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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 공작의 달력

혼자 보기 아까운, 너무나 아름다운 책

아주 오래전에 베를린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뭐하는 책인지도 모르는채 사버렸다. 글은 모두 중세 라틴어로 되어 있어 해독이 안되지만 그림 때문에 산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정체가 무엇인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중세 후기, 프랑스 왕족 베리 공작(Jean de Valois, duc de Berry 1340-1416)이 주문하여 화가 여러 명이 달라붙어 만든 필사본이다. 당시에는 출판사도 서점도 없었으므로 책을 이렇게 주문해서 만들어 가졌다. 물론 형편이 되는 귀족들의 얘기고 서민들은 평생 가야 책 한 권 구경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본래는 모두 208 페이지로 이루어진 <기도서>인데 기도문으로 가득한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정보를 모아 놓은 종교 사전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앞의 12페이지는 달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다음에는 사도들의 행적을 그려 넣었으며 이어서 마리아 기도문, 참회록, 각종 예배 의식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한 번 읽고 치우는 것이 아니라 평생 지니고 매일매일 읽었을 것이다다. 달력은 그림으로만 되어 있지만, 나머지 한 페이지에는 그림과 텍스트가 함께 실려 있다.

귀족들의 성에는 전용 예배당이 있고 시간도 있었으므로 매일 시간에 맞추어 몇 번씩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그때마다 이 책을 펼쳐놓고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텍스트 가장자리마다 상징적인 그림을 잔뜩 그려 넣었으므로 기도 시간이 지루해지면 그림 속 수수께끼를 풀이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겠다.

중세에 제작된 필사본 중에서도 베리 공작의 기도서의 삽화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남청색이 주를 이루는 것이 큰 특징인데 책 주인이 가장 좋아했던 색이라고 한다.

중세 후기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제작된 것이어서 다른 중세 필사본에 비해 그림이 매우 세련됐다.

내가 구입한 사본은 그냥 사본이 아니라 해석본이어서 그림과 글, 화가와 베리 공작에 대해 그리고 중세의 기도 풍습 등에 매우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가장 압권은 이 해제 본의 서문을 움베르토 에코가 썼다는 사실이다. 기대했던 것만큼 재미있는 서문은 아니었지만 <기도서>의 탈을 쓰고 구석구석에 감추어 둔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질병과 구원, 당시의 풍습, 사는 모습 등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감추어져 있는 책이라고 귀띔한 것이 인상 깊다.

베리 공작

장 드 베리(Jean de Valois, duc de Berry 1340-1416)는 프랑스의 왕자였다. 장 2세 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왕이 되지 못했다. 샤를5세의 동생, 필리프2세의 형이었다. 만 16세에 오베르뉴, 베리, 푸아투의 영지와 함께 공작의 작위를 받았다. 후일 몽팡시에도 그의 영지가 되었다. 만 20세에 영국에 볼모로 갔다가 7년 뒤에 풀려났다.

Jean Duc de Berry (1340~1416)

1380년 형 샤를5세가 서거한 뒤 그의 형과 동생, 앙주공작, 필립공작과 함께 어린 조카 샤를르 5세의 섭정을 맡았다. 이때 장 드 베리 공작은 랑게독의 지휘관이 되었으나 백성들에게 혹독하여 조카의 미움을 샀다. 조카가 성년이 되어 샤를6세로 등극한 뒤 베리공작의 지휘권을 박탈했다. 후일 샤를6세가 정신병에 걸리자 다시 형제들과 함께 섭정하나 큰 권력은 잡지 못한다. 1413년까지 전쟁에 여러 번 참전하고 다시 랑게독의 집정관을 맡았다.

그는 정치적, 군사적 경력을 쌓기보다는 예술과 건축에 관심이 더 많았다. 특히 책을 좋아하여 수많은 필사본을 만들게 했다. 기도서 필사본도 여러권 만들었으나 그중 Très Riches Heures(매우 호화로운 기도서)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이 기도서는 베리공작의 소장도서 중에서 가장 중요할 뿐 아니라 프랑스 중세 필사본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1410년 Limburg 화가 삼형제에게 제작을 의뢰했다. 공작은 이 기도서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1416년 페스트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Limburg 삼형제도 역병에 걸려 기도서를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채 모두 사망했다.

그후 1440년경부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가 기도서 제작을 넘겨받아 계속 작업했는데 이 화가가 다름아닌 바르텔레미 데이크Barthélemy d’Eyck라는 주장도 있다. 기도서가 완전히 완성된 것은 1489년으로서 공작의 후손, 사보이 가문의 샤를1세가 장 콜롱브에게 의뢰하여 작업을 마치게 했다. 베리공작이 지은 성과 궁이 도합 17채로 알려졌는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많지 않다. 중요한 성은 그의 달력에 모두 묘사되어 있다.

