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entry is part 1 of 3 in the series 부가 에르푸르트 2021
올해 4월 23일부터 10월 10일까지 독일 튀링겐 주의 수도 에르푸르트에서 연방정원박람회 BUGA가 열린다.

이번에는 LH 정원(한국정원)도 들어선다. 준비는 거의 끝난 상태. 코로나가 오프닝을 허락할지 좀 더 기다려 봐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여러 차례에 나눠서 BUGA 에르푸르트 2021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에르푸르트에 관해서는 이미 지난 2019년 11월 한국조경신문 563호에 실린 [고정희 신잡] 중 군복 벗은 요새(要塞)에서 소개했었다. 글이 1년 이상 되었으므로 현재 상황에 맞게 수정 보완해서 싣는다.


 

뾰족 탑 25개의 도시

독일 중부에 에르푸르트Erfurt라는 도시가 있다. 16개 연방 주 목록을 보면 제일 마지막에 나타나는 튀링겐 주의 수도다. 알파벳 순으로 정리했기 때문에 제일 뒷번호지 실제로 꼴찌는 아니다. 산 좋고 물 좋고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곳. 그 고장의 수도가 이십 만 인구의 에르푸르트다. 튀링겐 산맥의 분지에 자리 잡아 언덕이 있고 사방으로 짙은 숲에 둘러싸인 관계로 경치도 수려하지만, <독일의 한 가운데>라는 위치가 특이하다. 실제로 독일 중심점에서 약 50km 정도 비껴있다. 게라 강의 여러 지류가 만나는 요지이며 동서 남북의 교역로가 만나는 곳이라 일찌감치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에르푸르트는 교역뿐 아니라 종교, 교육 및 군사 중심지로 발전해 갔다. 마지막으로 20세기에 들어 동부독일의 정원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동독에 속했던 까닭에 해외 관광객들이 뒤늦게 그 진가를 발견하고 최근에야 몰려들기 시작한다. 2021년 독일 연방 정원박람회 BUGA를 여기서 개최한다. 그래서 이목이 조금 더 집중되고 있다.

에르푸르트는 구시가지가 잘 보존된 것이 우선 큰 특징이며 이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예쁜 도시다. 교회와 성당이 이십 오 개여서 뾰족탑과 적색의 기와지붕과 중세풍의 좁은 골목이 도시 풍경을 지배한다. 특히 도심의 언덕에 대성당과 로마 정교의 교회가 어깨를 기대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언덕을 돔 언덕이라고 하며 에르푸르트의 절대적 랜드마크다. 도시의 역사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흥미롭다.

 

종교→ 교육→ 군사→ 산업→ 정원 도시

위에서 언급한 바로 그 순서대로, 즉 종교, 교육, 군사, 산업, 정원도시로 켜를 쌓아 왔다. 8세기 중엽, 보니파시오라는 이름의 선교사가 프랑켄 왕국에 기독교를 전파할 요량으로 전국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어느 날 게라 강가에 이르러 여울목을 건너고 보니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농부들이 높은 울타리를 치고 모여사는 튼실한 게르만족의 마을이었다. 마을 이름을 물어보니 에르푸르트라 했다. 푸르트는 여울목이란 뜻이다. 위치가 너무 좋았다. 보니파시오는 교황에게 <에르푸르트라고 불리는 이 마을을 주교구로 만들도록 허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다. 이렇게 하여 에르푸르트가 주교구가 되었고 보니파시오는 주교가 되어 에르푸르트를 통치했다. 당시는 주교가 왕처럼 속세를 통치했던 시절이었다. 이후 802년에는 카롤루스 대제가 에르푸르트를 변방의 교역 도시로 인정했다. 돈을 벌기 시작했다.

종교 중심의 도시에 경제력이 따르니 교육도시로 발전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교육 시설이 속속 설립되어 13세기 중엽에는 인구 반이 학생이었다고 한다. 1392년, 에르푸르트 대학이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독일 세 번째 대학이다. 바로 여기서 마틴 루터가 4년 동안 철학을 공부했다. 에르푸르트는 마틴 루터의 도시이기도 하다.

