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섬 2월

2월 초에 마침내 눈이 내렸다. 찔금거리는 진눈깨비가 아니라 제대로 된 함박눈이 펑펑내렸다. 이틀을 연거푸 내렸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그야말로 눈을 여러 번 씻고 다시 보아도 함박눈이 틀림없었다. 우선 동네 공원에 가서 돌아다니며 내심 눈이 제법 쌓이기를 기다렸다가 보르님에 있는 칼 푀르스터 정원부터 다녀왔다. 그 길에 우정섬에도 들를 수 있었겠지만 도로 사정이 너무 나빠 그날은 그냥 돌아왔다. 며칠 뒤에 눈이 한차례 더 내린 뒤 우정섬으로 향했다.

정원사의 2월

입구의 넓은 잔디광장엔 이미 나처럼 눈구경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가짜 까마귀(등과 배가 흰색이라 안개까마귀라고도 불리는)들도 들떠서 겅중거렸고 운하 변 나뭇가지에 못생긴 가마우지들이 새까맣게 올라앉아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 보았다. 파란 하늘이 눈부셨다.

“정원사는 눈이 와도 바쁩니다. 정원사가 부지런했음을 알리는 흔적이 분명 눈에 남아 있을 겁니다. 새들의 발자국도 있지만 새들은 오로지 먹이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정원사가 곱게 쓸어 놓은 길을 걸으며 겨울정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세요. 그리고 생각에 잠겨보세요. 생각을 방해하는 꽃이 없으니까요. 키작은 숙근초는 눈에 파묻혔겠지만 눈모자를 쓴 긴 꽃대는 더러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1952년부터 1980년까지 우정섬을 총괄했던 페터 알트만Peter Altmann이 한 말이다. 성탄절 전에 방문객들에게 즐거운 성탄절을 맞으라고 인사하면서 했던 말이다(그때만 해도 그리고 그후에도 오랫동안 성탄절이면 눈이 내렸다. 화이트크리스마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1966년부터1971년까지 지역신문에 매달 꼬박꼬박 우정섬 소식을 전했었다. 그게 너무 인기를 끌자 – 독자들 간에 알트만의 칼럼때문에 신문을 본다는 말이 나돌자 – 공산당국에서 “정원사가 뭐하는 거야!”라면서 신문사에 압력을 가해 컬럼이 폐지되었다.

그때 그는기후변화를 아직 몰랐고 2월에 눈이 이렇게 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보통 2월은 정원의 계절이 아니다. 그래서 2월 정원에 대해 이렇게 썼다.

“우정섬 한 구석에 퇴비더미가 있습니다. 낙엽, 나뭇가지, 잡초 등이 쌓여서 이루어진 더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통 “썩는다”라고 말하는 매우 복잡한 어떤 일이 벌어지는데 그 결과로 흙이 빚어집니다. 양분이 가득한 훌륭한 정원흙이 만들어집니다. 사람들은 이 경이로운 과정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비밀을 파헤쳤으나 늘 그러하듯 아직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남아 있습니다. “흙만들기”는 자연 살림살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틀림없는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일련의 연쇄작용이 일어나며 생명의 경이로운 원리를 보여줍니다. 우정섬을 방문할 때도 그와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원의 겉만 바라보지 말고 그 내면을 봐 주세요. 그리하면 더 깊이 볼 수 있고 더 많이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더 크게 기뻐할 수 있을 겁니다. 자연을 삶의 롤모델로 삼으십시오. 그렇게 되면 우정섬을 방문해서도 까치걸음으로 조심스럽게 꽃 사이를 걸으며 생명이 움트고 자라는 그 미세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알트만은 시민들과의 대화를 꾀했다. 언제나 환영하며 안내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 우정섬을 포츠담 시민들의 “내정원”으로 만들었다.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다가 그의 후계자가 된 정원사 외르그 네테 Jörg Näthe는 한걸음 더 나아가 <우정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작년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취소되기까지 그는 우사모의 회장을 역임하며 해마다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여 우정섬을 문화의 섬으로 만들었다. 2013년에 현 책임자 토랄프 괴치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현직에서 물러났으나 그 후에도 우사모 일을 보러 자전거를 타고 우정섬에 매일 출근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 제동이 걸린 것이다. 작년 가을에 많이 편찮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회복이 되어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하니 아마도 우정섬에서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정섬과 우정섬에서 열리는 여러 문화행사는 곧 그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에 사실 많이 걱정된다. 2월에 우정섬을 두번 찾았으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월 23일에 다시 찾은 우정섬은 봄맞이 대청소 작업으로 분주했다. 성급하게 산보나온 시민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2주에 걸쳐 구역별로 청소 작업을 한다. 사진에 찍힌 그라스도 지금은 모두 잘려 새순 내보낼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고정희]

© 3.SPACE MAGAZINE/정원의 해부학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