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NE플루언서와 우문현답 이어가기

희귀3종

김 봉 찬 편

더 가든 대표


더가든의 대표 김봉찬을 만났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한국의 식생과 풍토와 환경을 깊이 탐구한 드문 인물이다. 과연 누가 압록강 두만강 접경지역의 식물군락을 아노라 장담할 수 있을까. “자연에서 배웠다.”, ” 자연이 스승이다.”, “그 또한 자연에서 배웠다.” 로 시작하는 그의 답변은 그의 글처럼 간결하고 명료했다. 사실 좀 어처구니가 없다. 논문 분량의 답변도 부족할 엄청난 내용들이지만 그에겐 이미 일상인 것일까? 그의 저서, <자연에서 배우는 정원>을 읽다가 문득 철인삼종경기가 생각났다. <암석원>, <습지원>, <그늘정원> 은 모두 만들기 힘든 정원 장르이다. 김봉찬은 이들을 독학으로 맨땅에 헤딩해 가며 만들어 냈다. 만들어 낸 정도가 아니다. 백두대간수목원 암석정원, 평강식물원 습지정원 등은 사진만 보고 있어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러다가 지리산, 백두산, 한라산에서 풀씨를 수집하여 길러 평강식물원을 만들었다는 사연을 들었다. 철인3종을 철인4종으로 정정했다. 그런데 정작 김봉찬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 냈는지 스스로 잘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어쩐 일일까. 그건 아마도 그가 한 일의 진정한 의미를 미진한 사회에서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인정할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고정희]


고정희 인터뷰에 응해 주어 감사하다. 대개 말문을 트기 위해 좋아하는 나무를 물어보는데 김봉찬 대표의 경우에는 좋아하는 나무가 과연 어떤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

특별히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첫 직장이 식물원이었고 해마다 수백종의 씨앗을 뿌리고 키우며 그들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특별히 어느 하나가 마음에 들기보다는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질서에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굳이 고르자면 양치식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아직은 양치식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고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리고 더 근복적으로는 양치식물의 주 서식처인 숲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과 동경이 있는 것 같다. 오랜 천이의 과정을 거쳐 다다르는 안정된 숲의 질서와 원시 자연의 신비로움 같은 것들에 매료된다.

고정희 김봉찬의 저서 <자연에서 배우는 정원>을 읽는 동안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그러다 그늘정원 편을 읽던 중 문득 „철인삼종경기“가 생각났다. <암석원>, <습지원>에 이어 <그늘정원>까지, 김봉찬은 정원에서 가장 힘든 세 장르를 석권한 챔피언이 아닌가 싶다. 대학시절 선배들의 짐꾼을 자처하면서까지 산을 찾아다닌 것도 그렇고 편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러한가?

김봉찬 편한 것과 불편한 것을 잘 모른다. 그저 관심이 가고 좋아하면 집중하는 성격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타입이다. 사실 그래서 일상의 다른 것들에는 오히려 서투른 것이 많다.

식물분류와 생태를 공부하기는 했지만 식물원에서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정원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교과서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궁금하고 알고 싶으면 직성이 풀릴 때까지 파고 들어야 하는 성격이라 식물원에 있는 영국의 RHS 서적을 비롯해 정원과 관련된 책들을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내가 자연에서 보고 경험했던 것들이 정원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쓰이는지를 알아가면서 점점 더 흥미가 생겼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직접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운이 좋게 평강식물원을 만들어 볼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철인3종경기에 비유했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알고 싶었던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평강식물원을 조성할 때 고층습원을 계획하면서 다소 어렴움을 겪기는 했다. 다른 파트의 경우 다양한 생태조사를 통해 경험을 쌓아왔던 터라 서식처의 특성이나 재배방법 등을 빨리 습득할 수 있었지만 고층습원의 경우 국내에 서식처가 거의 없고 대암산 용늪은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그 당시 환경부에서 나온 연구논문을 참고하며 문헌으로만 연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제약이 많았다. 그러나 이탄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토양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물의 깊이나 토양층의 구조에 따라 식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이 어렵지만 그만큼 흥미로웠고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고정희 이제 국내에도 김봉찬의 <자연에서 배우는 정원>의 출판으로 정원 교과서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주도가 고향이라고 들었다. 파라다이스에서 태어나 사는 것이 부럽다. 김봉찬의 남다른 자연과의 교감은 혹시 제주도와 관련이 있는가? 어려서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나?

