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NE플루언서와 우문현답 이어가기
김 연 금 편
조경작업소 울 소장
어린이 놀이터의 큰 언니 김연금 소장을 만났다. 후배지만 존경하는 사람이다. 실물을 만나기 전부터 그의 작업을 지켜보며 감복했다. 조경의 비인기 장르 어린이 놀이터를 입양하고 골치아픈 주민참여 방법론을 도입하여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는 그에게 내심 응원을 보냈다. 그의 글은 진솔했고 언어는 명랑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애정어린 시선이 마음에 진한 울림을 주었다. 온세상을 떠돌며 사는 나와는 달리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옥수동에서 자랐고 지금도 옥수동에서 살며 옥수동 옆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를 운영하는 그는 뿌리깊은나무처럼 보였다. 그가 좋아하는 느티나무를 닮지 않았는지. 남들이 거대담론을 논할 때 한평의 땅을 공원으로 만든 그는 작은 거인이다. 네 발로 바닥을 기어 다니며 골목길을 결국 어린이 놀이터로 만들어 놓은 그는 이 시대의 진플루언서다. [고정희]

고정희 인터뷰에 응해 주어 감사하다. 우선 본인의 이력을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김연금 2009년부터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 그 전에는 학교를 좀 오래 다녔다. 서울시립대에서 학부, 석사, 박사를 했고, 1년 동안 영국에서 박사후 연수 과정을 가지기도 했다. 내 이력에 많은 영향을 준 도시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의 활동은 1999년부터 시작했다.
고정희 조경작업소 울을 12년째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울>은 무슨 뜻인가?
김연금 보통 ‘울타리‘라고 말하지만, 의미보다는 발음이 좋아서 선택했다. 오히려 ‘조경작업소‘라는 단어를 많이 고심했다. 일반적인 설계회사 보다는 연구라던가 여러 다양한 형태의 일을 해야겠다 싶어서 ‘작업소‘라는 이름을 지었다.
고정희 <우리>를 함축한 것인 줄 알았다. 또 잘못 짚었다. 조경작업소란 개념도 무척 좋다. 조경작업소 울에서 하고 있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어린이 놀이터를 주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는가?
김연금 요즘은 놀이터 설계를 많이 한다. 어린이 놀이 관련 연구도 하고 있다. 전에는 골목길이라던가 생활공간 개선 사업을 많이 했다.
최근 가장 뿌듯했던 프로젝트
고정희 아래 사진을 설명해 줄 수 있나? 매우 흥미롭다. 6H 원칙에 따라 단답형으로 얘기해 주면 좋겠다.

언제?: 2020년 초가을
어디서?: 부산 동구 수성동
누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 종합사회복지관과 함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무엇을?: 다섯번의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사진은 마지막 워크숍 장면이다. 차량 통행을 막고 널찍한 공간을 일시적이나마 놀이공간으로 바꿔보았다.
왜?: 어린이들과 워크숍을 하면서 놀이공간이 부족하다는 게 명확하게 드러났고, 대안적 놀이공간을 실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분필, 바닥에 붙는 종이테이프, 종이상자로 임시적 놀이공간을 만들었다.
프로젝트 진척 상황은? : 반응이 좋아서, 부산 동구청에서 저 공간을 실질적 놀이공간으로 바꾼다고 한다. 올해는 다른 대상지를 찾아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최근 가장 뿌듯한 프로젝트였다.
한평 공원, 커뮤니티 디자인에서 놀이터 전문가로
고정희 지난 번에 환경과 조경의 남기준 편집장과 대화하면서 조경의 <장르>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어린이 놀이터는 그닥 인기없는 조경장르에 속하지 않을까 싶은데 굳이 비인기 종목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김연금 선택했다기 보다는 ‘그렇게‘ 되었다. 2002년부터 도시연대의 일원으로 도시의 작은 공간을 찾아내 주민들과 함께 공원으로 만든다는 ‘한평공원‘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자연스럽게 동네의 작은 공간, 커뮤니티 공간이라는 맥락에서 어린이놀이터 작업으로 연결되었다. 처음에는 ‘어린이‘, ‘놀이‘는 잘 몰랐는데, 피곤하게도 ‘이유‘를 알아내 스스로 납득해야 하는 기질이 강해서, ‘좋은 놀이터란?‘, ‘어린이들의 놀이란?‘, ‘놀기 좋은 도시 환경이란?‘ 같은 질문을 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한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 현장에서 이렇게 저렇게 실험을 하다보니 요즘은 놀이터 전문가로 이야기 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스스로도 참 신기하다.
