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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휀스 혹은 백리장성

1976년 9월 7일 새벽 4시 30분.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작은 도시 페탈루마 박람회장에 삼백명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준비된 커피를 마시고 도넛을 먹으며 웅성거렸다. 모두 크리스토의 새작품 – 러닝 휀스 설치를 위해 고용된 일용직이었다. 늘 그렇듯 동네 젊은이들 외에 캘리포니아에서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적잖이 섞여 있었고 저널리스트들도 끼어있었다. 이 희대의 사건을 보도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날 처음 모인 것이 아니었다. 지난 몇주동안 실험 루트에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휀스의 소재는 나일론 직물이었는데 폭이 14.9 미터, 높이는 5.5미터. 이 대형 보자기가 때로는 빨래처럼 펄럭였고 때로는 돛처럼 팽팽하게 부풀었다. 이를 와이어에 부착된 후크에 매다는 연습을 한 것이다. 이날은 연습이 아니라 실제로 설치하는 날. 그중에서도 가장 난코스 – 바닷물 속에서 시작하여 언덕을 올라가는 구간부터 설치하기로 되어 있었다. 곧 버스 다섯대가 와서 이들을 싣고 바닷가로 갔다. 해안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유럽에서 건너온 사진작가들, 미술수집가, 미술상, 갤러리스트, 마을 사람들, 텔레비전 방송팀, 영화제작팀, 크리스토와 잔끌로드의 가족과 친지 등등. 수십명의 엔지니어들은 작업을 준비하느라 분주히 오갔다. 이렇게 새벽부터 일을 시작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우선 바닷바람의 영향을 가장 적게받는 시간을 택한 것이고 – 크리스토와 엔지니어들은 지난 3년간 이곳의 바람을 면밀히 연구했다. – 그 다음 <러닝휀스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냄새맡고 쳐들어 오기 전에 작업을 마치려 했기 때문이다. 육지에 설치하는 휀스는 일정 간격으로 철근을 박아 고정시켰지만 물속에 들어가는 휀스를 파도와 간도의 움직임에 어떻게 견디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오래 고민했었다. 크리스토는 자신의 아이디어 – 휀스가 바다에서 솟아 육지로 오른 뒤 달려가게 한다 – 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찾아낸 해결책은 이랬다. 휀스 하부에 철양동이를 매달아 추가 되게 하고 멀찍이 떨어진 바다에 철판 플랫폼을 만들어 띄운 다음 와이어로 휀스와 연결하여 안정감을 준다. 였다.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실패없이 단번에 성공했다. 철 양동이를 추처럼 매달이 물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게 한다는 단순하고 저렴한 아이디어는 압권이었다.

마침내 휀스가 바다에서 솟아올라 해안 언덕을 기어오르기 시작했을때 사람들은 환호했다. 반응은 늘 같았다. 여러 해동안 회의를 품었던 사람들도 작품이 완성되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감동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크리스토는 이 순간의 희열에 중독된 사람 같았다. 난관이 클수록 이를 극복하고 일을 성사시켰을 때의 희열도 커진다. 그래서인지 크리스토는 쉽고 매끄럽게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오히려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러닝휀스를 준비하는 동안 막간을 이용하여 로마에서 고대 성문을 포장한 적이 있었다. 고대로부터 예술이라면 이골이 난 로마사람들은 척척 일사천리로 일을 해결해 주었고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 싱거울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때 크리스토는 썩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현상을 어느 심리학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크리스토가 21세에 불가리아를 떠나 빈으로 도망갈 때 트럭 짐칸에 숨은 채 몇 시간을 달려야 했다. 발각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극도의 긴장감과 두려움 속에서 보낸 지옥 같은 몇 시간, 그리고 마침내 빈에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과 희열, 기쁨. 이 극과 극의 감정을 반복해서 경험해야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총 준비기간 42개월이 걸린 러닝휀스는 크리스토와 잔끌로드 작품 중 벨리 커튼에 이어 풍경을 점령한 두번째 작품이다. 이후 그들은 번갈아가며 페키지, 즉 포장 작품과 풍경 작품을 구현하게 된다. 러닝휀스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스노우 휀스에서 동시에 영감을 얻었다. 스노우휀스는 눈이 많이 오는 고장에서 산사태를 막기 위해 또는 눈이 도로로 쓸려가는 것을 막기위해 설치한다. 크리스토는 스노우휀스처럼 언덕을 오르내리며 끝없이 달려가는 휀스를 만들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하자 친구 하나가 그렇다면 캘리포니아 북부로 가서 지형을 한 번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부드러운 구릉이 연속되는 농장지대라 소들이 풀을 뜯는 한가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라 했다. 크리스토는 먼저 자신이 상상하고 있는 장면을 스케치하여 콜라주를 만든 다음 캘리포니아로 갔다. 적당한 장소를 찾는데만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소노마 카운티와 마린 카운티가 적절해 보였다. 크리스토는 쪼잔하게 몇백미터 길이의 휀스를 세울 것이 아니라 수십 킬로를 달리게 하고 싶었다. 마음같아서는 만리장성처럼 수천 킬로를 달리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러 주 동안 일대를 헤매며 적절한 루트를 정하고 보니 모두 59개소의 렌치를 통과해야 했다. 그뿐 아니라 도로 14개를 통과하여 벨리포드 마을을 지나 마침내 보데가 베이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했다. 총 연장 39km로 최종 결정했다.

