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도시 하일브론

독일 남부 네카 강변에 자리잡은 인구 십이만 오천의 도시. 독일 척도에 따르면 대도시에 속한다. 일명 “케트헨의 도시”, “와인의 도시”라고도 불리며 주변 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관광의 도시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이벨베르크, 만하임, 받드 빔펜과 함께 네카 강변 4대 도시에 꼽히며 만하임에서 프라하까지 연결되는 캐슬로드에도 속한다.

2019년 독일 연방 정원박람회 BUGA가 개최되었던 도시다.

비록 관광 명소는 많지 않지만 진취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역동적 도시, 미래에 속한 도시이므로 색다른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성스러운 샘물이 펑펑 솟아 오르던 곳

아마도 선사 시대에 이미 샘물이 펑펑 솟아나던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켈트 족이나 게르만 족이 약수가 나오는 샘터를 가운데 두고 마을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하일브론이라는 명칭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약수터라고도 할 수 있고 성스런 샘터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것이 맞는지 혹은 둘 다 맞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치료의 효능이 있는 약수가 펑펑 샘 솟는 곳이니 성스러운 곳이라 여겼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하일브론은 얼굴이 여럿이다. 네카의 도시, 와인의 도시, 소금도시, 문화도시, 과학과 교육의 도시 등. 하일브론 시민들은 자유롭고 포용력이 큰 열린마음의 소유자들이라 자칭한다. 굳이 지역성을 따져 묻는다면 슈바벤 지방의 근면함과 프랑켄 지방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두 소유했다.

운하를 중심으로 개발된 하일브론의 산업시설. Photo: K. Jähne, License: CC BY-SA 3.0
하일브론의 또 다른 얼굴. 와인 생산지. Photo: K. Jähne, License: CC BY-SA 3.0

관광객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독일 도시들에 비해 볼거리가 썩 많은 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시 관광과에서 제공하는 시내 사이트싱에서 돌아 보는 곳이 고작 10개소에 한하며 그나마 한 건물에 붙어 있는 여러 볼거리들을 따로 열거한 까닭에 10개가 가능하다.

741년에 처음 문서에 언급되었고 1281년에 도시권을 획득한 도시치고는 이상하리만큼 볼거리가 적다. 예를 들어 독일 도시들마다 존재하는 고도의 규모도 작다. 한 눈에 다 잡힌다. 시청사, 성당, 독일 기사단 본부 건물과 그에 딸린 성당을 제외하고 나면 이렇다 할 것이 없는 도시. 왜 그럴까.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걸 파악하려면 도시의 역사를 조금 되짚어가야 할 듯 싶다.

하일브론의 역사

하일브론은 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젊은 도시에 속한다. 아니 젊게 거듭난 도시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거듭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2차 대전 막바지에 집중 폭격을 받아 도시가 거의 완전히 파괴된 때문이었다.

1944년 12월 4일 영국 로열에어포스가 단 하루 만에 도시 면적의 62%를 파괴했다. 이때 6천 5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때 네카 강변의 가장 번성한 도시였던 하일브론은 전쟁이 끝난 뒤 인구 4만명이 간신히 살아 남은 앙상한 도시가 되었다.

전후 온 힘을 다해 국토복구에 나섰으며 이때 파괴된 역사적 건물 중 극히 일부만 원형대로 복원되었고 나머지 파괴된 구역은 1950년대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이 때문에 하일브론은 건축적 관점에서 볼 때 1950년대 1960년대 건축이 지배하는 도시가 되었다.

네카 강과 나란히 운하를 만들어 바삐 움직였던 하일브론. 1840년경. 프리드리히 페더러의 동판화. 출처: ZENO.ORG. Public domain.
1945년 전쟁이 끝난 뒤의 하일브론 시내. Photo: UA Army, public domain.

일찍부터 하일브론은 남독의 개혁 중심지였다. 오늘의 하일브론은 하일브론-프랑켄 지역의 경제 문화 행정적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지난 몇 해 동안 독일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도시에 속한다.

