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하우스 여사뿐 아니라 저를 포함해서 많은 정원사가, 식물 연구가들이 아서 에반스 경에게 깜빡 속아 그림 속의 백합이 이것인가 저것인가 고심했더랬습니다. 얘긴즉슨 미노아 문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에 속하는 “백합 왕자Prince of the Lilies”가 거의 백 퍼센트 위조라는 겁니다. 이 아름다운 미소년이 왕자인지 누군지 아무도 모르며 그림 속의 백합도 실은 새빨간 거짓입니다.

그림을 좀 비교해 볼까요.

오른쪽의 그림이 지금도 크노소스 궁전에 전시되고 있고 어느 여행 서적에서도 볼 수 있는 바로 그 백합 왕자입니다. 가장 왼쪽 그림은 발굴 직후의 상황이고 그 다음그림이 에반스 경의 의뢰를 받은 화가 에밀 질리에롱Emile Gilliéron 의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머리 장식은 다른 데서 발견된 파편을 갖다 붙인 것이랍니다. 배경의 백합은 완전히 새로 그린 것이고요. 아마도 머리 장식의 문양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걸 보고 여러 식물학자가 마돈나 백합(흰색)이다 칼케도니아 백합(빨간 색)이다 다투었던 것이죠. 저도 거기 끼었고요. (16/32/34쪽: 청동기 시대의 미노아 스타일 백합 참조)

그림 속 인물이 워낙 신비해서 소설가들의 상상력도 자극했습니다. 백합 왕자를 소재로 쓴 소설도 여러 편 있습니다.

얼굴, 헤어스타일도 물론 예술가적 상상력으로 그린 것이고요. 실제로 발견된 것은 오른 팔과 몸통 부분, 왼팔과 왼쪽 다리의 부분이 전부입니다. 같은 화가가 블루버드 벽화의 장미 꽃잎을 여섯 장으로 그리는 바람에 백 년이 넘도록 식물 학자들이 그 장미의 정체를 찾아 헤매기도 했습니다(33 쪽 – 크노소스 궁전, 블루버드 프레스코화 속의 장미 참조).


Arthur_Evans_portrait_1907_by_William_Richmond,_Ashmolean_Museum,_Oxford
Arthur Evans 1907_by William Richmond,_Ashmolean Museum, Oxford 소장. PD.

오른 쪽 그림은 윌리엄 리치몬드라는 화가가 그린 에반스 경의 초상화입니다. 그의 왼쪽에 있는 항아리 문양이 백합 같아 보입니다. 아마도 이런 데서 영감을 받아 백합 왕자 배경을 그린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런데 백합 왕자라는 별명은 후일 생긴 것이고 에반스 경은 위의 인물이 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내가 미노아의 왕을 찾았다.”면서. 그런데 왕이 왜  벌거벗었냐. 그리고 왕관은 어디 가고 요란한 공작 꼬리 머리 장식은 뭐냐 했더니 “그럼 아마도 제사장인가 보다.”라고 의견을 바꿨습니다. 국가적 큰 제사를 지내느라 종교적 상징성을 가진 머리 장식을 쓴 것이다. 이렇게. 그러다가 왕이 제사장을 겸했었다고(Priest-King) 주장했습니다. 하등의 근거는 없었지만 하여간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다가 호칭이 필요하니 그냥 프리스트 킹이라고 불리다가 누군가 백합 왕자로 고쳐 부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팔다리 반쪽만 보고 왕이었는지 제사장이었는지 알아본 것을 보면 에반스 경은 퍽 대단한 양반이었나 봅니다.

왕자도 왕도 제사장도 아니고 곡예사나 운동선수였을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요즘은 학자들이 크노소스 궁전을 두고 에반스경의 디즈니랜드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원본이 걸려있는 이라클리오의 고고학 박물관 담당자들도 그 원본 자체가 페이크라는 걸 다 알고 있지만,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이기에 그냥 두고 보는 눈칩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 34쪽 그림 1.11에 아래와 같은 설명이 써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리스에서 마돈나 백합과 칼케도니아 백합이 자생하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림 1.11 아서 에반스Arthur Evans 경이 복원한 또 다른 미노스의 프레스코화는 전사의 모습과 함께 더욱 양식화된 백합을 묘사하고 있다. 이 꽃들은 아마도 지중해 동부에서 전래된 흰 마돈나백합Lilium candidum이거나 칼케도니아백합 혹은 ‘Turk’s Cap Lily’(Lilium chalcedonicum의 일종, 혹은 L. superbum)일 수도 있다. 이 진홍의 백합은 칼케도니아(지금 이스탄불)와 그리스에서 모두 자생한다. [34 쪽]

참고 자료


©써드스페이스 블로거진/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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