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산업화와 기계화의 흐름을 역류하며 식물을 수집하고 정원에 심어 가꾼 사람들이 있었으니……. 식물 재배와 관리기법 및 적용기법이 일취월장한 시대이기도 하다.

홉하우스 여사는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 10장 <정원 가꾸기를 통한 식물 보전>에서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가문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에 매진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이탈리아 로마 인근에 위치한 닌파정원Giardino di Ninfa이다. [위의 대문 사진 크레딧: © CC BY-SA 3.0/Astrovega/Wiki Loves Monuments Italia 2012.]

5월이면 수로에 늘어선 칼라Zantedeschia aethiopica가 장관을 이루어 닌파를 잊을 수 없는 장소로 만든다. 1900년대 이후 카에타니 가는 닌파의 정원을 3대에 걸쳐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정원 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들은 우선 폐허를 정리하고 수로를 만들었다. 닌파는 자연 샘이 흘러드는 바로 윗마을의 저수지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수로 뒤편으로는 플라타너스, 사이프러스, 삼나무, 상록 떡갈나무, 소나무를 식재했다. 이 나무들은 모두 정원의 주요 ‘뼈대’를 형성했다.

514~515 쪽. 그림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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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면 수로에 늘어선 칼라Zantedeschia aethiopica가 장관을 이루는 곳.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 514쪽 그림 10.27

홉하우스 여사가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정원이라 극찬한 정원. 이 정원이 생긴 내막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닌파>는 요정 님프라는 뜻이지만 여기선 같은 이름을 가진 중세 도시를 뜻한다. 닌파의 성은 중세에 이미 폐허가 되어 재건되지 않은 유적지다.

이 유적지를 중심으로 20세기 초에 8헥타르 규모의 풍경화식 정원Giardino di Ninfa이 조성되었고 1970년대에 이를 둘러싸고 1800헥타르의 자연보호지역이 조성되었는데 이를 합쳐서 그냥 간편히 <닌파>라고 부른다.

닌파는 로마에서 남쪽으로 6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닌파는 독립된 고장이 아니고 행정구역상 <치스테르나 디 라티나Cisterna di Latina> 시에 속한다. 이 도시의 이름이 의미 있다.  치스테르나는 큰 우물 또는 물 저장 용 석조 탱크라 해석해도 되겠다. 고대 로마 시대에 건설했던 고차원 급수 시스템aqueduct의 핵심 구조물로서 돌로 축조된 유수지다. 대부분 물의 발원지에 지었으며 여기서 수로를 따라 전 도시에 물을 공급했었다. 물이 풍부한 고장이다. <치스테르나 디 라티나>의 수로 시스템은 네로 황제 시대에 건설된 것이라 한다.

이곳의 병풍 역할을 하는 레피니Lepini산맥을 등지고 폰티니 평야가 넓게 펼쳐진다. 산에서 흘러내려 평야를 적시며 흐르는 닌파천이 중간에 갈라졌다가 호수가 되어 다시 만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이 호수와 두 지류를 끼고 중세에 성벽을 쌓고 성을 짓고 탑을 세웠다. 이것이 닌파 시였다.

로마에서 나폴리로 가는 길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서기 1000년경부터 14세기까지 번성했다. 그러던 것이 14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며 폐허가 되었다. 우선 이 지역을 다스리던 카에티나 가문에 종파 간 갈등이 생겼다. 닌파를 두고 전투가 벌어져 성이 불타고 패주는 성을 버리고 도주했다. 곧이어 페스트가 돌았고 말라리아도 창궐했다. 백성들이 거의 죽거나 피난을 떠나 닌파는 버려진 ‘버려진 마을’이 되었다. 이후 성의 잔재마저 낡아 서서히 무너져갔고 홀로 덩그러니 남은 탑 주변으로 잡초가 무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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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마인츠 대학 사학과에서 로프레도 케타니 재단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장소의 역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재구성한 중세의 닌파시.  모두 9개의 성탑이 구축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지금은 하나만  남았다.  © Johannes Gutenberg University Mainz. Historisches Seminar

 왕의 귀환

그 후 1585년경까지 거의 2세기 동안 아무도 이 도시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듯하다. 1585년에 카에타니Caetani 가문이 <치스테르나 디 라티나>를 봉토로 얻으며 이 지역에 조금씩 생명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본래 이미 10세기 후반부터 이 일대를 카에타니Caetani 가문에서 지배했었다. 카에타니 가문은 유럽에서 가장 유서 깊은 귀족으로 지금까지 대를 이어오고 있는 드문 케이스에 속한다. 12세기, 13세기에 각각 교황을 배출하여 막강한 권세를 누렸고 로마를 중심으로 영토와 재산,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을 지속해서 확장했다.

그러다가 1585년 그 사이 지배권이 모호해졌던 이 지역을 다시금 봉토로 하사받은 것으로 보인다. 카에타니 가문은 닌파 성의 폐허를 복구하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당시 유행에 맞게 르네상스 풍의 궁전을 멋지게 짓고 도시를 재건하여 거기서 살았다. 그 덕에 닌파 성채와 성벽, 성당의 잔재 등은 지금까지 유적지로 남게 된 것이다. 다만 샘물을 다시 파고 주변에 식물을 다양하고 아름답게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시간이 흐르며  폐허와 계류를 둘러싸고 숲이 우거져 그야말로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연상시키는 환상적인 풍경으로 변해갔다. 멀리 레피니 산맥과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노르마 시를 배경으로 잡으면 그대로 <픽처레스크>한 그림이 된다.