고정희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공부와 ‚과외 활동‘에 몹시 시달리고 있다. 놀이터에서 놀 시간이 있나? 실제 놀이터 이용도, 이용현황에 관해 분석해 보았을 것으로 안다. 어떤가?
김연금 놀이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작년에 일산, 분당, 동탄, 위례 4 개의 신도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인지하는 놀이시간을 조사했더니 1시간 정도였다. 시간 뿐이 아니다. 놀이의 조건으로 시간, 공간, 친구를 말하는데, 세가지 모두가 부족한 실정이다.
도시연대와 주민참여 그리고 처음 따낸 프로젝트
고정희 시간, 공간, 친구가 부족한 어린이들의 상황은 누구나 지적하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한국의 고질병인 것 같다. 아쉽지만 이 자리에서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없으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조경작업소 울의 <참여형> 작업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한국에선 최초 아닌가? 참여형 설계 방식을 도입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김연금 대학다닐 때, 일본의 마을만들기를 접하면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삶터를 만든다는 게 흥미로웠다. 내가 살았던 공동체성이 강한 옥수동, 금호동의 정서가 영향을 준 면도 있다. 그리고 당시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사회적으로도 마을만들기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좀 제대로 알고 싶어서 도시연대라는 단체를 찾아갔고,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과 외국 문헌 보고 토론하면서 주민참여, 도시공간 조성에서의 주민참여를 공부했다. 그러다 앞에서 언급한 2002년 한평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혼자 제안서도 만들고 피티도 하면서 따낸 프로젝트였다. 또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때라, 자연스럽게 한평공원, 주민참여를 주제로 학위를 받았다.
고정희 참여형 설계의 역사가 오래 된 유럽에서도 형식적으로 치르는 경우가 더 많다. 귀찮지만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 이런 분위기이다. 조경작업소 울처럼 초지일관 고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참여형 설계가 즐거운가? 참여 과정도 놀이에 속한다고 보는가?
김연금 조경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참여형 설계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숙명처럼 하기도 한다. 가능한한 개별 워크숍을 재미있게 진행하려 하고, 하는 사람들 스스로 재미없으면 안되니까 매번 새롭게 준비하지만 준비 자체가 힘들기도 하고 워크숍 진행 중에 갈등도 있다. 하지만 논의 과정을 갖지 않으면 뭔가 불안하고, 확신이 서지 않는다. 참여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황과 방향성이 ‘드러‘나고 참여자들이 우리 편이 되는 과정은 즐겁다.
고정희 본인도 놀이를 좋아하나? 나 자신이 놀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놀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부러워서 묻는다.
김연금 어릴 때는 열심히 놀았다. 당시 금호동, 옥수동은 소위 말하는 서울 변두리였고, 동네에 공부의 개념이 없었다. 모든 아이들이 눈 뜨면 밖에서 놀았다. 그런데 어떤 놀이든지 잘하지 못했다. 고뭇줄 놀이를 하면 박자를 놓쳤고 그야 말로 똥손이라 공기놀이도 참 못했고, 달리기도 잘 못해서 술레잡기를 하면 술레가 되기일쑤였다. 지금은 잘 놀지 않는다. 눈 뜨고 많은 시간을 결과물을 만드는 데 쓰고 있다. 일할때 갖는 집중과 몰입감을 좋아한다. 어릴 때 놀면서 느꼈던 몰입감과 유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정희 처음 주민들에게 접근했을 때 반응이 어땠나? 그것이 몹시 궁금하다. 부모들과 아이들의 반응을 각각 설명해 달라.
김연금 조경분야에서 하는 일이 그렇게 이해관계가 예민하지 않기 때문에 큰 소리가 나는 경우는 별로 없고, 요청드리는 대로 다들 적극적으로 해주신다. 성인들은 처음에는 뻘쭘해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워크숍이 거듭될수록 집중하고 스스로 만든 결과물에 뿌듯해한다. 어린이들은 ‘어렵지만 재미있다‘라는 평을 많이 하고,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우리의 공간을 우리가 만들어서 좋다‘라고 말하는 어린이들도 있다. 워크숍을 하면서 어린이들과는 정이 많이 쌓이는데, 이걸 표현해 줄 때 울컥한다.
고정희 발주처가 공공기관일텐데 기관에서는 참여형 작업 방식에 대해 어떤 마인드를 가졌는지 궁금하다. 물론 천차만별이겠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와 십여년이 지난 지금 변화가 있나?