어린 시절 식물은 자연스럽게 늘 주변에 있었고 일상의 시간들 속에서 나에게 소소한 기쁨과 위안을 주었다

김봉찬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유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연은 삶의 터전이고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나뿐 아니라 동네의 모든 친구들이 자연 속에서 성장했다. 이름도 모르면서 원추리나 참나리를 마당에 심기도 했다.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꽃을 무척 좋아하셨다. 다알리아, 국화, 글라디올러스 등의 온갖 꽃들이 마당에 가득했다. 어머니와 누나의 손에 이끌려 들판으로 꽃을 구하러 다니던 기억도 있다. 일종의 식물사냥이었다. 초여름, 밖에서 한참을 놀다가 집으로 들어갈 때면 올레길을 따라 길 양쪽으로 수국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던 기억이 있다. 수국 꽃길 사이로 뛰어 집으로 들어가던 느낌이 여전히 생생하다.

고등학교 2학년때 늦은 사춘기가 왔다. 공부를 핑계로 어머니를 설득해 1년 정도 집을 떠나 절에서 지냈다. 절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 지내다 보니 시간이 많이 남았고 적적한 마음에 산책도 할겸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중산간 초지대의 들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재미삼아 채집을 해서 식물표본을 만들었는데 200점이 넘어갔다. 나중에 대학에서 식물을 공부하며 동정해보니 타래난초, 꼬리풀, 참취, 등골나물, 마타리 등이었다. 어린 시절 식물은 자연스럽게 늘 주변에 있었고 일상의 시간들 속에서 나에게 소소한 기쁨과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고정희 어린 시절을 자연과 함께 보냈다 하더라도 고등학교 2학년생이 초지대 들풀을 수집하는 건 좀 남다르다. 후일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에서 풀씨를 가져다 직접 키워 평강식물원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다른 수목원에서 식물소재를 구할 수 있었을텐데 굳이 그렇게 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김봉찬 사회생활을 식물원에서 시작했다. 식물원은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지만 그 중 매우 중요한 것이 식물의 현지외 보존이다. 자연상태에서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이 첫번째이지만 보안적 방법으로 서식처의 정보를 지닌 자연의 식물 씨앗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것이 식물원의 주요 업무이다. 원 서식처에서 씨앗을 가져다 키우는 것이 다른 영역에서는 이채롭고 특별해 보일 수 있지만 식물원에서는 기본적인 업무 중 하나다. 천리포수목원에서도 원산지가 명확하지 않은 식물들을 폐기하고 서식처 정보가 정확한 식물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식물이 자생지를 떠나 정원이나 원예농가, 식물원으로 옮겨지면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유사 종의 식물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있어서 자연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종간 수분이 진행되어 유전적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교배종들이 나오기 쉽다. 이 경우 일반적인 정원에서는 크게 상관없지만 식물원에서 이용하기에는 적합하지가 않다. 그래서 가급적 자연 상태의 식물에서 채집한 씨앗으로 직접 번식해서 이용하고 원산지와 이력을 정확하게 기입하여 관리한다.

고정희 얘기를 들어보니 식물원도 맨 땅에 헤딩해 가면서 만든 것 같다. 철인3종을 철인4종으로 정정해야 겠다. (웃음). 국립수목원은 모르겠지만 국립환경과학원에 종자은행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새로운 식물원이 설립되면 그것이 사립이더라도 국립수목원이나 국립환경과학원 등에서 딸 시집보낼 때 혼수감 싸 주듯 식물 소재도 분양해 주고 자문도 해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 그래야 마땅하다고 본다. 이곳에서 그러는 것을 보아와서 그런 것을 너무 당연히 여긴 것 같다. 암튼 고생도 했겠지만 그 덕에 큰 보람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당시 재배했던 식물이 지금도 재배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때 별도의 재배원을 만들었을 것 같은데 그러한가?