픽처레스크 – 중세의 폼페이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닌파 폐허가 유명해졌다(아직 정원이 조성되기 이전의 일).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린 인물은 영국의 작가며 화가였던 에드워드 닐이었다고 한다. 이후 여러 명의 화가가 찾아 들어 닌파의 <픽처레스크>한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그러나 정작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페르디난드 그레고로비우스Ferdinand Gregorovius(1821-1891)라는 프로이센의 사학자 덕이었다.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책을 집필하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던 그레고로비우스는 닌파에 도착하여 말을 잃었다고 한다. 어린아이처럼 <와아~ 와아~>만 연발했을 것이다.

후일 여행기에서 그는 <닌파는 낭만 동화 그 자체>라고 했고 이렇게 <이야기같이 아름다운 곳을 이 세상에서 본 적이 없다>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중세의 폼페이>를 발견했다는 소문에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본격적인 닌파 순례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그게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20세기 초, 카에타니 가문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닌파 유적지를 중심으로 당시 유행에 따라 풍경화식 정원을 조성했다. 습지에 수로를 내어 개간하고 폐허를 손질한 뒤 사이프러스, 호랑가시나무, 너도밤나무를 대량으로 심었다. 물이 풍부했으므로 야생화 정원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중히 관리하고 있다.

지금 닌파 정원은 총면적 8헥타르 가량에 1300 여종이 넘는 식물을 보유하여 식물원을 방불케한다. 그중 목련만 19종이며 자작나무, 붓꽃, 단풍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다. 봄이면 체리나무, 사과나무, 튤립나무로 시작하여 초여름 화려한 장미로 넘어가며 강가 폐허를 배경으로 하여 꽃피는 관목들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레피니 산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물이 풍부하고 산맥이 병풍처럼 버티며 바람을 막아주는 데다 인적 드문 낡은 성벽 안의 미기후 조건이 탁월하다. 돌과 식물과 물의 공존을 위해 완벽한 곳.

강변 오아시스

닌파 호수에 특별한 숭어가 살고 있다고 한다. 고대 로마 시대에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것이라는데 그 자손들이 여태 살고 있다는 소문이다. 그뿐 아니라 닌파 정원에 조류를 비롯 수많은 야생동물이 깃들기 시작했으므로 1976년 정원 주변으로 약 1800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오아시스를 조성했다. 정원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버퍼 구역, 자연보호구역의 개념이었다. 현재 약 152종의 새들이 깃들어 살고 있는데 그중에는 매, 수리 등의 맹금류와 올빼미 등의 진기한 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장소의 역사> 프로젝트

1972년에 카에타니 가문의 문화재단에서 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사이 문화재로 지정된 닌파정원과 그외 가문에 속한 성과 궁전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이 설립 취지였다. 정치 성향이 강한 가문에서 작곡가를 한 명 배출했다. 로프레도 카에타니Roffredo Caetani 공작(1871-1961)이었다.  이때부터 카에타니 가문은 문화와 예술 그리고 교육에 힘쓰기 시작했다. 그의 딸, 레일라는 화가가 되었다. 1951년 영국 노포크 공작 하워드와 결혼했는데 아마도 영국인 남편의 영향이었는지 이때부터 부부가 모두 닌파 정원 가꾸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1971년 부친 로프레도 공작이 사망하자 그의 문화적 정신적 유산을 이어가기 위해 로프레도 카에타니 재단 Fondazione Roffredo Caetani 을 설립했다. 현재 닌파 정원을 비롯하여 토르트레폰티, 판타넬로 파크, 카스텔로 카에타니 등의 문화재를 직접 관리 운영하고 있다.

재단의 취지 중에는 연구 프로젝트의 지원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2013년 부터 독일 마인츠 대학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장소의 역사> 프로젝트다. 독일문화재 연구원에서도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진작가 크리스토프 브레히Christoph Brech가 2010~2013년 사이에 사계절의 변화를 담은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저작권에 의해 엄격하게 보호되고 있어 이 뛰어난 사진 작품들을 이 자리에서 보여줄 수 없지만 작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볼 수 있다.

과연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정원?

위치와 방문 정보


Giardino di Ninfa

Doganella di Ninfa
Via Provinciale Ninfina, 68
04012
Cisterna di Latina (LT)
ITALIA

 

방문 시간:

원칙적으로 개방된 정원이지만 너무 많은 방문객으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재단에 연락하여 약속을 잡고 티켓을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한다. www.giardinodininfa.eu.

방문 가능한 시간은 홈페이지에 게시하는데 2019년 방문 시간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입장료:

  • 개인(성인) 15.00 €(+온라인 예약 수수료 50 센트)
  • 12세 이하 아동 무료
  • 장애우 8.00 €(장애우는 온라인 예약하지 않아도 입장 가능)
  • 성곽 정원(Hortus conclusus)는 별도로 2€ 추가.

관련 링크


© 써드스페이스 블로거진/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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