이 기도서는 예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므로 이에 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A most beautiful Book of Hours of Our Lady in artful letters.” 출처: Paris France,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Nouv. acq. lat. 3093

1월

1월은 신년 하례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베리 공작을 만날 수 있다. 베리 공작이 직접 묘사된 달은 1월밖에 없다.

©Photo. R.M.N. / R.-G. Ojda

테이블 중앙에 앉아 있는 이가 베리 공작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남색 의상을 입고 굵은 금 펜던트를 걸었다. 왼쪽에 베리 공작과 “사회적 거리”를 두고 앉은 빨간 망토의 사나이는 헤어스타일과 의상으로 보아서 고위 성직자임이 명백한데 알고 보니 샤르트르 성당의 주교라고 한다. 정체가 밝혀진 인물은 베리 공작과 주교뿐이다. 주교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지금 막 입장한 하객들이다. 손을 들어 방어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실은 벽난로 불을 쬐는 시늉을 하고 있다. 추운 데서 들어왔음을 나타내는 중세 특유의 제스처라고 한다.

그중 회색 두건을 쓴 두 인물이 보인다. 한 명은 왼쪽 구석에서 뭔가를 마시고 있다. 이들이 이 그림을 그린 장본인, 즉 림부르그 형제가 아닌가 추정한다. 당시에는 화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는 일이 흔했다. 이 객들과 마주한 채 긴 봉을 어깨에 메고 인상 쓰고 있는 붉은 옷의 사나이는 의전관이다. 이 의전관이 “가까이 오세요! 가까이 오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의 머리 위의 ‘말풍선’에 그리 쓰여있다. 베리 공작은 주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눈빛이 방금 들어 온 하객들을 향하고 있다. 절묘한 묘사이다.

이 대여섯 명의 하객을 뒤쫓아 말 탄 기사들이 쳐들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앞에서는 잔치가 열리고 방 뒤쪽에서는 전투가 벌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전투 장면은 벽 양탄자로서 트로이 전쟁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15세기에는 트로이 전쟁 때의 의상이나 갑옷 등에 대해 전혀 고증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의 주인공들이 중세기사의 복장을 했다.

공작 등 뒤에 둥근 원판이 보이는데 이는 벽난로의 뜨거운 불길을 가리는 가리개이다. 이 가리개 색상과 베리 공작의 의상이 대비되어 공작이 두드러진다. 공작 뒤에 서서 의자 등에 감히 팔을 얹은 검은 모자의 젊은이는 그 제스처로 보아 공작의 가까운 친인척인 듯하나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른다.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붉은 천을 보면 우선 프랑스 왕실의 상징, 즉 파란 바탕에 금색 백합이 새겨진 원형의 문양이 있고 그 주변에 백조 다섯 마리와 곰 두 마리가 있다. 그런데 백조가 모두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상처 입은 백조와 곰이 베리 공작의 상징이다. 왜 하필 상처 입은 백조를 상징으로 삼았을까. 매우 궁금하다. 아직은 어디서도 설명을 찾지 못했다.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붉은 천을 보면 우선 프랑스 왕실의 상징, 즉 파란 바탕에 금색 백합이 새겨진 원형의 문양이 있고 그 주변에 백조 다섯 마리와 곰 두 마리가 있다. 그런데 백조가 모두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상처 입은 백조와 곰이 베리 공작의 상징이다. 왜 하필 상처 입은 백조를 상징으로 삼았을까. 매우 궁금하다. 아직은 어디서도 설명을 찾지 못했다.

그림에 누런색으로 표현된 것이 사실 모두 금이다. 식기가 모두 금이다. 신년하례식이어서 특별히 금식기를 내놓았는데 왼쪽 테이블에 따로 쌓여 있는 화려한 금 접시, 금주전자는 손님들이 선물로 가져온 것일 수 있고 나중에 손님들에게 나눠줄 선물일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경우인지 알지 못한다. 테이블 위 선박 모양의 금식기는 소금 그릇이다. 당시에 소금이 귀한 물건이어서 소금 그릇도 이렇게 금으로 귀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가장 아름다운 소금 그릇의 소유자는 프랑수아 1세였다고 한다. (프랑수아 1세의 소금 그릇)

그런데,

1982년 장 부르덩이라는 프랑스 기호학자가 이 그림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책으로 내어 동료들을 불안하게 했다. 그에 따르면 이 그림은 신년하례가 아니고 1414년 1월 6일 베리공작이 영국 사절단과 비밀 협상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의 정체를 밝혔다. 물론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설령 그가 옳다 하더라도 이미 이론이 굳어진 상태라 여간해선 이를 뒤엎기 힘들다. 그런 경우를 자주 보았다.


© 3.SPACE MAGAZINE/책소개/중세/베리공작의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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