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 188쪽

 

글: 고정희

“유럽 최초의 식물원은 1545년 같은 해에 피사와 파도바에 세워졌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 본문 188쪽에 그리 설명되어 있다.

당시의 식물원은 의약식물원이었으므로 의과대학 부속시설로 설립되었다. 물론 두 식물원이 한 날 한 시에 세워지진 않았을 것이다. 둘 중 과연 어느 것이 먼저였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찾아보는 자료마다 말이 서로 다르다. 피사와 파도바 식물원 측에서는 서로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식물원이라고 주장한다.

 

L'Orto Botanico di Padova

파도바 식물원. 사진: Semolo75. Wikimedia Commons. PD.

 

The oldest university botanical garden in the world(([파도바 식물원 홈페이지])) 

 

적어도 파도바 식물원의 경우 설립연도가 확실해 보이는 반면  피사 식물원은 1543년에 설립되었다고도 하고 1544년이라고도 한다. 피사 식물원은 고유의 홈페이지가 없어 피사 시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1543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반면 위키백과사전에서는 1544년이라 주장하고 있고.

평생 식물과 식물학자들의 역사를 추적하여 그 방면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는 Anna Pavord 여사 역시 1544년이라고 하니((Parvord, Anna: Wie die Pflanzen zu ihren Namen kamen, Eine Kulturgeschichte der Botanik, Berlin Verlag 2008, p.259)) 누구 말을 믿어야 할 지 매우 짜증스러워진다. 피사 시의 공식 정보를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

갑갑한 마음에 여러 서적을 뒤적여 보았다. 그 중 Helena Attle 여사의 설명이 가장 상세하고 설득력있어 보인다. 헬레나 님은 우선 피사인가 파도바인가에서 명확한 대답을 얻기 힘든 이유부터 설명한다. 파도바 식물원의 경우 조성 당시의 기록이 말끔히 보관되어 있는 반면 피사 식물원에 대한 기록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피사가 1543년, 파도바가 1545년에 설립되었음이 확인되었다.”((Attlee, Helena; Ramsay, Alex (2006): Italian gardens. A cultural history. London: F. Lincoln. pp. 46-47))고 했는데 어떤 최근의 연구결과를 말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헬레나 님의 책은 편하게 읽히고 내용도 매우 충실한데 일체 주석을 생략했다. 아마도 딱딱한 전공서적의 느낌을 주지 않으려 한 듯하다. 그럼에도 “최근의 연구결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뒤의 참고문헌 편으로 갔다. 다행히 챕터별로 참고문헌을 정리했기에 유추하기가 수월하다. 짐작컨대 Luigi Zangheri 의 Storia del Giardino e del paesaggio: il verde nella cultura occidentale, Leo S. Olschki, 2003 인 것같다. 이탈리아어로 된 책이다. “정원과 풍경의 역사. 서구의 녹색문화에 대하여” 쯤으로 번역이 가능할 것이다. 이탈리아어로 전공 서적을 읽을 주제가 못되므로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아직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헬레나 님의 발언을 일단 수용하기로 했다.


식물원 조성 당시의 상황은 이러했다.

1540년 경에 설립되었으니 이 때는 르네상스 중기 정도에 해당한다. 아직 중세의 티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했던 때였다. 중세의 식물은 우선적으로 그들의 의약적 기능에 따라 평가되었었다. 중세 천 년 동안  쓰였던 약용식물에 대한 ‘교과서’는 단 세 가지였으며 모두 고대에 집필된 것들이었다. 천년이 넘은 교과서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 테오프라스토스Theophrastos (기원전 370-286년)((본문: 23 그림 1.3 /35 / 36 그림 1.12 / 47 / 63 인명 /66 /233)): ⌈식물연구 An Enquiry into Plants⌋
  • 플리니우스 1세Plinius the elder (서기 24년경~79년) ((본문: 35/38/45/46/52/64 인명/81/124/139 그림 3.10/174/243)): ⌈박물지 Naturalis historia⌋
  •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 (서기 1세기 생존)((본문: 35/36/38/40/52 그림 1.23/53/56/58/60/63/74/78/82 그림 2.6/92/95 그림 2.12/115/126 그림 3.3/127/174/175 /177/198/199 그림 4.18/220/225)) : ⌈약물에 대하여 De materia medica⌋

