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포츠담 칼 푀르스터 정원의 겨울. © JEONGHI GO

<정원의 겨울>과 <정원의 혼>에 대하여

고 정 희

우선 겨울정원에 대하여

“저 죄송한데요. 박사님은 지금 이 정원이 아름다우세요?

“네, 그럼요. 김 감독님은 아닌가요?”

“아~ 하하하 ~”

얼마전 독일의 겨울정원을 소개하기 위해 칼푀르스터 정원에 가서 촬영을 했는데 그때 촬영감독과 나눴던 대화다.

두어달 전 제주KBS에서 연락을 받았다. 독일의 겨울정원을 소개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정원의 발견>이라는 방송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1월이나 2월쯤해서 독일 겨울정원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사실 독일의 <겨울정원 Wintergarten>은 그 뜻이 전혀 다르다. 주택에 붙여서 지은 유리온실을 말한다. 겨울에 나가 앉아 정원느낌을 받으며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곳이다. 덜덜 떨지않고도 짧은 겨울 해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정원이 갑자기 화재가 된 것이 언제부터였나.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다. 김장훈 정원사의 좋은 책 <겨울정원>Z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여긴다. 2016년에는 Cédric Pollet라는 이름의 프랑스 풍경(식물)사진작가가 아름다운 책을 한 권 냈다. 원제는 Jardin d’hiver une saison réinventée 정원의 겨울, 다시 창조된 계절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근사한 제목이다. 겨울에 빨간 줄거리를 내보이는 흰말채로부터 오렌지색이 선명한 벚나무, 눈보다 흰 자작나무. 겨울나무의 미학에 관한 책이며 실제로 이런 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어 겨울 풍경을 의도적으로 돋보이게 만든 정원도 여러 곳 소개하고 있다.

이것이 이듬해 독일어로 번역되었는데 그때 용어의 헷갈림을 방지하기 위해 <정원의 겨울 Gärten im Winter>이라고 했다.

준비과정에서 작가와 PD에게 그런 얘기를 들려 주며 독일에는 겨울정원이라고 특별히 따로 만드는 것은 아직 없고 그대신 겨울에도 볼 것이 있도록 또는 겨울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정원을 만드는 전통이 꽤 되었다고 설명했다. 겨울이 긴 나라이기 때문에 10월 말에 정원 시즌이 끝나고 4월 중순이 되어야 다시 시작한다면 사실상 일년의 반을 까먹는 셈이 된다. 그것을 참기 어려웠던 칼 푀르스터는 정원시즌은 겨울부터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주장에 그쳐서는 안되니까 겨울에도 아름다운 정원을 직접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보라! 겨울의 아름다움을! 그것이 칼 푀르스터 정원이다. 물론 겨울을 위해 만든 정원은 결코 아니다. 겨울에도 아름다울 수 있는 정원이다.

겨울에도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상록수나 겨울에 꽃이 피는 몇 안되는 식물을 찾는다. 칼 푀르스터도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다가 겨울에 꼿꼿한 자세로 남아 백발을 흩날리는 억새를 앞세웠다. 그리고 갈색의 다양한 뉘앙스, 겨우 내 매달려 있는 각양각색의 열매, 마른 줄거리의 여러 갈색과 그 끝에 매달려 있는 온갖 형상의 ‘고깔’ 등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런 설명을 촬영감독에게도 했다. 정원문외한인 그는 이 한 겨울에 아무 것도 없어보이는 정원에 와서 대체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난처해 했다. 겨울해가 짧아서 해 떨어지기 전에 촬영을 마쳐야 하는데 설명을 해달라고 하고도 설명이 장황해지자 초조한지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김 감독에게 이 정원이 별로 볼 일이 없어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원에 꽃이 피어야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것 또한 당연하다. 꽃이 피어있지 않아도, 잎이 다 떨어져 마른 가지만 남아 있어도, 풀이 갈색으로 변하고 시들시들해도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여길 수 있으려면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이번 겨울엔 날이 유난히 따뜻하여 아직 여기저기 푸르름이 남아 있다. 더러 꽃이 다시 피기도 한다. 그런 날이 계속되자 조금씩 초조해졌다. 쨍하고 추운 날 서리앉은 아침, 정원을 산책하는 그 묘미를 놓칠 것 같아서 걱정되었다. 다행히 어제 오늘 추워지고 하늘도 파랗고 눈도 약간 내려 완전 최고다.

