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에서 미노아 문명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16쪽입니다.
기원전 2800~2400년경의 초기 미노아 시대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금 펜던트는 만개한 연꽃 모양이었으며, 함께 발견된 다른 장신구들 역시 데이지, 백합, 장미, 올리브 가지 모양으로 세공되었음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초기 정원에는 ‘작물’외에도 관상식물들이 정원에서 함께 자라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6 쪽]
만개한 연꽃 모양의 금 펜던트는 모르겠지만 데이지, 백합, 장미. 올리브 가지 모양의 금세공 장식품은 이라클리오의 고고학 박물관에 무수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노아 시대의 미술에 접하면 그저 감탄사만 나옵니다.

기원전 1850~1750. 파이스토스 궁전 유적지에서 발굴.
이라클리오 고고학 박물관 상시 전시.
©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미노아 인들은 청동기 시대에 크레타 섬에서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루고 살다가 홀연히 사라져 버립니다.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문명 중 하나입니다. 지진과 화산 폭발이 원인이었다는데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기원전 15세기 경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에 정복 당하는데 그때 서로 융합했다가 크레타섬의 의미가 축소하면서 서서히 시들어 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수한 건축물과 예술 작품을 남겼지만, 문자로 된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은 데다가 그나마 전해지는 약간의 문자도 아직 완전히 해독이 안 되어 미노아 문명의 실체는 확실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를 이루고 살았는지, 통치 제도는 어땠는지도 잘 모릅니다. 발견된 엄청난 규모의 유적지를 편의상 궁전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정말 궁전의 역할을 했었는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어느 문명에나 있었던 왕의 자취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노스 왕이 있긴 하지만 신화 속의 왕이어서 실존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1900년경에 크레타의 크노소스에서 유적지를 발굴한 아서 에번스Arthur Evans 박사가 “이것이 바로 신화에 나오는 미노스의 미로 궁전”이라고 선언을 해 버린 바람에 사람들이 그리 믿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 반론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청동기 시대의 글로벌화
기원전 2천 년을 전후하여 에게해로부터 근동 지방에서 이집트까지 크게 유행했던 풍조가 있었습니다. 사치스럽고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입니다. 당시 예술가들의 주가가 상당히 높았던 모양입니다. 아나톨리아에 근거를 두고 융성했던 히타이트 제국의 대왕이 어느 날 바빌론의 대왕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조각가 한 명 필요함. 빌려주삼. 반드시 되돌려 보내겠음.”((Zick 2011.)) 기원전 1700~1200년까지 근 오백 년 동안 레반테의 국가들, 즉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고 크레타의 미노아까지 어울려 서로 정치적, 사회 문화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고 합니다. 가히 청동기 시대의 글로벌화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전쟁만 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미노아 스타일”
이집트 벽화에서도 미노아 스타일과 유사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네바문 석묘 벽화). 그뿐 아니라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를 비롯하여 지금 이라크의 마리, 이스라엘의 텔 카브리, 시리아의 카트나, 지금 터키의 밀레까지 미노아 스타일의 벽화가 발굴되었습니다. 미노아 스타일이라고는 하지만 미노아에서 출발한 것인지의 여부는 잘 모릅니다. 터키에서 이미 기원전 6천년경부터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집트 역시 기원전 3천년대까지 벽화의 역사를 더듬어갈 수 있으니 터키에서 시작된 것일 수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미노아 프레스코 벽화의 수준이 월등했다는 점입니다. 이집트 벽화들이 도식화되어 있었다면 미노아 스타일은 생동감 있는 사실적 묘사로 확실히 차별됩니다. 크노소스 궁전에서 에번스 박사가 황소의 등에서 재주 넘는 곡예사의 그림을 발견했을 때 그야말로 “세상이 놀랐다.” 였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은 여러 학자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중해 유역, 레반테 등에서 발견된 유사한 벽화들을 분석해 보니 모두 크레타의 미노아 예술가들의 손길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즉, 다른 나라에서 미노아의 출중한 예술가들을 빌려다가 그리게 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고 있습니다. 다만 미노아 스타일이 다른 국가에서 정착하지는 못합니다. 수백 년간 유행한 건 사실이지만 맥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작품의 주제나 모티브가 지배자의 권력을 옹호하거나 그들을 영광스럽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사실적 묘사에 치중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실존했던 왕의 자취도 찾지 못하고 예술 작품에서도 지배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그런 미노아 문명은 혹시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었을까요?
미노아 스타일의 백합
황소 곡예화는 물론 대단히 놀라운 그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특별히 끄는 것은 식물을 묘사한 작품들입니다. 위에서 홉하우스 여사가 설명했듯 꽃의 묘사나 문양이 매우 다채롭고 아름답습니다. 그중 자주 등장하는 식물 모티브는 백합Lilium 혹은 나리입니다. 지금까지 두 종류의 나리가 확인 되었고요.
- 흰색의 마돈나백합 Lilium candidum: 아래 그림 중 왼쪽. 가장 오른쪽의 “백합 왕자 Prince of the Lilies” 그림(홉하우스 34쪽 그림 1.11)에도 비록 붉은색으로 채색이 되어 있지만 형태로 보아 마돈나 백합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확실치는 않습니다.
- 붉은색의 칼체도니아 백합 Lilium chalcedonicum: 중앙의 부분 확대 사진 (홉하우스 32쪽, 그림 1.9)



꽃을 모티브로 만든 금 장신구들


참고 자료
- Baumann, Hellmut (1982), Die griechische Pflanzenwelt in Mythos, Kunst und Literatur. München: Hirmer (Reise und Studium).
- Hobhouse, Penelope (2015),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 Plants in Garden History. Seoul: DAEGA publishing co., p. 16
- Wunderlich, Hans Georg (2007), Wohin der Stier Europa trug. Kretas Geheimnis und das Erwachen des Abendlandes. Köln: Anaconda.
- Zick, Michael (2011), “Die Minoische Modewelle. Archäologie – Geschichte”, Bild der Wissenschaft. online ⇒
©써드스페이스 블로거진/홉하우스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