14~15세기의 에르푸르트는 쾰른, 뉘른베르크, 막대부르크와 나란히 4대 도시로 꼽혔다. 이 시기가 아마 에르푸르트의 가장 화려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이후 한동안 침체했다가 19세기, 기계제조업을 선두로 산업도시로 다시 일어났는데 이때 식물 종자 산업을 비롯하여 원예, 정원 사업의 기반을 차분히 다졌다. 그 결과 1876년 에르푸르트에서 <일반 독일 정원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이어 1894년 산업박람회, 1902년 다시 정원박람회가 따랐다.

이때부터 에르푸르트는 꽃의 도시로 일컬어졌다. 1919년부터 꽃박람회. 원예박람회가 열렸으며 사회주의가 되어서도 정원 열정은 그치지 않아 1950년에 서독이 하노버에서 첫번째 BUGA를 개최했을 때 에르푸르트는 치리아 산 35 헥타르의 땅에 “에르푸르트는 꽃핀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동독 정원박람회를 열었다.

사회주의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던 곳, 에가 파크

1961년 같은 장소에서 제1회 사회주의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했다. 이때 정원박람회 총 책임자가 칼 푀르스터 선생의 제자였으므로 1963년 공원 내에 칼 푀르스터 숙근초 전시 정원을 조성했다. 이 장소가 지금의 에가 파크 ega park이다. 그리고 이곳이 2021년 연방 정원박람회의 핵심 구간이다. BUGA 에르푸르트 2021은 분산식으로 전개된다. 35헥타르의 에가파크가 조금 작기 때문이며 이곳을 주로 꽃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데 이용될 것이다. 그외 게라강을 따라 페터스베르크, 노르트파크 등 세 곳을 더 선정했다.

그런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튀링겐 주에 아름다운 정원이 그리 많은데 왜 에르푸르트에서만 하느냐는 제안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에르푸르트 주변에 있는 정원, 공원, 문화재, 명소 등을 탈탈 털어 총 25개소를 더해 정원 네트워크를 짰다. BUGA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통치자가 어린 백성과 대치했던 곳 – 페터스베르크

그런데 17세기에 아래와 같은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종교개혁 이후 에르푸르트가 마틴 루터를 따라 신교로 전환한 것은 당연한 행보였다. 그런데 주교통치령이었으므로 주교와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티격태격하다가 1618년 주교와 조약을 체결했는데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는 대신 주교령으로 계속 머문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주교령에서 벗어나 황제령에 속하길 원했다. 왜냐하면, 황제령에 속하게 되면 도시자율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얻는다기보다는 사들인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전쟁 자금과 황실 운영자금이 늘 쪼들리는 황제는 부유한 상공인들이 모여 이룩한 도시에 자율권, 시장권, 세권 등등을 부여하는 대가로 거금을 받거나 엄청난 금액의 연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르푸르트의 경우 주교가 놓아줄 리 만무했다. 불복한 시민의 저항과 봉기가 끊이지 않았다. 곧 30년 종교전쟁이 터졌고 그 결과 신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으므로 신교 세력이 사방에서 죄어들어왔다. 그러자 에르푸르트 주교, 즉 통치자가 서쪽 언덕에 요새를 튼튼히 쌓고 성벽을 두른 뒤 그 안에 들어 앉는 일이 벌어졌다. 시민군과 신교 군대를 모두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이 요새가 페터스베르크다.

통치자가 어린 백성과 대치했던 곳. 이후 대 북방 전쟁, 바이에른 상속 전쟁, 나폴레옹 전쟁, 프로이센 전쟁, 세계 1차, 2차 대전을 치르며 연달아 군사적 요새로 요긴하게 쓰였다. 2차대전이 끝나고는 미군, 소련군까지 거쳐 간 곳이어서 가히 세계 군사박람회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터스베르크는 독일이 통일되고 나서야 비로소 군복을 벗었다. 1991년 복구사업을 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방향을 그리 잡았다. 한때 막사로 쓰였던 건물에 관공서가 들어서고 사령본부에 문화시설, 청소년 시설이 자리 잡았다. 정원문화박물관을 지은 것을 선두로 정원변신이 본격화 되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된 정원의 도시, 꽃의 도시에서 왜 이제야 BUGA를 개최하는지 궁금하다. 여력이 되지 않아서? 우리가 원조인데 다들 뭐하냐 식의 튕기기?

에르푸르트 시의 관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답이 오는대로 다음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BUGA 2021의 콘셉트도 좀 더 상세히 살피려 한다.


BUGA 2021 에르푸트르 메인 개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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