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광릉국립수목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국립수목원은 192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산림생물종 연구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라는 소개 문구가 있다. 이제 김정화박사의 논문을 통해 1920년대 우리나라의 ‘산림생물종 연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심층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의 막스플랑크 예술사연구소에서는 2019년 식물을 주제로 하여 4A Lab이라는 국제 학술·예술 프로젝트를 발족했다. 한국의 김정화 박사도 이에 초대받아 지난 2021년 3월부터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어두운 역사의 숲속으로 들어가 1922년~1948년, 현 광릉국립수목원과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에 조성되었던 임업시험장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연구소 온라인 세미나를 통해 그간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그때 온라인 객석에 앉아 그의 발표를 들으면서 이 뜻깊은 연구내용을 국내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화 박사에게 원고 집필을  청했고 그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본문에서는 1922~1945년까지만 다뤘다. 귀한 연구내용을 공유해 준 김정화 박사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고정희]


서울 근교에 있는 언덕의 황량함은 ….. 인상적이었지만 이 나라에 대해 썩 좋지 않은 생각이 들게 한다. ((Bird, I. L. (1898). Korea and Her Neighbors. New York, Chicago [etc.]: F.H. Revell Co, p. 17.))

19세기 말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여행 작가 이사벨라 비숍 여사는 서울 근교의 산림 풍경을 위와 같이 묘사하며 남한의 경우 나무는 산소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록 그 정확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1910년에 제작된 <조선임야분포도>(그림 1)에 따르면 20세기 초 한반도 산림 중 성림은 32%에 불과했고 남한 산림의 80%는 치수 발생지이거나 무립목지였다.((배재수·김은숙 (2019). “1910년 한반도 산림의 이해: 조선임야분포도의 수치화를 중심으로.” 『한국산림과학회지』 108(3), 418-428.))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임업시험장은 조림이라는 국가적 미션을 손에 쥔 채 태어났다. 1913년과 1914년 각각 광릉과 의령원에 2,800ha와 73ha에 이르는 규모의 시험소가 설치되었고, 이후 1922년 의령원 시험소가 홍릉(그림 2)으로 확장 이전하면서 임업시험장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임업시험장은 시험림, 묘포, 견본원(혹은 수목원), 연구 시설 등, 크게 네 가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중 특히 필자가 주목하는 공간은 조림 모델 실험용으로 마련된 시험림이다. 조림 연구의 중요성 및 시급성만큼이나 시험림은 임업시험장에서 상당한 면적을 차지했는데, 홍릉의 경우 92%, 광릉의 경우 전체 면적의 99%가 시험림에 할애되었다.((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 (1932). 『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요람』, p. 7.)) 일본의 또 다른 식민지 시험장인 대만 임업시험장(그림 3)이 대부분 수목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었던 점과 비교할 때, 임업시험장이 이상적인 조림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임업시험장은 어떠한 원칙에 따라 산림 모델을 계획했는가? 조림 수종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으며, 수종을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하고자 했는가? 산림 모델은 과연 임학이라는 과학적 이론만으로 구상되었을까? 20세기 초 한국의 ‘헐벗은’ 산과 식민지 체제라는 조건은 임업시험장의 숲 모델을 단순히 녹화가 아닌 경관 만들기 혹은 디자인 관점으로 접근할 것을 요구한다. 본 글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숲 만들기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정치적, 미학적 생각과 태도를 밝히고자 한다.

과학적인 숲, 계산 가능하며 가독성이 높은 숲

우선 임업시험장 시험림의 과학적 뿌리라 할 수 있는 근대 임학(scientific forestry)의 원칙과 개념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근대 임학은 18세기 후반 프로이센 및 작센 지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나무의 범주가 목재에서 수목 전반으로 확장되고 나무와 숲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와 자료의 생산이 필요해짐에 따라, 국가 통치에 필요한 행정 지식과 기술을 다루는 관방학(cameral science)의 하위 분과에서 별도의 학문 체계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독일 근대 임학의 발달과 특징에 대한 개괄은 다음을 참조. Scott, J. C. (1998). “Nature and Space.” In Seeing Like a State: How Certain Schemes to Improve the Human Condition Have Failed.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pp. 11-52.)) 독일 근대 임학의 핵심은 숲의 표준화와 계량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예컨대 이를 이론적으로 구현한 모델은 산림을 일정한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나누어 각각 번호나 기호를 붙이고, 각 단위 공간에는 단일 수종을 줄을 맞추어 식재했다.((Hölzl, R. (2010). “Historicizing Sustainability: German Scientific Forestry in the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ies.” Science as Culture 19(4), 431-460.)) 여러 수종이 복잡하게 얽혀 무질서했던 원시림과 달리, 과학적인 숲은 덤불이 제거되고 단일 수종이 일렬로 늘어서 질서 정연한 숲, 다시 말해 계산 가능하며 읽을 수 있는 숲이었다.((Scott (1998). “Nature and Space.” pp. 11-52.))