성장하는 도시로서 젊은 가족들이 많이 유입하고 있다. 이를 더욱 장려하기 위해 가족과 어린이들을 지킨다는 목표를 내걸고 2005년에 유니세프의 어린이 도시로 인증을 받았으며 독일에서 유일하게 어린이집(킨더가르텐)이 무료인 도시다.

왜 “케트헨 도시”라 불릴까?

하일브론시의 케트헨 분수. 1965년 제작. 청동. Photo: Schmelze, License: Public domain.

카롤루스 대제나 잔다르크 같은 어마어마한 조상이 없는 도시. 그런데 마침 1810년에 유명한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하일브론에서 온 케트헨“이라는 희곡을 발표하여 크게 성공한 적이 있다. 케트헨이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열 다섯살 짜리 어린 소녀의 이름이다.

비록 가상의 인물이지만 하일브론과 연관된 가장 유명한 인물이 케트헨이라서 곧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케트헨 하우스가 생기고 1872년에 이미 케트헨 선발대회가 열렸다. 1920년 부터는 간헐적으로 케트헨 연극제가 열렸던 것이 1970년부터는 도시 마케팅의 일환으로 케트헨 선발대회가 부활했으며 연극제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하일브론 가는 길

하일브론은 만하임에서 시작하여 프라하까지 연결되는 낭만적 <캐슬로드>에 위치한다. 만하임에서 출발하여 캐슬로드를 따라 가다보면 네카 강변 언덕 위에 점점이 나타나는 크고 작은 성과 궁전들이 하일브론으로 안내해 준다. 그러나 하일브론으로 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은 유람선을 타고 네카강을 따라가는 것이다. 하일브론은 네카 강에 위치한 여러 도시 중 가장 큰 내륙항이기 때문이다. 중세에 이미 네카 강 지역을 향하는 상선들의 관문이었다.

네카 강

네카 강가에 위치한 도시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하이델베르크일 것이다. 그러나 하일브론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네카의 도시다. 강 양변에 점점이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강변 녹색 산책로에는 카페, 레스토랑, 비어가르텐, 와인바가 줄지어 있어 관광객들은 시내 관광 후 네카 강을 바라보며 목을 축이고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곳이며 하일브론 시민들에게는 주말과 여가 시간을 보내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여름 밤이면 야외무대에서 콘서트가 열리고 주변 여러 도시에서 관객들이 몰려온다.

도심에서 남쪽으로 강변산책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다 보면 사이언스 센터 <엑스페리멘타>가 나타난다. 놀면서 과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반응이 좋아 <엑스페리멘타 II>가 설립되었다.

하일브론과 와인

하일브론 동쪽 바르트베르크 언덕은 온통 와인밭이 차지하고 있다. 언덕 위에 서면 시내와 네카 강까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이미 1146년 와인 생산지로 처음 언급되었다. 산 능선을 따라 마련 된 총 6킬로미터에 달하는 와인 스트리트를 따라 24개소의 와인 체험 농장과 우아한 와인 빌라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총 530 헥타르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어 와인도시라 칭하기에 전여 손색이 없다. 하일브론은 독일 적포도주 생산의 중심지이며 수많은 와인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빗자루>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와인 농장에서 경사진 포도밭에서 다소 불편하게 하우스 와인과 기름진 안주를 즐기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며 취기에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관광 명소

하일브론은 다른 독일 도시들에 비해 관광 명소가 매우 빈약한 편이다. 천문 시계가 달려있는 시청사 건물, 그 앞의 마켓 광장. 하일브론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인 킬란 성당 등 한 시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킬란 성당은 1297년에 건립되었고 2차 대전에 크게 파괴된 것을 완전히 원형대로 복원했다. 바로 이 성당 앞 광장에 칠관 분수가 서있는데 이곳이 바로 하일브론(약수가 펑펑 터지는 샘터라는 뜻)이다.

그 외에 독일 기사단이 지었던 성당과 기사단 하우스가 아직 남아 있고 고깃간과 법원이 위아래로 나란히 자리잡았던 특이한 건물이 있다. 한때 도시를 방어했던 성곽은 사라진 지 오래 되었고 지금은 탑 두 채가 남아 도시를 지키고 있다.

하일브론의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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