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잔디 The English Lawn

또는 녹색 융단

글: 고 정 희

독일 딕성의 풍경정원. 공들여 조성한 ‘영국잔디밭’. ©JEONGHI GO

17세기를 살았던 프란시스 베이컨이 “짧게 자른 녹색 잔디만큼 눈을 상쾌하게 하는 것은 없다”고 한 적이 있다.[1]Hobhouse 2002; 401 절대 공감이다. 녹색 융단을 방불케하는 완벽한 잔디밭을 유럽에서는 대개 “영국잔디”라고 한다. 영국에서 출발했기 때문 만이 아니라 영국 기후조건이 녹색 융단같은 잔디밭을 만들기에 최적이기 때문이다.

일년내내 비가 고르게 내려 우산을 늘 가지고 다녀야 하는 나라. 여름에 너무 덥지 않고 겨울에 너무 춥지 않으며 공중 습도가 항상 높은 나라. 잔디생육에 완벽한 기후조건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철 녹색으로 싱그럽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일년의 절반은 누런색으로 변하지 않는다.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몹시 부러워한다. 예를 들어 독일 정원 잡지에 보면 “영국처럼 완벽한 잔디밭을 가꾸는 비결” 에 대한 설명을 자주 만난다. 한번은 “영국잔디 팝니다”라는 광고를 보았는데 영국잔디를 판다는 것이 말이 돼? 그러면서 들어가 보니 인조잔디 광고였다(!). 

잔디의 생태점수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잔디밭이 서서히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가 지금은 영영 수세에 몰리고 있다. 잔디의 녹색이 눈을 쾌적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태점수가 낙제점이기 때문이다. 낙제점 정도가 아니라 영점에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2]umweltnetz-schweiz.ch 우선 관리가 너무 까다롭고 에너지와 물이 많이 소비되며 종다양성은 제로에 가깝다. 특히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탄소저장 기능이 형편없다. 풀이라고 광합성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잔디기계, 비료 투입이 초래하는 환경배출량은 그 네 배 이상이 된다. 축구장 등 스포츠 잔디나 골프장 잔디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집중적 관리는 집중적 에너지 소모와 직결된다.

자연주의 정원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극히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매우 인위적인 잔디밭이 비판대에 올랐다. 영국의 윌리엄 로빈슨, 독일의 칼 푀르스터가 그 선두에 섰다. 윌리엄 로빈슨은 잔디밭 대신 수선화풀밭을 요구했고 칼 푀르스터는 잔디밭을 낭비된 면적으로 보았다. 그 면적이면 아름다운 식물을 얼마나 많이 심을 수 있는데… 잔디밭을 보면 노여워서 심장박동이 올라간다고 했다.

굳이 생태점수를 들지 않아도 일년의 반은 누런 상태인 우리나라 잔디밭은 “쾌적함”과는 정 반대의 효과를 준다. 영국잔디가 미국을 거쳐 한국에 상륙한 뒤 조경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 틈에 우리 일상 풍경을 지배하게 되었다. 바다 두 개를 건너오는 사이 사철 짙푸른 잔디가 누렇게 변한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제 잔디밭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18세기, 영국

18세기 말 영국 서리지방에 펜스힐 파크를 조성하면서 찰스 해밀톤 경이 이렇게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에 가장 흔하게 심었던 풀은 호밀풀Lolium perenne 이었으므로 해밀턴 경도 호밀풀씨를 뿌렸을 것이다. 대개는 흰토끼풀을 섞어주었다는데 붉은 토끼풀을 섞은 것이 특이하다.  토끼풀을 섞어야 잔디가 조밀해진다. 잔디 종자가 아직 상품으로 유통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방목지에서 풀씨를 모아다가 심었다고 한다. 호밀풀 말고도 큰조아재비Phleum pratense, 오리새Dactylis glomerata 등도 심었으며 모두 12~15종의 그라스를 주로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3]Wimmer 2014; 188 잔디가 그리 중요했음에도 1801년에 잔디를 다룬 전문 서적이 처음 나타난 것을 보면[4]Johannes Gottlob Mauke, Grasbuechlein, Leipzig, Jacobäer. 방목지에서 자연스럽게 잔디밭으로 전이되어 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호밀풀은 요즘에도 가장 많이 심는데 그 외 포아속, 검은겨이삭 속Agrostis, 꼬리새속Festuca도 많이 심는다.    