일본의 알프스, 국가대표 풍경

19세기 말 세계 임학을 주도하게 된 독일 근대 임학은 일본에도 소개되었다. 메이지 시대 목재 수요 증가로 인해 효율적인 산림 관리가 필요했던 일본은 1877년 관련 부처 설치를 시작으로, 임업 학교 설립과 삼림법 제정 등, 국가 중심의 산림 관리 체계를 만들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메이지 시대 산과 숲을 둘러싼 조건 중에는 과학으로서의 임학뿐 아니라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도 있었다. 식민지 조선의 조림 사업을 아시아 연대라는 일본의 사회정치적 목표의 도구로 분석한 데이비드 페드만(David Fedman)은 근대 임학에 바탕을 둔 산림 관리의 중앙접권화가 산림 신성화가 결합해 일본의 제국주의적 산림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Fedman, D. (2020). Seeds of Control: Japan’s Empire of Forestry in Colonial Korea. Seattle: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실제로 여러 연구들은 소위 ‘일본의 알프스’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고 산림이 국가적 풍경으로 재발견된 것이 메이지 중기였다고 말한다.((대표적인 연구로는 다음을 참조. Wigen, K. (2005). “Discovering the Japanese Alps: Meiji Mountaineering and the Quest for Geographical Enlightenment.” The Journal of Japanese Studies 31(1): 1-26.)) 산림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미학적 태도는 특히 당대 언론인이자 ‘일본의 존 러스킨’으로 불렸던 시가 시게타카(志賀重昴)의 저서 『일본풍경론(日本風景論)』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는 일본 경관의 다섯 가지 특징으로 유럽의 숭고미와 같은 아름다움, 다양하고 풍부한 식생, 높은 습도, 많은 비, 화산을 제시했다. 삽화 대부분을 산림에 할애한 『일본풍경론』(그림 4)은 수증기로 인한 비옥한 화산암과 다양한 식물이 얽힌 풍경이야말로 일본성을 나타낸다고 강조하며, 혼슈 지역의 산림을 부각시키고 늘 푸르고 곧게 자라는 침엽수를 일본인의 본성에 비유하기도 했다.((일본풍경론의 내용과 특징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박삼헌 (2015). “메이지 일본의 ‘풍경’ 발견.” 『일본비평』 13: 44-73; 표세만 (2011) “자연 인식과 일본인의 ‘자기 이미지’ 형성.” 『일본어문학』 1(49): 289-310.))

임업시험장의 숲 모델

그렇다면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임업시험장은 과학으로서의 근대 임학과 일본의 국가주의 산림 미학을 반영하고 있었을까? 반영하고 있었다면 어떠한 방식이었을까? 우선 1937년 <광릉임업시험장약도>를 보면 시험림이 56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임반에 1에서 56까지 번호가 붙어 있다(그림 5와 6). 임업시험장의 연구원이 숲을 직접 보지 않고 책상에서 바로 파악하는데 유용했을 자료이다. 이와 같은 독일 근대 임학의 특징인 숲의 가독성은 임업시험장이 1925년부터 12년 동안 한반도 전역에 조성한 시식림의 표준 모델에서도 나타난다. 아래와 같은 시식사업 보고서의 설명에 따르면 시식림 표준 모델은 1:2라는 일정한 비율과 장방형의 구조, 그리고 약 2천 그루의 나무를 식재할 수 있는 크기를 지닌 단위 공간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경계부 식재로, 이 테두리 작업은 각 단위 숲을 구별하기 위한 장치였다:

산지의 배열은 균등 입지를 포함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늘고 길게 잇는 것은 피하고, 가능한 긴 변이 짧은 변의 2배 이하인 방형이거나, 거기에 준하는 모양으로 한다. 또한 산지의 경계는 1열을 하고, 거기에 공시목 외의 다른 수종을 심는 등, 이것은 항구적으로 산지의 구분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보통 식재에 있어서는 한 산지의 시식본수는 적으며, 2,000본 한도를 표준으로 한다.((국립산림과학원 (2013). 『우리나라 근대임업에 대한 시험연구 자료』, 225. 원문은 다음을 참조. 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 (1937). “시식지제1기사업보고.” 『임업시험장보고』 25, 5.))

