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고대 그리스의 장미섬 찾기에 실패한 다음, 고대로마의 장미원 찾기에 돌입했습니다. 아래의 문장 때문입니다.

바로 Varro는 농경이란 이익과 즐거움을 모두 추구해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하면서도 실제 정원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로마의 꽃과 화환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장미(파에스툼Paestum의 장미원들이 가장 유명했다)나 바이올렛(다음 구절에서 그는 폭우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바이올렛 화단violarium을 높이 조성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설명했다)과 허브의 재배를 위해 전문적인 묘포장 조성을 조언했다. [홉하우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 2015, 45 쪽]

시인이 던진 세 단어가 얼마나 크고 긴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위의 예문에서 나온 바로 뿐 아니라 고대 로마의 시성 베르길리우스 역시 그의 농경시 Georgica 에서 파에스툼의 장미를 칭송했습니다. 후세에 바로의 농업서보다는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가 더 널리 읽혔는데 그는 파에스툼의 정원에서 자라는 장미는 일년에 두 번씩 꽃이 핀다고 노래했습니다. “biferique rosaria Paesti” [1]Vergilius, Georgica, 8장 4절 119행 .  

이 세 단어는 이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파에스툼의 장미를 찾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게 했습니다. 필자를 포함하여. 일단 파에스툼에 달려 갈 작정을 했습니다. 각색의  장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환상적인 정원을 머리에 그리면서요. 백년 간 잠자는 공주의 성을 뒤덮은 그런 장미덩굴도 있을까? 아~ 향기가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참 파에스툼이 어딨더라? 처음 듣는 도시이름이었습니다.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구글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랴. 그런데 검색하는 동안 풍선처럼 부풀어 있던 환상이 조금씩 빠져나감을 느꼈습니다. 한 때 그리 유명했던 장미 재배지였으니 지금도 장미가 유명한 고장일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 완전한 오산이었습니다. 파에스툼이라는 도시 자체가 아예 사라지고 없었단 말입니다. 이 무슨 청천벽력.

파에스툼은 기원전 600년경에 그리스 인들이 이탈리아 서남 해안 나폴리 가까이에 설립한 도시였습니다. 그 때는 포세이도니아라고 불렀었고요. 기원전 274-273년에 로마인들이 정복하여 로마식의 도시로 만들고 이름도 로마식으로 파에스툼이라고 고쳐 불렀습니다. 황제시대에 이미 조금씩 몰락하기 시작,  9세기에는 사라센이 쳐들어 와 일단 심하게 파괴되었다가, 다시 11세기에 노르만 족들이 밀려오면서 완전히 망했습니다. 게다가 이 무렵에 자연환경도 변하여 연안 습지가 밀고 올라와 말라리아가 돌았습니다. 시민들은 도시를 버리고 떠나 근처에 있는 높은 산으로 피신하여 그 곳에 카파치오 Capaccio Paestum라는 새로운 도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2]Wikipedia.de/Paestum

이렇게 파에스툼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장미는 전설이 된 것입니다.


파에스툼 고고학 발굴지. 아테나 신전, 포사이돈 신전, 헤라 신전 등의 폐허가 있고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출처: V alfano, Wikivoyage, License: CC BY-SA 3.0.