Running Fence 대략 루트

본격적인 씨름이 시작되었다.

우선 재정을 마련해야 했다. 1973년 12월 잔끌로드는 전세계 미술 수집가, 미술상, 갤러리와 박물관 백여곳에 편지를 보냈다. 크리스토의 스케치 사진을 동봉한 다음 작품 한점 당 2만 달러에 살 것을 요구했다. 본래 3만 5천 달라인데 40% 할인해 준다고 했다. 이것이 그들이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이었다. 크리스토가 그동안 백점의 스케치, 동판화 등을 제작한 것이다. 지금의 클라우드 펀드와 흡사한 방법이었다. 작품을 하나씩 팔러 다닌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은 금액을 내고 그림이나 모형을 고르는 방식을 취했다. 아마도 상당히 모인 것 같았다. 이듬해 1월 모형 휀스를 제작하고 엔지니어들을 고용하여 테스트를 시작했다. 돛단배처럼 바람을 받을 것이므로 기술적 문제를 풀어야 했다.

1월 말에는 소노마 카운티와 마린 카운티의 농부 150명을 만찬에 초대하여 작품 설명회를 열었다. 농부들 중에는 생전 박물관이란 걸 구경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았다. 박물관은 커녕 샌프란시스코 주변을 떠나본 적도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크리스토의 달리는 휀스를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같으면 에니메이션 영상을 만들어 보여주었겠지만 1973년에는 스케치를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프로젝트 코디네이터가 두 장에 달하는 연설문을 읽었지만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변호사를 고용하여 농장주 설득에 들어갔다. 대부분은 반대도 동의도 하지 않은채 묵묵했지만 더러는 무슨 트릭을 써서 농장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하는 농부들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왜 그리 이상한 짓을 한단 말인가?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잔끌로드가 나서야 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설득하려 들지 않고 우선 농가의 아낙이 혼자 집에 있을 때 찾아가서 여러 시간 같이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소기르는 방법, 우유 짜는 이야기, 버터만드는 방법, 풀밭에 거름은 어떻게 하는지 등등.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그녀는 축산업 박사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모든 농가에 균일하게 임대료 250불을 지불하고 더 나아가 작품에 썼던 모든 재료를 선사하겠다고 약속하고서야 하나 둘 씩 동의하기 시작했다. 쇠기둥, 나일론 천, 후크, 케이블은 모두 농가에게 요긴한 물건 들이었다. 그외에도 카운티의 허가기관과 정치가 들을 설득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작업 허가가 떨어지기까지 모두 18회의 공청회가 열렸고 3회의 법정 집회가 열렸으며 450페이지에 달하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했다.

드디어 트럭 20대 출발

마침내 1976년 4월 29일 20대의 트럭이 2050개의 폴과 145 km의 굵은 쇠케이블을 싣고 출발하여 현장으로 갔으며 이들을 설치하는데 온 여름을 보냈다. 트럭을 개조하여 풍선처럼 부풀린 비치용 바퀴로 바꿔 달아 토양을 훼손하지 않게 했고 트럭마다 특수 방화시설을 부착했다. 각 폴의 위치와 깊이, 앵커의 위치 등을 세밀하게 그린 도면만 수백장이었다. 폴의 길이 6.4m, 안정성을 주기 위해 각 폴마다 76cm 폭의 쇠신을 신기고 양쪽에 로프를 묶은 뒤 이를 땅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9월 10일 위에서 묘사한 것처럼 삼백명의 일꾼들이 일제히 백색의 휀스를 매달아 펼치기 시작했다. 휀스가 완성되자 모두 흥분하여 잔치가 벌어졌고 맥주가 물처럼 흘렀다고 한다. 다들 기절할 때까지 먹고 마시고 인터뷰하고 사진찍고 일생일대의 축제를 즐겼던 것 같다.

14일동안 전시한 뒤 철거하고 약속대로 모든 재료를 농부들에게 나눠 주었다. 크리스토와 잔끌로드는 다시 빈 손으로 그러나 행복에 겨워 뉴욕으로 돌아갔다.

작품 요약

작품명:러닝 휀스Running Fence

장소: 미국 캘리포니아 주 소노마 카운티, 마린 카운티의 59 렌치를 가로지르고 언덕을 달리다 보데가 베이에서 태평양으로 사라졌다.

휀스 높이 5.5m, 연장 39.4km.

1976년 9월 10일 완성

준비기간 42개월. 렌처들의 협조를 얻기위해 모두 18회에 걸쳐 토론회를 열었으며 캘리포니아 고등법원에서 3회의 청문회 개최. 450쪽의 환경영향평가서 제출.

모든 비용은 크리스토의 스케치, 모형, 콜라주, 동판화 등을 판매하여 조달.

소재: 2십만 평방미터의 나일론 소재. 지름 8.9cm 와이어 총 145km. 90cm 깊이에 2,050개의 폴을 박음. 콘크리트 기초를 일체 쓰지 않았음. 앵커 14,000개. 상하 와이어에 후크로 천을 고정. 모두 35만 개의 후크 사용.


© 3.SPACE MAGAZINE/시리즈/크리스토와 잔끌로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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