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공포영화

어디선가 폭죽 소리가 들린다. 동네 아이들이 작년에 쓰다남은 폭죽을 터뜨리는 모양이다.

12월 29일, 이틀 지나면 올해 마지막 날이다. 평소 같으면 성급한 폭죽 소리가 더 많이 들렸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어제부터 폭죽 판매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동네 슈퍼에서 날아온 광고지를 보니 폭죽 사진을 요란하게 실었다. 아마도 폭죽 금지령이 내리기 전에 이미 찍어 둔 모양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이미 연초에 주문해 둔다고 한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아무도 지금 이 지경까지 갈 줄을 짐작하지 못했다. 몇몇 선견지명을 가진 예언자들이 있었으나 그들의 말을 아무도 듣지 않았다.

독일에선 연일 감염자 수가 최고 3만까지 올라갔었으나 엄격한 봉쇄령이 떨어진 이후 조금씩 줄고 있다. 지난 24시간 내에 1만 3천으로 내려갔다고 발표했다. 사실 어이없는 상황이다. 코로나 시작할 때와 비교해 보면 하루 감염자가 1만이 넘는데 줄었다고 좋아하게 생겼으니.

지난 12월 14일에 폭죽 금지령이 내렸다. 폭죽 제작사가 망할 지경이라 몇몇 제작사가 합동 소송을 냈다. 오늘 고등법원에서 금지령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폭죽 제작사, 폭죽 대목을 놓친 상인, 폭죽을 터트리지 못해 안달 난 애어른들 모두 죽을 맛이지만 나는 모처럼 조용한 연말을 맞게 되어 좋다. 베를린만 확진자가 밤사이 800명 증가했다기에 나갈 생각 안 하고 그냥 집 지키고 있다.

해마다 12월 31일 밤에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열렸던 화려한 불꽃놀이 행사도 물론 취소되었다. 모든 것이 취소되었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 콘서트홀, 극장, 오페라하우스 모두 문 닫은 지 꽤 되었다. 박물관, 갤러리며 문화행사장은 물론 음식점, 카페 모두 문 닫은 지 꽤 되었다. 하루 삼시 집에서 해결해야 한다. 저녁에 산책 나가면 거리가 텅 비어 죽은 듯 조용한 것이 어디 공포영화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다. 다들 어디서 무얼 할까?

아닌 게 아니라 공포영화 맞다. 옛날 역병이 번졌던 때와는 달리 죽어 쓰러진 시체가 거리에 쌓여있지 않아 실감이 안 나고 숫자로만 전해지는 역병 소식이 더 공포스럽다. 병원에서 ‘클린하게’ 모든 것이 처리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아 그 심각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전 인구의 5% 정도라고 한다.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부자유하게 살기보다는 감염될 위험을 안고 살겠다는 사람도 있다. 개인의 결정권 운운하지만 문제는 본인이 조심하지 않아 감염됨으로써 가족이나 타인의 생명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또는 어차피 세계 인구가 너무 팽창했으니 인구 조절 방안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고 시니컬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막상 감염되면 아 나는 세계 평화를 위해 죽는다 그럴까? 아닐 것이다.

2021년에도 이 공포영화는 계속될 것이다. 아주 긴 시리즈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써드스페이스 블로거진/고정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