“아~ 그런가요? 그래도 전 여기 여름이 더 아름다웠는데요.”

“그렇다고 여름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얘기죠. 보는 눈과 마음이 있으면…. .”

“그런데 뭘 집중적으로 스케치할까요?”

“글쎄요. 뭘 집중적으로 그린다기 보다는 전체의 느낌, 구조 뭐 이런 것을 잡아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래도 뭔가 디테일한 것을 … .”

그래서 삼지구엽초 앞에 주저앉아 요정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원의 혼>에 대하여

베를린 달렘식물원의 겨울. © JEONGHI GO

처음 요청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 떠 오른 장소는 베를린 달렘식물원과 티어가르텐이었다. 오래된 나무가 많은 곳이라 당연히 겨울풍경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송사에서 굳이 칼 푀르스터 정원을 소개해달라고 한다.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은 것이 ‘겨울에도 정원을’ 이란 것이 칼 푀르스터로부터 비롯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투르드 지킬 여사만 해도 시들어 잿빛으로 변한 꽃을 감추기 위해 갖가지 트릭을 썼다. 덩굴식물로 하여금 시든 꽃을 덮치게 하는 등.

칼 푀르스터 정원과 우정섬이 서로 근거리에 있기 때문에 촬영시간도 줄일겸 이렇게 두 정원으로 낙착을 보았다. 그러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독일에 정원이 이거 두 개 밖에 없는 줄 아나? 이제 칼 푀르스터 정원 졸업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정원의 상태가 영 별로인데 촬영을 해도 되나? 그래서 미리 가서 확인도 해 두었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오히려 여름과 가을에 보았을 때보다 겨울 정경이 좋았다. 여러모로 겨울은 고마운 계절이다.

마리안네 푀르스터가 2010년 세상을 떠난 뒤로 집과 정원은 칼푀르스터 기념관이 되어 독일문화재재단에서 관리하고 있고 문화재국 직원이 파트타임으로 나와 있다. 우리 칼푀르스터 재단에서는 그의 정신적 유산만 관리하고 “부동산”은 독일문화재재단에서 접수했다. 정원은 별도로 포츠담 시 공원녹지과에서 파견나온 정원사 두 명이 관리하고 있다. 그 십여년 동안 정원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망연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정원사들의 관리 실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칼 푀르스터나 그 딸 마리안네가 가졌던 정원에 대한 사랑을 따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유명한 정원을 관리한다는 책임감이 이만저만 무거운 짐이 아닐 것이다. 바라보는 눈초리가 많아 조심스러울 것이다. 정원은 쉬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한다. 그 변하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다가 필요한 순간, 필요한 손길을 더해 전체의 조화로움을 늘 새롭게 하는 일은 정원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남다른 감각, 때로는 아이디어를 요구한다. 그 감각과 아이디어가 담당 정원사들에게 부재하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 결과로 장소의 혼들의 포스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안타깝다.

장소의 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독일에서는 그 장소에 사는 귀신 내지는 정령을 뜻하기도 한다. 독일 사람들도 은근히 귀신을 믿는다. 칼 푀르스터 정원의 경우 그 귀신의 정체는 너무 분명하다. 정원사 둘이 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 한다고 해도 그들이 그 정원의 정령이 될 수는 없다. 본질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제 문화재 국 직원에게 미리 신청해야 집의 아카이브에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면 여자 정원사 티나가 차를 끓여준다. 얘는 왜 또 집안에서 서성거려, 정원에서 일하지 않고.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마치 못된 시애미 같다. 티나가 끓인 차를 마시며 마리안네를 그리워 한다. 그와 함께 마셨던 수많은 커피잔을 세어본다. 그러다 문득 칼 푀르스터 정원이 내게 고향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향에서 너무 멀리, 너무 오래 떨어져 사는 내게 칼 푀르스터 정원은, 아니 마리안네 정원은 그 자체로 고향을 상징하는 심볼이었다. 그것을 깨닫자 이제 이별을 고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그렇다고 앞으로 칼 푀르스터 정원에 가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의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다. 암석정원의 고사리 골짜기에 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칼 푀르스터의 혼을 이젠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가려 한다.

칼 푀르스터 정원의 고사리 골짜기. © JEONGHI GO

© 3.SPACE MAGAZINE / 장소 /아듀 칼푀르스터 정원/ 정원의 겨울과 장소의 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