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하우스 2015,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 해설

제7장, 327쪽

한편 피터 콜린슨이 1730년대부터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필라델피아아의 존 바트램John Bartram에게서 들여온 식물들은 우수한 재배원에 신속히 제공되었다. [327 쪽]

미국 정원을 초창기부터 다루는 서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홉하우스 여사의 큰 공로 중의 하나가 미국 정원을 서양정원사의 큰 틀 안에서 함께 살폈다는 점입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최초의 이주민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미국식” 정원을 만들어 가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사뭇 흥미진진합니다.

John Bartram (1699-1777), 19세기 그림

식물, 인물 그리고 장소 들이 상호 작용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그 중 유난히 호감이 가는 인물이 있습니다. 존 바트램John Bartram (1699-1777)이라는 식물수집가, 식물학자 얘기입니다. 홉하우스 여사도 바트램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327쪽을 비롯하여 무려 82번이나 언급합니다.

존 바트램은 이민자 2세로서 미국에서 태어난 인물 중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식물수집가, 식물학자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식물의 분류체계를 정립한 것으로 잘 알려진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린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린네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식물학자”라 칭송받았다고 합니다.

1740년경 지식층 사회에 편입되며 1742년 벤자민 프랭클린과 함께 “미국철학인회”를 설립했습니다. 66세가 되던 해 1765년에는 킹 조지 3세가 그를 왕립식물학자로 임명합니다.

그는 근 삼십 년간 미대륙의 동북부를 누비며 식물을 수집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다니다가 아들 윌리엄이 장성한 뒤부터는 부자가 함께 다녔습니다. 1728년 필라델피아에 정원을 지어 수집한 식물 재배에 힘쓰며 표본을 유럽에 보냅니다. 유럽 학자들이 미 대륙에서 자라는 식물을 매우 궁금해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후에 정리해 보니 1,400여 종의 미대륙 자생 식물과 1,000종 이상의 외래종을 수집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의 정원은 개인 정원이라기보다는 미국 최초의 식물원이라 해야 마땅합니다. 물론 수집과정에서 새로운 식물을 다수 발견했고 그중 10종은 바트램이 명명자로 등록되어 있습니다(아래 식물 목록 참조).

1777년 바트램이 사망한 후에도 그의 두 아들이 정원을 계속 유지했고 식물학자들이 방문하는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방문객 중에는 조지 워싱턴이나 토마스 재퍼슨 같이 대통령으로부터 앙드레 미쇼 등 유럽에서 건너 온 식물학자들, 식물을 구하고자 찾아오는 고객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약 120년간 자손들이 정원을 유지했었으나 1850년 재정문제로 운영이 불가능해져 매각해야 했습니다. 아쉽게도 바트램 정원의 새 주인은 정원을 개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새 주인이 사망한 1879년 즈음 필라델피아에 깊이 침투한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정원의 존속이 위태로워졌습니다. 그러자 필라델피아 시에서 정원을 인수하여 복원합니다. 그 후 1960년에는 미국의 랜드마크로, 1966년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982년 드디어 존 바트램의 전기가 출판되었습니다. [1]https://bartramsgarden.org/introducing-the-two-williams/

존 바트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태적 정원조성의 개념을 개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는 영국의 윌리엄 로빈슨으로 비롯되는 자연정원의 흐름을 약 백 오십 년가량 앞당긴 것입니다. 인위성이 극치에 달했던 유럽 정원양식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자신의 고유한 방식을 개발할 수 있던 요인이 되었을 겁니다.

그는 생태적 특성에 맞게 식물을 정원에 배치하여 자연에서처럼 잡초들과 경쟁하며 자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당시의 미국 정원은 실용성을 고려하고 외부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정형적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바트램 정원은 식물원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므로 식물을 분류하고 관리하기에 적절하게 기하학적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었죠. 다만 각 구획 내에 식물을 배치할 때 자연의 원칙을 적용했다는 점이 혁신적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이원적 정원조성 원칙, – 기하학적인 공간구성과 자연적 식재는 지금까지도 많은 조경가들이 선호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자연스러움이 넘치는 그의 정원은 당시의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1754년 의사며 식물학자였던 알렉산더 가든Alexander Garden은 바트램의 ‘정원’ 을 바트램의 초상화라고 멋지게 비유합니다. 이는 정원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겁니다. 또한 돈이나 명예보다는 연구 그 자체에 정열을 쏟았다고 알려진 그의 이미지에 꼭 맞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바트램의 자택. 1720년대의 상태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Photo: Jtfry at English Wikipedia, License: CC BY 3.0

바트램에 따라 명명된 식물

  1. Ericaceae: Andromeda plumata Bartram & W.Bartram ex Marshall 
  2. Convallariaceae: Convallaria montana Raf. 
  3. Convallariaceae: Convallaria pseudomajalis Bartram 
  4. Caprifoliaceae:  Lonicera canadensis Bartram & W.Bartram ex Marshall
  5. Lamiaceae:  Monarda oswegoensis Bartram 
  6. Lamiaceae:  Monarda varians Bartram 
  7. Araceae:  Pothos putorii Bartram
  8. Vitaceae:  Vitis occidentalis Bartram ex le Conte 
  9. Vitaceae:  Vitis sylvestris Bartram ex Le Conte
  10. Vitaceae:  Vitis vulpina Bartram ex le Conte 

출처:


©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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