특히 디오스코리데스의 ⌈약물에 대하여⌋는 전 유럽에서 약용식물의 기능과 성분, 재배법, 수확법 등을 배우는 약물학정석 정도로 여겨져 널리 참고되었었다.

그러던 것이 14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변화가 왔다. 해부학이 시작되어 의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의학의 발전은 다시 고대 의학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의학에 대한 의구심은 약학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졌다. 의사들은 그동안 성서처럼 여겼던 디오스코리데스의 불충분한 설명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15 ~ 16세기에 몇몇 의약자들이 위의 삼대 고대 의약서적에 대한 해석본을 집필했다. 거기서 출발하여 일반적인 식물에 대한 연구로 확대해 나갔으며 식물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고 약전에 포함하는 작업이 활발해졌다.

1536년 브라사볼라Antonio Musa Brassavola라는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 어르신이 열거한 약초는 세상에 존재하는 약초의 백분의 일도 되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 매일 새로운 약초를 발견하여 첨부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의학도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다.” ((Attlee 2006, p. 41))

이 시기에 집필된 의약서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1545년 피에르안드레아 마티올리 Pierandrea Mattioli((본문: 53/175/179/184/198 그림 4.17/199/210/218/220/225 인명))가 집필한 여섯 권의 디오스코리데스 주석본일 것이다. ((Commentarii in sex libros pedacii Dioscoridis)) 대개는 “코멘타리” 라고 줄여서 부른다. 마티올리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파도바 의학과에서 수학하고 식물학자로 명성을 떨쳤으며 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삼대에 걸쳐 주치의로 일했다. 마티올리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식물학자들로는 레온하르트 푹스Leonhart Fuchs,  루카 기니Luca Ghini((본문: 218/223 인명/230/)), 알드로브란디Aldrovrandi((본문: 332 그림 7.1)), 콘라드 게스너Conrad Gesner((본문: 177/218/219/224 인명)) 등이 있었으며 이들 덕에 약 1200 종의 식물에 대해 매우 정확하고 상세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디오스코리데스의 600 종에 비해 두 배로 증가한 것이다.

마티올리의 코멘타리는 디오스코리데스의 주석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신대륙과 오리엔트에서 건너 온 식물들도 포함하고 당시 알려진 모든 식물에 대해 수집할 수 있는 정보를 종합, 정리하여 세밀화를 삽입한 일종의 식물도감이었다. 판본이 거듭될 수록 증보되었고 삽도 역시 정교해 졌다. 처음에 라틴어로 쓰였으나 곧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보헤미안어로 번역되어 휴머니스트들, 시인들, 교황과 왕자들의 서고에 반드시 꽃혀야 하는 필독도서목록에 들어갔다. 곧 중산층과 평민들 사이에서도 유행이 되어 16세기 말에 무려 삼만 본이 팔렸다고 한다.

상인, 선인, 외교관, 선교사 , 탐험가들이 해외에서 식물을 들여오고, 식물학 서적이 팔리는 등 명실공히 식물의 시대가 왔다.  특히 외래종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빌라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은 이런 귀한 식물을 구해다 심고 싶어했다. 그러자 식물이 새로운 교역 품목으로 부상했다. 선원들이 식물 채취법, 보관법, 운반법을 배우고 배에 별도의 식물보관창고를 지어 본격적인 식물거래에 나섰다. 베니스의 상인들은 예로부터 동양에서 양념, 향료, 약초 등을 수입하여 팔아서 높은 수익을 올렸었다. 이제 포르투갈의 선원이나 탐험가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고 신세계에서 약초들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쏟아져 들어오는 식물종으로 인해 약전이 나날이 확장되었으므로 의사들은 이에 보조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파도바 대학 의과의 프란체스코 보나페데Francesco Bonafede교수가 의대 내에 식물학과를 개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시 파도바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관활권 내에 있었으므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원로회에서 이를 승인했다. 1533 파도바 대학에 식물학과가 설립되었다. 프란체스코 보나페데 교수를 책임자로 임명하고 본초학과 교수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했다.