임업시험장의 시험림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수목 구성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 모델에서 볼 수 있듯 근대 임학은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원시림과 정반대로 단일종 재배(monoculture) 를 추구했는데, 미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이를 ’획일적인 숲(uniform forest)’으로 불렀다.((Scott (1998). “Nature and Space.” pp. 15-18.)) 임업시험장의 경우 수목 목록을 보면 꽤 다채로운 수종을 수집하고 연구하고 있었다. 예컨대 1927년 당시 홍릉 임업시험장의 견본원에는 400여종의 수목이, 묘포에는 한국 및 일본 수목 136종과 외국 수목 92종이 있었다.((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 (1927). 『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요람』, p. 9.)) 그러나 수종 목록의 다양성과 달리, 임업시험장의 숲 모델은 균질적 구조를 띄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광릉 시험림의 잎갈나무와 일본잎갈나무 조림지 사진을 보면 숲 속 교목의 종류는 하나였다(그림 6). 모델 숲이 다양성이나 복합성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시험림에서 실시된 연구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1927년과 1932년 보고서가 밝히고 있는 시험림의 조성 취지는 주요 수종의 성림시험, 재배시험, 작업법 간 상관성 시험, 사방공사 유형 및 식재수종 선택시험, 임산물 제조시험, 해충 및 해균 퇴치예방시험 등으로, 하목 식재시험과 천연림 하종시험 등 숲의 복합성과 관련한 주제는 1941년에 이르러서야 추가되었다.((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 (1927). 『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요람』, p. 9; 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 (1932). 『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요람』, p. 8; 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 (1941). 『조선총독부임업시험장요람』, p. 15.)) 무엇보다도 임업시험장의 시식사업으로부터 단일종 숲 모델이 실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시식사업 유형 중 대부분을 차지했던 보통조림은 독일을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그림 7).((독일 근대 임학의 ‘normalwaldmodell(normal forest model)’라는 개념을 보통조림으로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내에서는 정상림이나 법정림이라는 용어로 사용된다. 일제 식민지기 ‘숲’과 ‘보통’이라는 용어의 결합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추후 연구가 필요하다.))

여기까지 본다면 임업시험장의 시험림이나 시식사업에서 엿보이는 숲 모델은 18-19세기의 임학 이론에 기초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식민지 체제 하에서 숲 모델은 과학이 아닌 힘의 논리와 결합되기도 했다.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 경관을 야만 혹은 몰취미 상태로 규정하고, 개선과 문명화가 필요한 대상으로 여겼는데,((일본의 조선 경관에 대한 저평가는 다음을 참조. Kim, J. H. & Zoh, K. J. (2017). “Inventing Modern Taste at the Changgyeongwon Botanical Garden.” Landscape Research 42(5): 574-591; Ohnuki-Tierney, E. (2002). Kamikaze, Cherry Blossoms, and Nationalisms: The Militarization of Aesthetics in Japanese Histor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 107)) 한반도 식생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조선의 나무는 과학적인 숲을 구성할 주된 수종이 되기에 기준에 못 미치거나 열등하다는 생각으로, 예컨대 1929년 임업시험장 소장은 한반도의 기후와 수종 분포 조사를 정리한 『조선수목죽류분포도』의 서문에서 조선에서 찾을 수 있는 조림수는 소나무 외에는 없다고 주장했다.((Forest Experiment Station, Government General of Chosen (1929). Atlas Illustrating Geographical Distribution of Korean Woody Plants & Bamboos.))

열등한 조선 수종 대 우수한 일본 수종의 대결 구도는 특히 의령원 임업시험소를 지배하는 원칙이었다(그림 8). 임업시험장이 공식 출범하기 전인 1910년대 후반, 의령원 임업시험소는 일본 수종의 우월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조선의 함북 지방과 일본 나가노 및 사할린 지역 등, 총 세 곳에서 수집된 잎갈나무 수종을 비교하는 실험에 착수했는데, 당시 잎갈나무는 삼나무, 편백나무 등과 함께 일본의 성공적인 자생 조림수로 각광받고 있던 수종이었다.((Turner, E. P. (1937): “Japanese Forests and Forestry.” Empire Forestry Journal 16(1): 8-26.))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종자의 무게와 발아율, 포자 발아율, 묘목의 활착률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가노 지역의 잎갈나무 품종이 아니라 조선 함북 지방의 품종이 가장 우수했다(그림 9).((조선총독부 (1921). 『수묘양성지침』, pp. 16-17. 국문은 다음을 참조. 국립산림과학원 (2013). 『우리나라 근대임업에 대한 시험연구 자료』, pp. 19-20.)) 이후 임업시험장의 우수한 조림수 찾기 연구는 조선 자생 수종과 해외 수종을 대상으로 꾸준히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1925년부터 1937년까지 전국 388개의 시식림 모델에 적용된 수종은 한반도 87개 지역, 일본 및 식민지 56개 지역, 유럽 및 북미 55개 지역 등, 전 세계 198개 지역 출신이었다.

나가며

홍릉과 광릉 임업시험장은 20세기 전반 한반도의 산림 경관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임업시험장은 세계 각지의 수목 종자를 소개하고 조선 수목을 조사하였으며, 조림 적합 수종을 선택하고 이를 재배해 전국 산림에 묘목으로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임업시험장은 한반도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숲 모델을 실험했는데, 그 모델은 연속적인 경관이 아닌 명확한 경계를 지닌 단위 공간의 결합이었으며, 상호 연결된 체계가 아닌 개별적인 목재들의 집합체였고, 복잡하고 무질서한 숲이 아닌 계산 가능하며 질서 있는 공간이었으며, 다양하고 다층적인 구조가 아닌 우수하며 우월한 단일종의 단위 공간이었다. 결론적으로 임업시험장의 숲 모델 실험은 과학이라는 이름 뒤에 있는 가독성과 균질성이라는 원칙, 그리고 일본의 애림사상 뒤에 있는 우월성을 동반한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이 반영된 기획이자 디자인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김정화]


SUPERIOR TREES 그림 1~9


© 3.SPACE MAGAZINE/학술/김정화/superior trees/ 2021_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