김봉찬 식물원을 만드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없다. 식물을 재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문화된 지식과 기술을 갖춘 인적시스템이 먼저 필요하다. 식물을 재배하기 이전에 사람을 교육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스터디를 시작했다. 식물원을 어떻게 계획하고 만들어갈지, 식물은 어떻게 수집하고 재배해야하는지 모든 과정을 의논하고 연구하고 함께 공부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재배온실을 만들고 씨앗을 수집해 재배하기 시작했다. 온실 면적은 약 1,500m2정도였고 백두산의 만주자작, 월귤, 백산차, 산진달래, 한라산의 털진달래, 섬바위장대, 시로미 등의 씨앗을 수집해 뿌렸다. 재배동은 현재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호기심이 발동하면 제어가 잘 안되는 성격이다

고정희 재배동이 그대로 유지된다니 다행이다. 수고스럽게 수집하여 재배한 식물이 사라진다면 큰 손실일 것 같다.
연못 청소가 하기 싫어서 자연에서의 연못처럼 청소 안해도 되는 연못을 만들 수는 없을까? 라는 착상도 압권이지만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구현한 것은 금메달 정도가 아니라 공로훈장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구현 과정에서 뚫어야 했던 난관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어떤 장애가 있었는지 들려줄 수 있는가?

김봉찬 큰 장애는 없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그저 흥미로웠다. 너무 재미있는 일이어서 다소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크게 난관이라 여기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나를 바라보는 동료와 선배들의 눈빛, 혹은 쑥덕거림 같은 것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라 괜찮았다. 욕도 좀 먹고 뭐하는 짓이냐는 소리도 좀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머리로 떠올리는 것이 어떻게 구현될지 그 기대로 머리속이 꽉 차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하면 제어가 잘 안되는 성격이다. 뭐든 해봐야하고 안 되면 또 궁리하고 시도해본다. 다행히 재배온실 뒤편에 이용하지 않고 방치된 수조도 있었다. 그걸 이용해 실험을 시작했다. 하나는 그냥 물을 담아 두고 다른 하나에는 내가 공부하고 구상한 법칙에 맞게 식물의 수량과 식물종 등을 맞춰 나름의 생태연못을 조성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농업기술원의 지인을 통해 수질분석을 의뢰했다. 내가 만든 생태연못은 2급수, 물만 담아 둔 수조는 4급수 판정을 받았다. 연못은 물이 맑아 수심 1m 깊이의 바닥으로 기어다니는 아주 작은 물벼룩이 다 보일 정도였다. 신이 났다. 그리고 확신이 생겼다.

고정희 대단하다. 수질분석을 통해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였으니 모두 할 말이 없었을 것 같다. 김봉찬은 정원을 조성할 때 세 가지 방향에서 접근함을 보았다. 우선 생태적 접근, 엔지니어링적 접근 그리고 미학적 접근이다. 이렇게 세가지가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출중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미학적 접근과 생태적 접근은 드물지 않지만 기술적 접근이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예로부터 인문을 중요시 여겨 조경, 조원에서도 기술적인 측면을 등한시하던 우리의 문화적 풍토에서 기술적인 해법을 세부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보고 가뭄에 비를 만난 듯 반가웠다. 모든 방법론을 스스로 개척한 것인가? 어떻게 기술을 습득했는지 궁금하다.

김봉찬 자연에서 배웠다. 원래 전공은 식물분류학인데 생태학쪽 연구들에 관심이 많았다. 기회만 되면 관련 연구를 위해 산으로 들로 돌아다녔다. 명지산, 백두산 압록강-두만강 접경지역의 식물사회학적 연구 등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하고 실제로 현장조사를 많이 했다. 현장을 다니다보면 자연은 좁은 곳에서도 다양한 식물의 사회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넓은 공간에서도 단순한 사회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것은 공간 내의 미기후나 토양의 차이로 일어난다. 다양한 서식처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반복적으로 오래 하다보면 그 안에 형성되어 있는 체계와 질서가 감각적으로 읽히게 된다. 나중에는 정보가 없는 낯선 식물을 보아도 그 식물의 형태적 특징을 통해 서식처의 환경과 생태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생태적 기반을 바탕으로 정원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것이라 이해와 습득이 빨랐다. 다만 그것을 검증할 기회가 없어 늘 아쉬었는데 평강식물원을 조성하면서 다양한 서식처 기반의 정원을 만들어 볼 수 있어 좋았다.

