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entry is part 2 of 5 in the series 크리스토와 잔끌로드

배럴 신드롬

크리스토와 잔끌로드는 배럴로 예술활동을 시작했고 배럴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잔끌로드가 2009년 먼저 세상을 떠난 후 크리스토 혼자 설치한 마지막 작품도 배럴이 소재였다. 1962년 첫 공공 작품이 탄생하기 전 크리스토는 여러 해 동안 스튜디오에서 캔을 포장하고 칠하고 쌓는 실험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통조림 캔을 천으로 싸서 묶고 이를 다시 페인트로 칠하기도 했고 아예 색이 줄줄 흐르는 페인트 통을 포장하여 탑처럼 쌓기도 했다. 캔에서 페인트 통으로 페인트 통에서 기름통으로 점차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공공공간에 배럴 작품을 설치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왔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다. 동구권 출신의 크리스토는 이 사건에 크게 분노했다. 일반인이 분노하면 기물을 파손하거나 이웃과 주먹질을 하지만 예술가의 분노가 폭발하면 좋은 작품이 나온다.

1962년 파리, 비스꽁티 골목에 철의 장막을 치다

1962년 6월 27일 저녁, 크리스토와 잔끌로드는 빈 기름통 89개를 쌓아 비좁은 골목을 차단했다. 문자 그대로 철의 장막이 되었다. 8시간 동안 골목이 막혔으므로 센 강 좌안의 교통에 혼란이 왔다. 크리스토는 주민들이 물을 끼얹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이 무렵 파리에서는 알제리 반전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사회분위기가 뜨거운 시절이었다.

그가 사망하기 한 해 전 당시를 회상하는 인터뷰 장면을 보면 아직도 그때의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크리스토는 파리 시청에 편지를 보내 퍼포먼스 허가를 받고자 했다. 그런데 시청에서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화도 해보고 다시 편지도 보냈으나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크리스토와 잔끌로드는 어쨌거나 우리는 한다고 결심했고 결국 해 냈다.

사진 작가며 영화감독인 Jean-Dominique Lajoux가 꼼꼼하게 사진을 찍어둔 덕에 지금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철의 장막”, 크리스토와 잔끌로드 1962년. Photo: Jean-Dominique Lajoux

캔을 왜 그리 좋아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크리스토는 이렇게 대답한다.

배럴 그 자체가 좋다. 물건을 나를 때 가장 흔히 쓰이는 물건이다. 작은 캔으로부터 대형 배럴까지. 산업제품이라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색상과 유형도 다양하며 무엇보다도 극히 단순하다. 뭔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주 특별한 조형성을 가지고 있다.

[The Art Newspaper, 2018년 6월 18일, Louisa Buck과의 인터뷰에서]

포장할 생각은 어떻게 했는가?

이 물음에 크리스토는 로댕을 끌어들여 답했다.

Balzac, Auguste Rodin 1898. Photo: Beyond My Ken © Creative Commons

로댕이 그 유명한 발자크 상의 모형을 빚을 때였다. 우선 벌거벗은 발자크를 빚었다. 불룩 나온 배와 가느다란 다리에 이런저런 디테일을 가감없이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발자크 유품 중에서 망토를 가져다가 이를 물에 푼 석고에 담가 발자크의 벌거벗은 몸을 감쌌다. 우리의 작업도 그와 같다. 예를 들어 베를린 의사당이나 고전 건축을 보면 장식이 굉장히 많다. 그것을 천으로 포장하면 가감없이 건축의 뼈대가 드러난다. 우리 작품 대부분은 움직임이 있다. 바람에 흔들리고 물결에 흔들리며 호흡한다. 그것이 천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다. 천은 피부와 같다. 우리 작품은 이렇듯 사물에 한시적으로 새로운 피부를 입히는 것이다.

[The Art Newspaper, 2018년 6월 18일, Louisa Buck과의 인터뷰에서]

2018년, 런던 하이드파크에 배럴을 띄우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2018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 호수에 그의 마지막 드럼통이 ‘떴다’. 문자 그대로 물 위에 띄운 작품이다. 작품 제목은 마스타바인데 마스타바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묘로서 피라미드보다 오래 된 그야말로 태초의 무덤이다. 형태는 피라미드에서 뽀족한 부분을 잘라낸 것과 같다.

1977년부터 기획했던 작품으로 당시에는 아부다비 사막에 설치하려 했으나 구현하지 못했다. 1970년대 중동 지역을 여행하며 마스타바를 본 뒤 아이디어를 키웠다. 특히 잔끌로드가 좋아했다고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2018년 규모를 줄여 런던 하이드파크의 호수에 띄운 것이다. 2018년 4월 3일 언론에 발표한 뒤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영국에서 그의 작품이 구현된 것은 처음이었다. 작품의 규모는 20mx30 x40m. 본래 기획했던 작품을 7분의 1로 축소해야 했다.

빈 기름통을 그대로 쌓았던 파리에서와는 런던의 마스타바는 곱게 채색한 배럴 7,506개를 쌓았다. 이를 물에 띄웠는데 호수 바닥에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얹은 것이 아니라 수중에 대형 닻을 10개 박고 여기에 묶었다고 한다.

2018년 6월 18일에서 9월 23일까지 호수에 떠 있던 마스타바는 핑크색, 파란색, 보라색 등의 색조로 칠하여 경쾌하다. 조형성이 매우 강하여 실제로 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진 조작을 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마사타바는 그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정적이다. 무게 중심이 바닥으로 향하고 반듯하며 정갈하여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거칠고 역동적이어서 신선했던 젊은 날 파리의 작품에 비해 삶의 무게가 실렸다. 물에 떠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수면에 부착한 듯 고요하다.

2년 뒤 2020년 5월 31일 크리스토는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까닭일까. 크리스토는 다른 작품을 모두 접고 마스타바의 구현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그와 잔끌로드의 상징적 무덤이 아니었을까? 그들 예술의 기념비가 아니었을까? 이제 마스타바는 그들의 작품이 미라가 되어 백만 년 살아가는 곳이 되었다.


Video: 세르펜타인 갤러리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크리스토가 강연하며 배럴에 얽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설명한다.


© 써드스페이스 블로거진/연재/크리스토와 잔끌로드

Series Navigation<< [크리스토와 잔끌로드 1][크리스토와 잔끌로드 3] – 뉴욕 뉴욕 >>

댓글을 남겨 주세요.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Pin It on Pinterest

Shar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