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1세의 황금소금그릇
프랑스의 르네상스 왕 프랑수아 1세(1494~1547)는 정원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취미는 “성을 짓는 것”이었다. 루아르 지방의 아름다운 성 중 상당수가 프랑수아 1세가 짓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에 르네상스 건축의 시대를 열고 이탈리아에서 정원예술가들을 불러들여 르네상스 정원을 도입한 인물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프랑스로 불러들여 성을 한 채 주고 작업하게 한 것도 그였다. 소금 그릇이야 어쨌건 프랑수아 1세가 언급되었으니 내 입장에서 일단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프랑수아 1세의 소금 그릇(Saliera) 사진을 보니 기도 안 찼다. 아무리 소금이 귀하다고 해도, 또 아무리 르네상스 인간들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다고 해도 소금 그릇을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만들다니. 그러나 아름답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 소금 그릇을 디자인하고 직접 세공까지 한 장인이 누구인지도 알려졌다. 그 유명한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1500~1571>가 만들었단다. 벤베누토 첼리니는 플로렌스의 천재적 조각가, 금세공가였으나 망나니에 살인자였다. 게다가 자서전을 써서 자신의 만행을 낱낱이 밝히기까지 했다.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면 그의 재주를 귀하게 여긴 높은 사람들이 다시 꺼내주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자서전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괴테가 독일어로 번역하여 실러가 발행하던 잡지에 연재했었다. 점입가경이었다. 그것을 뒷날 다시 감수하고 편집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그런 고로 그 자서전을 주문한 것이 오늘 온 것이다.
소금그릇은 원래 이폴리토 추기경이 의뢰한 것이라고 한다. 이폴리토 추기경은 수 백개의 분수가 있는 에스테 빌라 정원의 소유자였다. 벤베누토 첼리니가 모형을 만들어 가지고 가서 추기경에게 보였더니 “그걸 만드는 게 가능하겠느냐”면서 의뢰를 철회했다고 한다. 첼리니는 훗날 프랑스에 갔을 때 프랑수아 1세 왕에게 모형을 보여주었고 왕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완성할 수 있었다.
프랑수아 1세의 자손이 훗날 합스부르크의 페르디난드 왕자에게 선물한 까닭에 지금 이 소금 그릇은 오스트리아 빈 예술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유명 인사가 엮인 소금 그릇이 따로 있을까 싶다.
소금뿐 아니라 후추통도 겸하는 이 화려한 금세공품을 소금을 상징하는 바다의 신 넵튠과 후추를 상징하는 대지의 여신 텔루스가 장식하고 있다. 넵튠의 오른 쪽에 배 모양의 소금통울, 텔루스의 오른쪽에는 신전 형태로 후추통을 만들어 부착했다. 하단 역시 여러 형상을 부조로 조각하여 장식했고 바닥의 원판과 그 다음 층 사이에 구슬을 넣어 회전하게 만들었다.
벤베누토 첼리니는 중간에 사제가 되었다가 다시 파계하기도 했고 60세가 넘어서 결혼, 다섯 자녀를 낳았지만 동성애자로 여러 번 체포되기도 했다. 암튼 매우 격한 삶을 살다가 7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이런 삶은 다른 예술가들의 흥미를 깨울 수 밖에 없다. 베를리오즈, 생상 등의 음악가는 그의 삶을 오페라로 만들었고 알렉상드르 뒤마는 극 한편, 소설 한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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