평강식물원 습지원. © 김봉찬

이 또한 자연이 스승이다. 생태를 공부했기 때문에 토양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고정희 압록강-두만강 접경지역의 식물사회학적 연구논문을 꼭 읽어보고 싶다. 기술적 접근 외에도 매우 인상깊었던 것이 토양에 대한 언급이다. 땅이 정원의 기본이라는 사실이 정원계, 조경학계에서도 널리 인지되고 있지 않은 상황인데 김봉찬은 토양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듯하여 무척 반가웠다. 조경학과는 물론이고 환경생태학에서도 토양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토양에 대한 그 풍부한 지식을 어떻게 습득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김봉찬 이 또한 자연이 스승이다. 생태를 공부했기 때문에 토양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숲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숲은 초원에서 백년 혹은 수백년의 시간이 지나 천이가 진행되어 나타나는 단계다. 숲을 이루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땅(토양)의 차원에서 본다면 가장 중요한 변화는 표토층의 부엽층이 발달하는 정도다. 수백년동안 낙엽이 쌓이고 그 낙엽이 잘게 부서지고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두터운 부엽층을 형성해 숲의 토양을 이룬다. 이 부엽층이 기반이 되어서 숲의 하층식생이 형성된다. 정원이나 조경현장에서 숲을 만들려면 숲의 부엽층을 재현해야 한다. 그래야 숲의 식물이 살 수 있다. 자연이 백년이 넘도록 공을 들여 한 일을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토양은 제각각이고 내가 원하는 성질의 토양을 판매하는 곳도 없다. 여기서부터는 연구와 경험이 필요하다. 구입이 가능한 소재를 이용해 혼합해서 가장 유사한 성질의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토양의 성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과 비슷하게 재현해야 한다. 마사, 피트모스, 왕겨, 부엽토 등의 소재를 어떤 비율로 혼합해야 하는지 시도하고 경험해야 한다.

고정희 비단 식물이 사는 기반으로서의 토양 뿐 아니라 거기에서 출발하여 우리 토양층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가는 본격적인 연구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산과 돌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지형의 기복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석을 쌓고 그 사이에 식물을 심거나 자연석으로 공간을 조성한 뒤 식물을 심은 정원이 적지 않다. 그러나 김봉찬이 말하는 암석정원은 물론 다른 개념일 것이다. 어떤 조건이 만족되어야 비로소 암석정원이라 할 수 있는가?

김봉찬 보통 돌을 이용하면 암석정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경우 암석정원의 의미는 대단히 포괄적이다. 서식환경이나 토양조건과 상관없이 암석이 장식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에서 암석이 나오는 환경도 꽤 다채롭다. 고산지대의 건조하고 척박한 토양조건도 있지만 제주 곶자왈 숲처럼 암반지대 위로 숲이 형성되고 다습한 조건이 유지되는 곳도 있다. 제주의 베케는 쟁기로 농사를 짓던 시절 밭을 일구며 나오는 돌을 한켠에 모아 쌓아둔 곳인데 기술적으로 쌓은 것이 아니어서 돌담이 엉성하고 틈이 많으며 이 틈으로 인해 내부에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작은 공간들이 생겨 수많은 곤충과 식물들의 피난처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이 또한 일종의 암석정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책에서 언급한 암석정원(Rock Garden)은 고산식물을 전시 또는 재배하기 위한 정원을 의미한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표현방식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이다. 수목한계선 이후의 고산지대 또는 이와 유사한 기후대의 식물들을 전시하기 위해 조성하는 일종의 고산식물원(Alpine Garden)이다. 보통 고산지대의 토양조건이 대부분 암반층이 많고 표토층이 발달하지 않아 자갈투성이거나 매우 척박하기 때문에 암석을 활용하여 유사하게 토양조건을 재현하게 된다. 때문에 암석정원이라고 하면 목표하는 식생이 확고하고 그것을 위해 서식처의 환경을 재현하는 것이 중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고산의 기후는 저지대의 정원이나 식물원에서 재현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토양조건을 최대한 충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고정희 대개는 암석정원이라고 할 때 그 심오한 뜻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암석정원의 정의가 그리 확고하다면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고유의 명칭을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고산암석정원, 백두암석정원, 한라암석정원 등으로 특화하여 부르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한편 고산정원풍혈지에 대한 설명이 인상깊었다. 그러나 풍혈지가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재현하려면 초기 투자비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후속 관리 등이 까다로울 것 같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김봉찬 풍의 암석정원 조성이 가능한가?

김봉찬 고산식물을 목적으로 하는 암석정원이라면 풍혈지를 갖추거나 이와 유사한 고산지대의 토양기반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고산식물에게 저지대의 덥고 습한 여름철 기후는 매우 혹독하다. 토양기반이 충족되지 않으면 재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재배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식물들을 선정해서 암석정원과 유사한 분위기의 정원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예를 들어 건조한 기후대에 적응한 일부 사초들이나 암대극, 꿩의비름과 같은 무난한 암석식물들을 이용해 적당히 암석정원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다습한 조건에서도 암반지대에 이끼나 양치식물들을 이용해 정원을 만들 수 있다. 식물과 그 식물에 맞는 토양조건을 충족한다면 일반적인 정원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디자인을 도입해 볼 수 있다.