한편 볼로냐 대학에 루카 기니Luca Ghini (1490~1556)라는 저명한 교수가 있었다. 본래 의과 교수였는데 1534년 약용식물학과가 개설되면서 본초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 때부터 기니는 식물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학교 당국에 건의했으나 번번이 무시되었다. 그러던 중 코시모 메디치 대공 1세가 기니를 피사 대학의 본초학과 교수로 초빙하고 식물원을 조성해 달라고 부탁했다. 볼로냐에서는 뒤늦게 연봉을 인상해 주며 기니를 붙잡으려 했으나 이를 사양하고 피사로 갔다. 이 때가 1543년이었다. 기니 교수가 바로 식물원 조성 작업에 착수했을 것이므로 피사의 식물원은 늦어도 1544년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기니 교수가 1543년부터 연봉을 받았다는 명세서가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코시모 공작이 식물원 부지를 1545년에야 임대했다는 사실이다. 문서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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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바 식물원 조감도. 식물원이라고는 하나 의약원(Orto dei Semplici)에 가깝다. 16세기 동판. 작가 불명. Source: Wikimedia Commons. PD

 

Padova Botanical Garden_Tomasini 1654

파도바 식물원 배치도. 1654년 Tomasini가 그렸다.

 

Padova Botanical Garden_google earth

파도바 식물원 현재 모습. 초기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출처: google earth

 

Pisa botanical garden

피사 식물원 배치도. 출처: Catalogus plantarum horti Pisani 1723

 

Pisa botanical garden_google earth

피사 식물원 현재 모습. 여기에도 기본적인 구조를 보존하고 있다. 출처: google earth

파도바의 프란체스코 보나페데 교수 역시 식물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십년 동안 원로회를 설득했었다. 식물학과는 있으나 식물원은 아직 없었기 때문이었다. 1545년 마침내 승인되었다.  이때 초대 원장으로 부임해 간 식물학자 루이기 앙길라라Luigi Anguillara는 볼로냐에서 기니 교수에게 수학한 제자였다. 식물원 조성과 운영에 대해 기니 교수의 자문을 받았다. 그러므로 피사와 파도바의 식물원은 인맥을 통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교량 역할을 한 이가 루카 기니 교수였다.

결론은?

홉하우스 여사의 책은 1992년에 처음 나왔는데 신중히 문서를 다 살피지 않은 듯하다. 헬레나 여사가 말하는 “최근 연구결과”는 2003년도의 것이다.  직접 피사, 피렌체 등을 다니며 모든 기록을 꼼꼼히 살피고 2008년도에 책을 낸 Anna Pavord 여사는 피사 식물원 설립연도가 1544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문서가 정확하지 않으므로”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는 헬레나 여사의 결론이 옳은 성싶다. 식물원 부지를 1545년도에 임대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사실 도토리 키재기일 것이다. 어느 곳이 먼저랄 것없이 두 식물원이 하나의 정신적 유산 하에 조성된 것이므로 홉하우스 여사의 결론 “같은 해에 설립되었다.”를 그대로 두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참고 문헌

  • Attlee, Helena; Ramsay, Alex (2006): Italian gardens. A cultural history. London: F. Lincoln.
  • Pavord, Anna (2008): Wie die Pflanzen zu ihren Namen kamen. Eine Kulturgeschichte der Botanik. 1. Aufl. Berlin: Berlin Verlag.

©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