1752년 폼페이를 발견하면서 가까이에 있던 파에스툼도 발견했습니다.  크게 대서특필되어 물의를 일으켰지요. 전설이 되살아 난 것입니다. 곧 폼페이와 함께 파에스툼을 찾아가 보는 것이 지식인들 교양여행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괴테도 다녀가고 요한 고트프리드 소이메Johann Gottfried Seume라는 무명시인도 다녀갔습니다. 물론 장미는 온데간데 없고  거대한 신전 세 곳과 성벽, 로마의 원형극장 등만 남아 있었습니다. 괴테는 그의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파에스툼에 대해 두 단락을 할애했으나 장미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3]Goethe 1787.03.23 무명 시인 소이메 역시 ⌈시라쿠스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기를 썼습니다. 그는 괴테와는 달리  전설의 장미 고장에 와서 장미를 하나도 보지 못하고 가는 어처구니 없음에 대해 호소했습니다. 그 덕에 유명해졌고요. 아래 그가 1802년에 쓴 여행블로그를 옮겨봅니다. 꼭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 파에스툼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데 두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주교들의 사택과 헐어빠진 음식점 그리고 그 보다 더 낡은 집 한 채가 서 있는 게 전부였다. […]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장미가 한 그루도 없었다. 주교의 일행들이 장미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그래도 믿기지 않아 사방을 헤매고 다녔다. 정말 없었다. 주교 정원도 둘러보았다. 거기도 장미는 없었다. 점점 더 열이 나서 자연에 대해 이리 죄를 지어도 되는 가고 외쳤다. 나를 안내해 주던 여관 주인이 미안한 낯으로 말하기를 6년 전만해도 몇 그루 있었는데 외부인들이 와서 다 캐갔다고 한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한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명했던 장미를 그리 뽑아가게 놔둔단 말인가. 그리고 또 다시 심으면 어디가 덧나나. 그리 퍼부었다. 관광객들이 틀림없이 파에스툼 장미 한 가지를 얻기 위해 높은 값을 지불할 것이라고 했다. 나라도 당장 그리 할 것이라 했다. 그러자 여관 주인의 흐릿하던 눈 빛이 반짝 빛났다. 이 동네가 어찌하여 이리도 깊이 추락한 것일까! 여관 주인에게 장미를 다시 심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만약에 파에스툼에 다시 장미가 자라기 시작한다면 그건 내 공일지도 모른다.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언젠가 결실을 맺을 때가지 파에스툼 사람들을 계속 귀찮게 해 달라고”[4]Seume 1802

소이메의 호소가 결실을 맺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파에스툼에 변화가 오고 있다고 합니다. 2013년 드디어 파에스툼 신전 주변에 장미를 심은 것입니다. 파에스툼 고고학 박물관에서 장미원 복원을 결정하여 이미 장미를 심었으며 그와 함께  3월 23 부터 10월 31일 까지 장미에 대한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예로부터 파에스툼의 장미는 관상용보다는 약. 화장품과 향수의 원료로 각광을 받았으므로 바로 그런 제품들을 소개할 목적으로 전시회를 개최된 듯 합니다. 고고학 연구 결과가 나오는대로 장미정원도 복원할 계획이며 한 해에 두번 꽃이 피는 장미를 심을 계획을 세우고 적절한 품종을 선발 중이라고 합니다. [5]파에스툼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장미원 복원 소식이 들려오면 한 번 가봐야겠지요. 

우리의 무명 시인 소이메가 하늘에서 미소짓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2013년 파에스툼에 다시 나타 난 장미. 사진: Edward Langley

참고 자료



© 써드스페이스 블로거진/홉하우스 읽기

각주[+]

3 Responses

  1. SungHyun-Lee 말해보세요:

    고박사님, 장미에 이끌려 다녀 갑니다…ㅎ 장미향을 기대했던 마음들이 이해가 되는 듯 글을 읽었네요~~

    • JEONGHI GO 말해보세요:

      아 반갑습니다. 답글과 들장미 노래도 감사하고요. 올해도 좋은 정원 많이 만드시기 바랍니다~

  1. 2018년 3월 1일

    […] 하슬러 박사가 말하는 Rockrose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장미만은 못하지만 아주 예쁜 꽃입니다. 이름에 rose가 들어가니 사람들이 일반 장미와 혼동한 것 같습니다. 어쩌다 그런 소문이 나게 되었는지 매우 궁금한데 언젠가 시간이 나면 추적해 볼 생각입니다. 어쨋든 일단 로도스 섬 여행은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장미섬 찾는 걸 포기한 건 아닙니다. 고대에 장미 수요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어딘가 장미섬이 있었을 겁니다. 아니 있습니다. 마침내 찾았죠. 그런데 단서가 된 것은 고대 로마의 시성 비리길리우스의 시 한 구절이었습니다. 그 얘기는 다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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