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의 봄 장면을 연출하는 방법에 관하여

글: 고정희

보티첼리의 명화 “봄”을 감상할 때 대부분 아름다운 플로라 여신에게 시선을 준다. 그런데 플로라 여신보다는 여신이 맨발로 사뿐히 즈려 밟고 있는 풀밭에 시선을 꽂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 정원사들이다. 아, 나도 저런 꽃피는 풀밭을 만들고 싶어.

20세기 초반, 영원한 녹색의 융단잔디를 거부하고 보티첼리의 꽃피는 풀밭을 원했던 일련의 정원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잔디에 동그랗게 혹은 기다랗게 꽃밭을 만드는 촌스러운 방법은 절대 사양했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이 만든 풀밭을 본뜨는 것이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야생화풀밭을 만드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정원사도 있다.1) 마음만 앞서고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고민도 하고 실험도 했다. 여러 방법이 고안되었다. 그로부터 백년도 더 지난 지금 야생화풀밭 혹은 메도우를 제대로 조성하는 요령을 어느 정도 터득했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 몇 가지 꿀팁:

떠 가는 구름처럼
윌리엄 로빈슨의 정원 그레비타이 매너. 떠 가는 구름 그림자를 모델로 삼아 심었다는 풀밭의 수선화. 출처: Bisgrove 2008: 174

잔디밭 대신 야생화가 가득한 풀밭을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하고 시도한 최초의 인물이 영국의 윌리엄 로빈슨이다. 그 이전에도 누군가 시도했을 수도 있으나 알려진 바가 없다.

윌리엄 로빈슨은 1870년 와일드 가든The Wild Garden이라는 책을 내서 유럽 정원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인물이다. 우리 정원 좀 자연스럽게 만들자라는 것이 요지인데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자연의 솜씨를 흉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큰 영지를 소유했는데 한 때 방목지로 썼던 넓은 풀밭에 수선화를 가득 심고 싶었다. 구근을 수만 개 주문해서 심으려고 들판에 나가기는 했는데 막상 어떻게 배치해야 할 지 난감했다. 들판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구름 그림자가 흐르듯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늘을 보았다. 유유히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구름이라는 것이 균일한 흰색이나 회색이 아니라 그 속에 짙은 핵이 있고 가장자리로 가면서 점점 옅어짐을 깨달았다. 아 저거다 싶었다. 들판에 드리우는 구름 그림자의 윤곽을 따라 그렸다. 그리고 그 안에 무게중심을 주어 구근을 높은 밀도로 배치하고 외곽으로 가면서 불규칙하게 확산되어가는 분위기로 심었다.

지금도 부활절 즈음이면 유럽의 넓은 공원 어디서나 수선화 풀밭, 수선화 골짜기를 볼 수 있는데 바로 윌리엄 로빈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공중던지기 전법

이른 봄, 누런 갈색의 겨울을 뚫고 가장 먼저 나타나는 봄의 기적은 설강화와 크로커스다. 연이어 무스카리, 수선화, 블루벨, 야생란, 튤립 등이 뒤를 따르며 보티첼리의 꽃풀밭이 그림의 떡이 아니라 사실이 된다. 1931년 하롤드 니콜슨은 그렇게 생각했다. 크고 작은 구근을 수백 개 주문했다. 그리고 잔디밭으로 나갔다. 잔디밭에는 드문드문 과일나무들이 서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하나를 골랐다. 구근이 들어있는 봉투를 왼손에 들고 그 나무 기둥에 등을 대고 서서 잔디밭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을 깨끗이 비웠다. 오른 손을 봉투에 넣어 구근을 한 웅큼 꺼냈다. 구근을 멀리 던졌다. 노는 아이들과 같은 천진한 마음으로 던졌다. 공중을 날던 구근들이 풀밭에 후두둑 떨어지면서 삼삼오오 짝을 지었다. 홀로 떨어진 외톨백이도 있었다. 그대로 두었다. 이제 옆나무로 갔다. 다시 나무 기둥에 등을 대고 서서 같은 방식으로 구근을 공중에 던졌다. 구근이 땅에 떨어지며 자연스럽게 그룹을 지었다. 준비한 구근이 다 떨어질 때까지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손을 털고 구근들이 떨어진 곳으로 가서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심어 주었다. 이듬해 봄, 보티첼리의 명장면을 얻게 될 것을 희망하면서. (Sackville-West, Vita; Nicolson, Harold 2006: 37).

