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 공작의 달력 5월
5월력 전경. 그림 윗부분의 반원이 곧 달력인데 별자리- 황소자리와 쌍둥이자리를 표시한 것이 전부이다. 정성스레 나누어 놓은 칸이 모두 비어있는 까닭은 미완성이기 때문. 1월, 4월, 5월, 8월, 네 달을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작가들이 페스트에 걸려 사망했다. 다른 달에는 이 빈칸에 날짜와 요일이 표시되어 있다. 안쪽 원에 태양신 헬리오스가 마차를 타고 해를 나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헬리오스는 12개월 내내 아래쪽 반원에서 해를 나른다.

아래 큰 그림은 전형적인 5월의 장면이다. 5월 1일에 어김없이 치렀던 플로라 축제를 묘사한 것이다. 플로라 축제는 곧 봄의 제전이니 늙은이들은 끼지 못한다. 호화로운 축제 의상을 떨쳐입은 젊은 남녀들은 모두 왕족. 후세의 사가들이 이들의 정체를 밝히느라 머리를 싸맸다고 한다. 이날은 왕이 왕자와 공주에게 연두색 의상을 하사했다니 연두색 옷을 입은 세 명의 젊은 여인은 공주, – 베리 공작의 누이와 조카 -,일 것이다.
그림의 앞쪽 오른편 구석에 유럽에서 <울타리 장미> 또는 <견공 장미>라 부르는 Rosa canina가 피어 있다. 장미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어디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자연형 울타리에도 심고 사면녹화할 때도 쓰는 야생덤불관목이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여인들의 머리를 장식한 나뭇잎이 바로 이 장미나무의 잎이라는데 과연 그럴까? 이 장미나무는 잔 가시가 워낙 많아서 찔릴 각오 없이는 잎을 따지 못한다. 혹은 5월 초라 아직 가시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확인이 필요할 터.
멀리 숲 뒤에 내다보이는, 푸른 지붕에 수많은 뾰족탑이 있는 성은 파리의 시테 섬에 있는 궁전 Palais de la Cité이다. 14세기까지 프랑스 왕이 여기서 살았었다. 그러다가 자크리의 난이 일어나자 위협을 느껴 바스티유 근처의 생 폴 궁전으로 잠깐 피신했는데 그후 시테 궁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루브르 궁으로 아주 이전했다. 시테섬 궁전에 제법 큰 정원이 있었다고 한다. 왕실이 떠난 뒤 정원으로서 소용이 없어졌으므로 도시에 수렴되어 훗날 일부 개발되고 그 가운데 도핀 광장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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