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하우스 2015,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서양 정원사 – 해설

32쪽 그림 1.9. 산토리니 섬에서 발견된 벽화. 기암괴석에 칼케도니아 백합이 피어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 다음 벽화에 <사프란 따는 여인들>을 묘사했다고 한다.

어떤 그림일까?

바로 이 그림이다. 사프란 따는 여인들이 너무 아름답고 세련되어서 일명 파리지엔느라 불린다. 아리따운 여인들이 예쁜 옷을 입고 머리도 곱게 빗고 바위 사이에 핀 사프란의 암술을 따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홉하우스 책 32쪽에서 바로 이 장면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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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프란 채취하는 여인. 산토리니 섬에서 발견된 벽화(부분). 기원전 1600-1500년. Public Domain.

옛날에 어머니께서 모시 적삼을 치자로 노르스름하게 물들이시던 기억이 난다. 잔치 때면 전을 부치실 때도 노랗게 물들이셨던 것 같다. 식용 색소가 나돌던 시절임에도 치자로 물들이시기를 고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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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프란 꽃의 암술대. 가장 품질이 좋다고 알려진 이란 사프란. © Rainer Zenz. Public Domain.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스페인 음식 파엘랴를 보았을 때 “어 치자로 물들였나?” 이랬었다. 알고 보니 사프란이라는 빨간색의 가느다란 실 같은 것으로 물들인다고 했다. 생긴 것이 꼭 한국의 실고추 같아 보였다. 이게 실고추가 아니고 사프란이라고? 너무 비싼 물건이라 조심스레 조금 맛을 보니 약간 쌉쌀하고 매캐한 맛이 났다. 향은 기가 막히다. 맛과 향이 따로 노는 것이다. 이걸로 파엘랴의 쌀을 노랗게 물들인다고 했다.

사프란Corcus sativus은 크로커스의 일종이다. 다만 일반 크로커스와는 달리 붉은색의 긴 암술을 가지고 있다. 고대로부터 이 암술을 별도로 채취해서 향신료로 썼다. 특히 음식에 넣어 아름다운 노란색을 내는 데 쓰였으며 염료로도 이용되었다. 아주 작고 가는 암술대를 일일이 손으로 조심스럽게 채취해서 말려야 하므로 지금도 사프란은 가장 비싼 향신료에 속한다. 사프란 꽃 150만 개에서 1 kg의 양념을 얻는다. 재배면적으로 약 1만 제곱미터에서 1kg의 수확을 얻는 셈이다. 그러니 금값일 수밖에 없다. 대개 아주 작은 투명한 케이스에 1그램씩 넣어서 파는데 그램당 가격이 7-25유로 사이. 그보다 싼 것은 십중팔구 가짜이거나 대체 품목일 확률이 높다.

사프란 크로커스는 에게해 지방이 원산지로서 Crocus cartwrightianus의 돌연변이 종이다. 염색체가 짝수가 아니라 3배수로 이루어진 특이 종이기 때문에 정상으로 번식이 안 된다. 오로지 덩이줄기를 갈라서만 번식할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생장 조건이 까다로워서 재배 지역도 한정되어 있다. 대개 아프카니스탄, 이란, 카시미르, 남프랑스, 스페인, 마로코, 그리스, 터어키,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 재배된다. 그중 이란산이 최고의 품질을 가졌다고 알려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진작 재배에 성공했으며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에서도 일부 재배하기는 하지만 진짜 사프란이 아닌 대체종이며 그나마 날씨 조건에 크게 좌우된다. 스위스에서의 연간 수확량이 1.5~2 kg 밖에 안되다는데 왜 굳이 직접 재배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독일도 드레스덴 등 일부 온화한 지역에서 재배에 성공했다. 그러나 워낙 일조량의 차원이 다르다 보니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산의 사프란만큼 향이 좋지는 않다. 다만 저렴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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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사프란 들판 정경. © Roland and Sabrina Michaud / akg-images. 1981.

홉하우스 책에서 사프란이 언급되는 곳:

  • 29쪽: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 중 동부 고원에서 피는 사프란을 보았다.
  • 32쪽: 그림 1.9에서 칼체도니아 백합을 언급하며 “그 다음 벽화는 사프란을 얻기 위해 사프란 크로커스를 채취하는 여인들을 묘사했으며… “라 설명.
  • 78쪽: 11세기 중반에 이슬람 지역에서 사프란Crocus sativus이 약용으로 혹은 조미료, 살균제, 염료로 사용되었다
  • 81쪽: 스페인의 무어인 – 세비야의 대주교 이시도르Isidore가 그의 저서에서 사프란 외에 사탕수수, 생강, 녹나무, 뽕나무 등을 언급했다.
  • 91쪽: 터키의 원예술 – 기원전 2000년부터 히타이트인(아시아에서 건너 온 투르크 족)은 사프란 크로커스 등 구근식물(덩이줄기식물)을 재배했다.
  • 97쪽: 11-12세기 스페인에서 활동하던 아랍 식물학자들 중 이븐 바살과 이븐 알 아왐이 남겼다는 긴 식물 목록 중에도 역시 사프란이 포함되어 있다.
  • 104쪽: 인도의 무굴 정원 – 세밀화에서 가을의 사프란 들판이 묘사되었다고 함.
  • 457쪽: 존 바트램과 그의 아들 윌리엄 – 존 바트램이 아들 윌리엄에게 보낸 식물 중에도 사프란이 포함되어 있다.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affron_gatherersSantorini.jpg?uselang=de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rocus_sativus_001.JPG?uselang=de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rocus_sativus_01_by_Line1.JPG?uselang=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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