김연금 처음에는 귀찮아 했다. 지금은 많이 변했다. 형식적이라도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이후의 민원을 줄여주는 경험이 많이 쌓인 것 같다. 주민들의 의식도 높아져서, 주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진행할 경우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참여과정은 아직 열정페이
고정희 참여형 설계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시간이 걸리면 용역비도 올라간다. 참여 과정도 용역비에 가산되는가?
김연금 속상하게도 제대로 가산되지 않는다. 우리한테 참여를 강조하면서 디자인을 의뢰하는 경우에는 가산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는 변화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지속하고 있다.
고정희 조경작업소 울의 작업 방식이 다른 조경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한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페이스북에서의 공감도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작업 방식을 따라하는 곳도 생겼나? 겸손해 하지말고 사실을 말해 달라.
김연금 나 개인적 영향이라기 보다는 도시연대에서 시작된 주민참여에 대한 논의와 노하우가 조경분야뿐만 아니라 참여, 마을만들기, 최근에는 도시재생에 관심을 갖거나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2009년 도시연대 사람들과 함께 낸 ‘커뮤니티디자인을 하다‘라는 책으로 주민참여를 배웠다는 분들도 가끔 만난다. 그리고 한평정원이나 골목길 정원 같이 커뮤니티 내 자투리 공간을 주민들과 개선하고 가꾸고자 하는 사업은 한평공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싶다. 한평공원이 일반명사처럼 각종 도시재생 관련 보고서에 언급되는 걸 발견 할 때도 있다.
고정희 아래 사진을 보면 처음에 상견례하듯 서먹서먹 마주보고 있다가 나중에는 아예 지도 위에 올라앉아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이 보인다. 지도 위에 올라앉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특별한 얼음깨기 전략이 있는가?


김연금 순서가 바뀌었다. 위쪽 사진은 워크숍 이후의 평가자리이고, 아래쪽 사진이 어린이들과의 워크숍 자리다. 평가자리라 좀 딱딱해 보이는 것 같다. 어린이들과는 얼음깨기를 하지 않는다. 첫번째 워크숍 때는 어색하지만, 얼음깨기를 하지 않더라도 두번째 부터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말랑말해진다. 어른들과는 어린시절의 놀이 이름으로 빙고게임을 하거나 스파게티 면으로 탑 쌓는 게임을 하기도 한다. 팀별로 경쟁하는 게임이 가장 효과적이다.
고정희 아 그런가. 또 잘못 짚었다. 그런데 평가자리라고 했는데 무엇을 평가하는가?
김연금 의도한 대로 워크숍은 진행되었는지? 어린이들은 반응은 어떤지? 어린이 별로 다음 워크숍 때 고려해야 할 바는 없는지 등등이다.
고정희 조경작업소 울에서는 Wul_come welcome이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는데 직원들 교육용인가 아니면 대외 프로그램인가?
김연금 두가지 목적 모두 가지고 있다. 시민단체와 활동을 하면서 어떤 이슈를 사람들과 공유하는 자리의 필요성, 방식을 알게 되었고, 도시연대나 다른 시민단체, 연구기관, 같은 연배의 조경가 등 여러 주체와 다양한 공유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조경작업소 울에서 단독으로 시작한 건, 2017년 정도다. ‘Wul_come welcome‘이라는 이름은 2019년 한 직원이 포스터를 만들면서 다소 우발적으로 지었는데 좋아서 계속 쓰고 있다.
고정희 다음엔 김연금 소장의 책에 대해 함께 얘기하고 싶다. 응해 주겠는지?
김연금 물론이다. 가능하다면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이 대상이 되었으면 한다. 예전에 비해 집중력도 떨어지고 몇년 사무실에 집중하면서 글 쓰기를 멀리했더니 진도가 나가지 않아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좋겠다.
고정희 준비하고 있는 책은 어떤 책인가?
김연금 놀이, 놀이터, 놀기 좋은 도시에 관한 책이다.
김연금 소장님, 좋은 시간 감사드립니다.

김연금은,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2009년부터는 옥수동 옆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공동집필의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커뮤니티디자인을 하다’ 와 단독집필의 ‘소통으로 장소만들기’ ‘우연한 풍경은 없다’가 있고, 역서로는 ‘조경설계키워드 52’가 있다. 2020년에는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인 이규목 교수님을 비롯해 8분의 조경가들의 글을 엮어서 ‘이어쓰는 조경학개론’을 출판했다.
© 3.SPACE MAGAZINE/진플루언서와 우문현답 이어가기/김연금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