못했다.

베리 공작의 상징 중 하나. 상처받은 백조

 

그림에 누런색으로 표현된 것이 사실 모두 금이다. 식기가 모두 금이다. 신년하례식이어서 특별히 금식기를 내놓았는데 왼쪽 테이블에 따로 쌓여 있는 화려한 금 접시, 금주전자는 손님들이 선물로 가져온 것일 수 있고 나중에 손님들에게 나눠줄 선물일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경우인지 알지 못한다.

그림 오른쪽 가장자리, 테이블 위 선박 모양의 금식기는 소금 그릇이다. 당시에 소금이 귀한 물건이어서 소금 그릇도 이렇게 금으로 귀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가장 아름다운 소금 그릇의 소유자는 프랑수아 1세였다고 한다. (프랑수아 1세의 소금 그릇)

그런데,

1982년 장 부르덩이라는 프랑스 기호학자가 이 그림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책으로 내어 동료들을 불안하게 했다. 그에 따르면 이 그림은 신년하례가 아니고 1414년 1월 6일 베리공작이 영국 사절단과 비밀 협상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1) 그리고 그림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의 정체를 밝혔다. 그 이름들이 너무 길고 복잡하여 여기서 나열하기에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모두 대단히 높으신 분들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부르덩의 주장은 학계에서 물론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그렇다면 그 높으신 분들이 왜 서 있느냐 등의 석연치 않은 반론도 있다. 설령 그가 옳다 하더라도 이미 이론이 굳어진 상태라 여간해선 뒤엎기 힘들다. 먼저 해석하여 책을 내고 유명해진 학자들이 거대한 성벽처럼 우뚝 버티고 서서 좀처럼 자리를 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1월은 물론 농한기인데다가 새해가 시작되기 때문에 농사장면은 넣지 않고 높은 분들 연회 장면만 넣은 것이 좀 애석하기는 하다.

  1. Raymond Cazelles; Johannes Rathofer, Das Stundenbuch des Duc de Berry. Les très Riches Heures, Faksimilie Verlag Luzern 1998,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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