고정희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고산식물의 종이 상당히 다양하고 희귀한 것도 많을 것 같다. 이런 식물들의 재배와 보급은 현재 어느 정도인가? 고산지가 아닌 곳에서도 충분히 자랄 수 있을만큼 적응된 식물이 많은가?

김봉찬 한국은 산지가 많기는 하지만 높은 산은 별로 없다. 고산식물은 수목한계선 이후에 나타나는 식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기후대에서 고산식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해발고가 2,000~2,500m 이상의 산이 있어야 한다. 남한의 경우 한라산 고지대에 일부 고산식물이 남아있는 정도이고, 백두산까지 포함하면 고산식물의 종이 꽤 되지만 접근이 어려워 활용이 쉽지않다. 그래도 약 20여년 전에는 고산식물의 구입이 용이한 편이었다. 당시 자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고산식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전문적으로 재배하고 보급하는 농가나 업체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지대에서 고산식물을 재배하는 것이 워낙에 쉽지 않은 일이라 활발하게 확대되지 못하고 지금은 오히려 많이 축소된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유행하는 정원의 양식이 변화하면서 고산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이 사라진 상황이다.

저지대에서 고산식물을 재배하는 일은 사실 대단히 어렵다. 전혀 다른 기후 조건에서 식물을 키운다는 일은 엄청난 도전이기도 하다. 유럽사람들이 암석정원의 토양기반을 고심하여 만들었던 것도 어떻게든 고산식물이 저지대에서 적응할 수 있는 유사한 환경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었다. 풍혈지를 만들고 토양기반을 갖추어도 쉽지 않은 매우 까다로운 고산식물들도 있다. 어렵고 힘든 분야여서 쉽게 관심 밖에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 식물들이 보급되고 활용도지 못 한 채 외국의 소재들로 정원이 채워지는 것이 아쉬웠다

고정희 동감이다. 고산식물에 대한 연구분야에 아직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외국 서적을 공부하고 거기서 배운 기법을 우리 풍토와 환경에 맞게 응용하기 위해 스스로 방법론을 개척해야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늘 정원>의 경우 어떤 고유의 방법론을 모색했는지 궁금하다.

김봉찬 외국서적을 가지고 정원공부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우리나라의 각지를 다니며 생태조사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오히려 우리의 풍토와 환경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간혹 유럽이나 미국에서 정원공부를 하고 온 후배들이 그들이 공부했던 환경과 우리나라의 환경이 맞지않아 애를 먹는 경우를 종종 본다. 특히나 고온다습한 장마철은 외국의 식물들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자연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기후와 토양, 식생의 관계를 알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적용과 활용이 가능하다.

고정희 그 말 후배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흔히 생태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봉찬은 예를 들어 백두산 식물을 가져다가 다른 곳에 적응시키기 위해 많은 실험을 했다. 자연을 길들이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의도로 그리하는가?

김봉찬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나 길들이는 의미는 아니다. 자연 상태에서 식물이나 식생을 보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백두산의 식물을 정원이나 식물원에서 키우는 것은 일종의 대안과 같은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지외보존은 식물원의 일차적이고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식물원에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식물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더욱이 다양한 생태조사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소재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식물들이 보급되고 활용되지 못한 채 외국의 소재들로만 정원이 채워지는 것이 아쉬웠다. 물론 전세계의 식물들이 모두 훌륭한 정원의 소재가 되기는 하지만 우리의 기후와 토양에 맞는 좋은 소재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식물원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원예, 정원, 조경분야가 발전할 수 없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시작은 늘 식물원에서 비롯되었다. 식물원에서 새로운 식물을 수집하고 전시하고 그 재배기술을 체계화하고 보급하였다. 유럽에서 정원이나 원예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기반에는 식물원이 있었다.

고정희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바로 그 때문에 존 밀턴이 식물원은 되찾은 에덴동산이라고 했었다. 실은 이 인터뷰를 준비하며 김봉찬이야말로 후학을 양성해야 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30년 동안 홀로 개척한 방법론과 그렇게 하여 쌓인 방대한 지식을 전수해야 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대학에서 러브콜은 없었는가?