이 방법은 영국의 시싱헐스트 정원을 만들면서 하롤드 니콜슨이 썼던 방법이다. 정말 보티첼리의 그림과 같은 장면이 나와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시싱헐스트 정원의 매우 넓은 유실수 초지에선 이른 봄이면 크로커스가 풀밭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수선화들이 사뿐히 나타난다.

시싱헐스트 정원 유실수 초지. 이른 봄 크로커스가 풀밭을 보랏빛으로 물들인다. 출처: The Garden at Sissinghurst
어느 게으른 정원사의 풀밭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보티첼리 그림 속의 꽃피는 풀밭이 실은 메도우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때가 1950년대였다. 메도우는 본래 방목지 풀밭이다. 예로부터 소나 양이 즐겨 먹는 풀씨와 허브씨를 섞어서 뿌렸고 소나 양이 뜯어먹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벌초가 되어 목가적 아름다움이 그대로 유지되는 곳. 사철 야생화가 잔잔하게 피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평생 메도우에 매달렸다. 선배들처럼 구근 식물을 심어 봄을 찬양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가을은? 그러면서 사철 아름다운 풀밭을 원했다. 그의 정원 그레이트딕스터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 원래 녹색 잔디 융단이 깔려있었다. 크리스토퍼는 어느 가을 잔디밭에 크로커스, 파란별꽃. 은방울수선, 무스카리, 아네모네, 카마시아, 수선화, 튤립 구근을 잔뜩 심었다. 그때 구름전법을 썼는지 공중던지기 전법을 썼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듬해 봄이 오고 가고 여름이 다가 오는데도 잔디를 깍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흉을 보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야생화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아닌 게 아니라 미나리아재비속Ranunculus, 꽃냉이Cardamine, 토끼풀, 조밥나물속Hierachium 야생화들이 속속 나타났다. 7월, 봄꽃들이 씨앗을 맺고 땅에 떨어져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한 뒤에야 비로소 잔디를 잘라주었다. 그리고 여름이라 신속히 자라는 풀을 8월 말에 다시 한번 잘라 가을맞을 준비를 했다. 콜키쿰, 가을 크로커스 등이 풀밭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나면 이제 그라스들의 계절이 온다. 늦가을 혹은 이듬해 1월, 설강화, 크로커스의 앙증맞은 싹이 고개를 내밀기 전 다시 한 번 벌초해 주었다.

이렇게 연 3회 벌초 기법이 크리스토퍼 메도우의 첫 성공 비결이었다. 영국잔디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깎아주어야 하지만 메도우는 일년에 두 세 번만 깎아주어도 되니 누이좋고 매부좋았다. 나중에 3회에서 2회로 줄었다.

그레이트덱스터 진입부 양쪽의 메도우. 본래 녹색 융단 같았던 잔디밭을 야생화풀밭으로 변신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출처: greatdixter.co.uk

다만,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메도우를 제대로 조성하고 가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망치지 않고 계속 유지하려면 오랜 경험이 필요한데 크리스토퍼의 후배들이 열심히 연구해 준 덕에 메도우 혼합 종자를 기성품으로 구매해서 파종할 수 있다. 대개 50종에서 70종의 풀씨와 야생화씨가 섞여 있다.

시대정신의 탓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사람들이 말끔한 녹색융단보다 메도우를 절대 선호한다. 우선 종다양성을 위해서도, 멸종위기에 처한 곤충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차원에서 메도우가 적극 장려되고 있다. 여러 도시에서 공원녹지의 잔디밭을 점차 메도우로 교체하고 있는 추세다.

베를린 달렘 식물원에서도 이미 1910년경부터 약 15헥타르의 메도우를 조성하여 관찰하고 있다. 목표는 메도우라는 식생군락의 개화행태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중 약 70종의 야생화를 섞어 파종한 살비아 메도우의 5월. 야생샐비어가 장면을 주도하고 있다. 사진: JEONGHI GO

참고 문헌:

Bisgrove, R. (2008): William Robinson: The Wild Gardener: Frances Lincoln Limited Publishers.

Hobhouse, Penelope (1999): Pflanzen in ihren Lebensbereichen. Mit Beispielen aus 60 weltberühmten Gärten. Natural Planting. Dt. Ausg. Stuttgart (Hohenheim): Ulmer.

Sackville-West, Vita; Nicolson, Harold (2006): Sissinghurst. Portrait eines Gartens. 1. Aufl. Hg. v. Julia Bachstein. Frankfurt am Main, Leipzig: Insel Verlag (Insel-Taschenbücher, 3183).

관련 링크:

주:

1) Hobhouse 1999: 122

© 3.SPACE MAGAZINE/잔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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