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플라워쇼도 달라지고 있다

“비버가 만든 정원” – 베스트인쇼 2022

글: 고 정 희

올해 2022년 첼시플라워쇼에서 금상과 베스트인쇼 상은 비버라는 포유동물이 받은 셈이다. 

“영국 풍경의 자연회복 A Rewilding Britain Landscape”이라는 모토 하에 Lulu Urquhart and Adam Hunt가 제시한 작품에선 사실상 비버가 주인공이다.  

비버는 유럽에서 자연보호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소동물로 수달과 외모가 많이 닮았는데 서로 친척 사이는 아니라고 한다. 비버는 주로 하천, 계류에 서식하면서 댐을 지어 수위가 넉넉한 연못을 만들고 물속에 나뭇가지로 주택을 짓는 엔지니어들이다. 그런 점에선 오히려 호모 사이펜스와 닮았다.  


 비버가 만들었음직한 정원

이번 금상 작품은 그런 비버가 엔지니어링했을 법한 정원을 재현해 본 것이다. 정원이 아니라 자연풍경을 만들었는데 어째서 정원상을 주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자연풍경이라기 보다는 비버가 만든 정원이라고 본다면 정원은 정원이다. 사람만 정원을 만들라는 법은 없다.

비버정원은 습초지, 계류와 연못을 지나 숲자락으로 전개된다. 습초지를 지나면 계류가 흐르는데 비버가 계류 한쪽에 나뭇가지로 댐을 만들어 막은 결과 연못이 생겼다는 설정이다. 낮은 담장을 두르고 다듬지 않은 참나무 널판지로 다리를 만들었으며 다리를 건너면 오두막이 있는데 이 오두막은 자연관찰대. 사람이 비버의 정원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 뒤로는 숲자락이 시작된다. 숲자락은 곧 숲으로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220 평방미터의 공간이라 숲은 숲자락으로 암시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간형 버드나무(Salix alba와 S. caprea)를 위시하여 이 작은 공간에 모두 3600 주 내지는 본의 식물을 심은 작가들은 “인위적인 풍경이 무너지고 자연이 스스로 균형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 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격세지감

1998년에는 톰 스튜어트-스미스가 샤넬 사를 위해 만든 정원이 금상을 받았다. 아래 사진 중 왼쪽의 흑백사진이 샤넬정원. 2013년에는 나이젤 더넷이 금상을 거머쥐었는데 보면 꽤나 어수선한 정원이다. 이게 금상을? 리사이클링 소재, 곤충호텔 등으로 구성된 생태정원이 금상을 받아 화제가 되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친히 지시하여 왕립 병원 옥상 정원의 설계 용역도 받았다. 이런 개념으로 만들어 달라는 당부와 함께.

좌: 톰 스튜어트-스미스 1998년 금상 수상작. 우: 나이젤 더넷 2013년 금상 수상작. 두 작품 사이에 놓인 세월이 느껴진다. 나이젤 더넷의 작품을 통해 첼시플라워쇼에도 지속가능성과 기후변화가 이슈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Tom Stuart-Smith / Nigel Dunnett

2015년, 정원디자인계의 소문난 미남 댄 피어슨은 10년의 공백기를 두었다가 새롭게 나타나 자연주의 정원을 선보였다. 첼시플라워쇼에 감동의 물결이 출렁였다고 한다. 숭어가 헤엄칠 것 같은 맑은 계류 변에 커다란 자연석을 쌓고 그 틈에 야생화가 가득한 정원을 선보였다. 체스워스의 전형적인 자연 풍경을 압축해 놓은 것이라 한다. 댄 피어슨의 디자인이 출중하기도 했지만 십 년 사이 관람객들의 감성도 크게 변해 있었다.

여기서 2022년의 비버 정원으로 가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였다.

정원계의 그레타 가르보라 불리는 댄 피어슨의 작품. 2015년 첼시플라워쇼에서 금상과 베스트인쇼 상을 받았다. 숭어가 헤엄칠 것 같은 맑은 계류와 자연석, 야생화로 이루어진 정원. 체스워스의 전형적인 자연 풍경을 닯았다. 사진: crocus.co.uk

참고 자료

  • Gartenpraxis, Ulmers Pflanzenmagazin, 08/2022

외부 링크


© 3.SPACE MAGAZINE

3 Responses

  1. Sunghee Lee 댓글:

    저는 저 작품을 보자마자 황지해 작가의 ‘해우소 가는 길’이 연상되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이 미관이나 위생적인 면에서 좀 극단적인 측면이 없지않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으로부터 얻은 자원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선순환이 생활 속에 녹아든 모습도 보입니다. 해우소라는 이름은 구도나 명상의 언어지만, 실은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위기감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의 염려와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는 공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첼시플라워쇼는 조금 보수적인 기준이라 느꼈는데, 디자인 트렌드를 넘어서 기후위기라는 중대한 이슈 앞에서는 몸을 조금 낮추는 것 아닐까요.

    • 고정희 댓글:

      코멘트 너무 좋습니다. 황지해 작가의 해우소 가는 길을 저는 아쉽게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대신 오리지널 해우소 가는 길은 잘 알고 있죠. 왜 달빛이 떠오르는 지 모르겠습니다. 호박덩굴도요. 이선생님 세대도 재래식 화장실을 아시나요? 뜻밖입니다. 젊은 세대는 구경 못한 줄 알았는데.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위기감, 염려와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는 공간”이라는 해석도 멋지고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자연정원을 부지런히 만들면 성난 기후의 심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재래식 화장실을 부활시키지 않더라도 해우소라는 이름 자체가 정원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앞으로는 정원을 해우소라 하면 안 될까요?

    • 고정희 댓글:

      다시 보니 저 작은 오두막이 정말 해우소를 닮았습니다. 덕분에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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