김봉찬 아직은 없다. 그러나 내가 먼저 배우고 익힌 것을 나누고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늘 한결같다. 내가 좋아하고 흥미로워 했던 일이기에 함께 하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된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다양한 특강이나 강의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특히 자연에 대한 공부가 기반이 되어야 정원과 원예가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나라의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까이서 직접 경험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자연에서 공부하는 정원모임‘, ‘제주에서 공부하는 정원모임‘ 등을 통해 내가 경험한 것들을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다.

5분 스터디가 50분이 되기 일쑤지만 덕분에 회사 내에서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분위기가 갖춰졌다

고정희 자연에서 공부하는 정원모임의 일원들을 여럿 알고 있다. 모두 자연과 정원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아직 러브콜이 없었다는 게 이해가지 않는다. 대학도 대학이지만 <더가든>이 진정한 정원전문가 양성기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물론 유럽식 모델이다. 칼 푀르스터가 보르님 정원과 숙근초재배원에서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 듯, 김봉찬의 더가든이 앞으로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가능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봉찬 바라는 바이다. 늘 노력하고 있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직원들이 하나라도 더 얻어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더가든에는 전통적으로 5분스터디라는 것이 있다. 계절에 맞게 혹은 진행하는 업무와 관련이 있는 주제로 다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식물분류를 공부하기도 하고 정원을 만드는 기술적인 부분을 공부하기도 하고 디자인이나 미학에 대한 이야기도 끊임없이 나눈다. 5분이 늘 50분이 되기 일쑤지만 덕분에 회사 내에서는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분위기가 갖추어져 있다. 제주라는 환경적 조건도 큰 도움이 된다. 일을 하다가도 어렵지 않게 산과 바다를 누빌 수 있다. 공부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베케정원도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일종의 기초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정원의 구색을 더 갖추고 나면 더가든이라는 조경회사 파트를 축소하고 베케정원을 통해 내가 경험하고 익힌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아카데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제도적 지원이 있다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고정희 빠른 시일 내에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후배들을 양성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가든 뿐 아니라 실무업체가 교육기관으로 인정받거나 또는 산학협력의 차원에서라도 지원받을 수 있으면 바람직할 것 같다.
그런데 현재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정원 장르가 있는가?

김봉찬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도시공간 내에 자연주의 정원 혹은 생태정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데 빗물정원(Rain Garden)으로 풀어보고 싶다. 빗물정원은 단순히 우수를 처리하는 기능을 벗어나 도시 안에 심도있는 자연공간을 연출하고 자연의 요소들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복합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빗물정원의 가장 큰 형태적 특징은 함몰지다. 땅을 파서 물이 모일 수 있는 거대한 그릇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함몰지 위로는 비와 빛이 통과하는 소재를 이용해 동선을 설치하면 된다. 그러면 식물이 자라는 생육층과 사람이 이용하는 층이 수직적으로 구획되지만 한 공간 안에서 어우러질 수 있다. 함몰지는 비와 바람을 막아주고 공중습도를 높여주어 그 안에는 깊은 숲이나 원시의 자연림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식물들을 도입할 수 있다. 도심지에서 큰 공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깊은 자연성과 생태성을 회복할 수 있다.

고정희 좋은 발상이다. 장마철에도 함몰지가 기능을 제대로 해 줄지 약간 걱정은 되지만 그래서 더욱 필요한 정원인 것 같다. 나 역시 아까운 빗물이 모두 쓸려내려가는 걸 매우 안타깝다고 여기고 있다. 빗물정원 아이디어가 꼭 성사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철인5종으로 고치겠다.
오늘 이야기 고맙다. 또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김봉찬 대표님 좋은 시간 감사드립니다.

김봉찬은,

제주대학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했다. 제주 여미지식물원 식물 과장을 거쳐 평강식물원 소장으로 일하면서 식물원 기획, 설계, 시공 및 유지 관리와 관련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2007년 조경 업체인 주식회사 더가든을 설립하였고, 생태학을 바탕으로 한 암석원과 습지원 조성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평강식물원, 핀크스 비오토피아, 곤지암 화담숲 암석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암석원, 한남 모노하, 아모레 성수정원 등을 만들었다. 2015년부터 자연에서 공부하는 정원모임이라는 답사모임을 이끌고 있고 2018년 고향인 제주에서 베케정원을 오픈해 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문화의 장을 꾸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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