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밭 대안 찾기 – 잡석밭의 잡초?
글: 고 정 희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방법일 수도 있다. 독일 조경가들의 특기다. 베를린 중심가에 위치한 철도삼각지 공원 Park am Gleisdreieck에 좋은 사례가 있다. 이 공원은 철길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는데 그 중 이스트파크에 진입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잡석밭이다. 공원을 만들 때 철로와 침목만 철거하고 잊어버리고 간 것처럼 주먹만한 잿빛 잡석이 널려 있다. 머리통만한 것도 있다. 정말 거친 잡석밭이다. 팻말이 하나 있는데 “여기는 생태잡석밭입니다”라고 써 있다. 아~ 생태.
철도삼각지 공원은 2013년에 공식적으로 오픈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열띤 토론 끝에 녹색당과 시민의 압력을 못이겨 메르켈 정부가 원전포기 선언을 한 바로 그 해였다. 소위 말하는 에너지 전환이 시작된 해였다. 조경가들에게도 기후변화 적응형 설계가 예사가 되었다.
생태잡석밭은 철도삼각지 공원 설계를 맡았던 조경가 펠릭스 슈바르츠와 식물적용가 에바 니콜라이(Ateleir Loidl)가 힘을 합쳐 생각해 낸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또 다른 조경미학
“공사를 하다 만 것처럼 보이죠? 그게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잡석을 붓고 소나무를 몇 그루 심었습니다. 잡석 사이에는 야생화 종자를 조금 뿌렸고요. 물론 지역종 야생화를 조심스럽게 선발했습니다. 철길의 미학이라고나 할까요. 철길에 보면 잡석이 있고 야생초가 여기저기 돋아나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재현해 보고자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파종한 식물을 밀어내고 터주 식물 군락이 자리잡을 것을 예상했죠. 아닌 게 아니라 그 동안 많은 식물 종자가 날아 와 서식하고 있고 철따라 장면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초봄이면 바이올렛과 흰색이, 가을에는 노란 꽃이 주도하죠. 거친 철도잡석과 야생화의 대조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관리요? 일년에 한 번 하는데 다른 건 없고 침입종 관목과 초본류만 제거해 줍니다.
이곳 생태잡석은 과학적 생태 실험장이 아닙니다. 그저 또 다른 조경 미학을 추구한 것 뿐입니다.” ((Storywalk Gleisdreieck / 12. Ökoschotter))
십년이 지난 지금 철길을 따라 동유럽에서 이민 온 가는잎금방망이Senecio inaequidens를 비롯, 산당근, 흰토끼풀, 붉은토끼풀, 질경이, 야생아욱, 왕촛대꽃Verbascum, 비누풀Saponaria officinalis, 그리고 여러 엉겅퀴들이 자리잡았다. 마가목도 자리잡았고 넓직하게 팔을 벌린 부들레아 관목이 어느 정원에서 보다 편안해 보인다.
이 생태잡석밭을 나 역시 십년전부터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요즘 극심한 가뭄 때문에 도시의 나무와 잔디와 메도우까지 바짝 타들어가고 있어 근심하던 중 문득 생태잡석밭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져 찾아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가뭄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야생화가 한 가득이었다. 양미역취Solidago canadensis가 한창이었고 들파스닙이 가장자리를 가득채웠다. 모두 정원이나 공원에서는 극성스러운 잡초로 뽑혀버리는 식물들이다. 생태잡석밭에서 그들의 천국을 만난 듯 했다. 어찌보면 다채로운 삶이 가득한 난민수용소와도 같다.
무엇보다 가뭄이든 홍수든 올테면 오라는 자신감이 인상깊었다. 왜 이들이 여태 잡초로 취급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정원이라는 곳의 개념을 다시 떠 올려 본다. 앞으로는 정원을 잡원이라 부르고 잡초를 정초라 해야 할까 보다. <고정희>





외부 링크:
- Projekte — LOIDL (atelier-loidl.de)
- Park am Gleisdreieck Berlin by Atelier Loidl Landscape Architects and Urban Planners – Architizer
- 베를린 환경교통기후보호국 – 철도삼각지 공원의 도시자연
© 3.SPACE MAGAZINE 뉴스
현재 거주하는 집에 이사를 와 보니 화산석으로 멀치가 되어 있었는데, 눈엣가시처럼 여기면서도 손을 못 댄지가 5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식물적용학 수업을 듣고 자갈 멀치에 대한 관점이 확 바뀌었습니다. 그 틈새를 파고든 ‘잡초’들을 아직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자갈멀치를 바탕으로 어떻게 정원을 꾸며나가야할지 조금 흥미진진한 모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선생님의 자갈멀치정원 모험 정말 궁금하네요. 아이디어와 소식 공유해 주세요.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