이렇게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서 귀족들은 골프와 테니스를 치고 크리켓 등의 스포츠를 즐겼다. 정원사들을 여러 명 고용할 수 있었던 영국귀족들에겐 문제가 없었겠지만 예를 들어 개인주택에 영국잔디밭을 직접 조성하여 완벽하게 가꾸려면 그런 중노동이 따로 없다. 

영국잔디를 완벽하게 가꾸는 비결 열가지:

  1. 봄에 해동 되자마자 조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
  2. 우선 잔디심을 땅의 잡초를 뿌리까지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면을 고른다. 이때 15~20cm 깊이로 잔디용 고운 모래(입자크기 0.25~3mm)와 퇴비를 섞어서 넣어주어야 한다.
  3. 잔디씨를 아주 고르게 뿌리는데 이때 물론 왜건spreader wagon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4. 잔디종자는 소위 말하는 광발아 식물이기 때문에 (밝은 곳에서 발아하는 식물) 흙으로 완전히 덮어주지 말아야 한다. 
  5. 파종 후 일정 기간 정기적으로 관수해야 한다.
  6. 정기적으로 비료를 주어야 한다. 
  7. 잔디풀이 6~8cm 정도 자라면 처음으로 잘라준다. 이때 롤잔디기계를 이용하여 곱게 잘라주는 것이 중요하다. 4~5cm 정도 남기고 자른다.
  8. 잔디를 자를때 지그재그로 이동하지 말고 직선으로 똑바르게 이동해야 영국잔디의 느낌을 낼 수 있다. 우선 한번 자른 뒤 잘린 풀을 깨끗이 긁어 제거해야 한다. 그 다음에 횡방향으로 다시 한 번 자른다.
  9. 2년 정도 지나서 잔디밭이 자리가 잡히면 이른 봄에 잔디에 고루 칼집을 내 준다. 물론 칼집을 내는 기계가 따로 있는데 가든센터 등에서 임대할 수 있다. 가을에 2cm 길이로 짧게 잘라주고 다시 칼집을 내준다. 이후 해마다 봄과 가을에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이끼 등을 모조리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그래서 빈자리가 생기면 바로 새로 파종하고 비료를 준다. 칼집을 낸 뒤에는 모래를 2cm정도 덮어주면 더욱 좋다. 칼집을 내고 모래를 덮은 다음 몇 주 동안 잔디밭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10. 정기적으로 관수하여 토양표면이 마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나 토양표면이 너무 젖으면 안되니 적절하게 조절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5]gartenjournal.net

20세기 후반 부터 공원의 잔디밭은 대개 더부룩한 풀밭으로 변했지만 개인주택정원이나 주말정원에선 아직도 영국잔디를 숭배하여 손톱가위로 다듬는 보수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은 지저분한 ‘생태풀밭’을 혐오한다.

 

잔디에 대한 생각, 앞으로 이어갑니다.


참고문헌: 

Penelope Hobhouse (2002), The Story of Gardening, London Dorling Kindersley.

Clemens A. Wimmer (2014), Lustwald, Beet und Rosenhügel: Geschichte der Pflanzenverwendung in der Gartenkunst. Weimar: vdg.

외부 링크:

Gräser für Rasensaagut: Die Mischung macht’s (meine-rasenwelt.de)

Englischer Rasen » Säen und pflegn (gartenjournal.net)

3.SPACE MAGAZINE / 테마 / 잔디이야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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