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입김을 불어 넣은 곳

2월 이맘 때가 되면 바이마르의 일름파크가 떠 오른다. 2012년에 갔었으니 거의 십년이 되었다. 2월 말이 생일인데 바로 그 해부터 생일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맨날 그렇고 그런 생일축하파티를 피하기에는 딱이었다. 이젠 친구들도 내 생일이 되면 이번엔 어디니? 라면서 축하전화 내지는 문자를 준다.

2월 말이라 논의 끝에 도시여행을 테마로 잡았다. 그래서 처음 찾았던 곳이 유서깊은 고전주의의 도시 바이마르였다. 괴테가 빚어놓은 도시. 곳곳에서 괴테의 흔적을 만났지만 일름파크만 한 곳이 없었다. 그때 찍었던 사진을 다시 뒤적이다 보면 마치 옛날 앨범 속 동창생을 만난 것처럼 마음에 다정이 차 오른다.

일름파크의 공식명칭은 일름강변공원이다. 남남동쪽에서 바이마르 시로 흘러들어 와 굽이치던 일름강이 다시 북동으로 사라져가면서 양변에 넓은 평야를 부려놓았다. 물이 넉넉해서 중세에는 과수원을 만들어 가꿨다. 그러다 바로크 정원이 되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1613년 5월 29일 대홍수 때 단 하루만에 정원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파괴가 너무 심해 복구를 포기했고 그 덕에 문자그대로 백년의 잠에 빠지게 되었다. 중간에 사람들이 채소밭으로 이용하기도 했고 30년 전쟁이 끝난 뒤 방사선 모양의 길을 내어 다시 정원으로 가꾸어 보려 노력한 흔적도 있었으나 1776년 괴테가 나타나기까지 거의 자연에 맡긴 상태였다. 길이 약 1.6km, 평균 폭이 3백 미터, 총면적 약 48 헥타르의 땅이 고스란히 숲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하수위가 높고 샘도 솟아오르는 곳이라 나무들이 아무 방해없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괴테가 보니 풍경정원이 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지금같으면 도시숲으로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낭만주의 풍경정원의 시대였다.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추밀참사관이었으므로 공원 조성의 방향을 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직접 설계하고 조성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뵈를리츠 정원왕국에 자주 드나들며 많은 영감을 얻어 왔다.

화가 뺨치게 그림도 잘 그렸던 괴테가 그린 일름파크. 출처: Stiftung Weimarer Klassik, Goethe-Nationalmuseum, Corpus 1, 178 Inv.-Nr. 1923

자연스럽게 자란 숲에 나무를 솎아 산책로를 내고 로마하우스, 괴테 초당, 고딕폐허 등의 소건축물을 배치하여 뷰의 방향을 설정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시인의 입김을 불어 넣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름파크 곳곳에서 만나는 시인들의 흉상이 시인이 만든 정원임을 알게 한다. 처음 조성된 이후 거의 손대지 않고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까닭에 유네스코에서 바이마르 시의 여러 문화재와 일름파크를 한데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내가 일름파크의 풍경을 자주 떠올리는 까닭은 그곳의 오래 된 나무들 때문이다. 아무 방해없이 오랜 시간 묵묵히 자랄 수 있던 덕에 나무하나하나가 그대로 천연기념물 감이다. 하지만 긴 겨울끝에 봄에 대한 설레임을 알리는 2월의 물오른 나무들과 그들이 자아낸 풍경이 그립기 때문이다. 올해는 생일 여행을 떠날 수 없기에 더 그리워지는 것 같다. [고정희]

서쪽으로 도심에 면해 있는데 이곳에 궁전, 아말리아 도서관, 프란츠 리스트 하우스 등이 있다. 1: 바이마르궁전, 7: 아말리아 도서관, 12: 괴테 가든하우스, 18: 프란츠 리스트 하우스, 30: 로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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