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 어반 엣지 가드닝 (Urban Edge Gardening)
갈지 않고 쓸 수 있는 첫 땅이 생겼다
“로터리 안 치고 계속 쓸 수 있는 땅은 없나요?” 1997년부터 지역에서 주말농장을 운영해 온 운영자에게 이런 부탁을 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농민들은 땅을 경운하는 행위를 트랙터나 관리기에 다는 Rotavator의 이름을 따 로터리친다고 말한다.
“왜? 우리가 돈도 안 받고 깔끔하게 싹 밀어주는데. 그냥 편하게 하지.” 주인 할머니는 의아해하면서도 부지 하나를 내어주었다. 보통 남들과 다른 요구를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리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누구도 선택하지 않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모퉁이 공간이 내게 주어졌다. 내가 농사짓고 있는 주말농장의 표준 임대 시세는 10평당 15만 원 선. 밭주인은 50평의 부지를 3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내어주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정남향의 일조를 인근 아파트 건물과 거대한 아까시나무가 차단하여 상시 그늘이 지는 자리였다. 게다가 전체 50평 중 20평은 언덕이다. 이 언덕은 ‘세상에 이유 없는 할인은 없다’는 진리를 안겨주게 된다.
그럼에도 꼭 이곳이어야만 하는 치명적인 장점(?)이 있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아 쫓겨날 가능성이 극히 낮은, 안정적인 땅이라는 점이다. 신도시 아파트에 사는 내게 이곳은 불과 180m 거리였다. 요즘에는 농촌에서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집 바로 앞의 밭’인 셈이다!
“‘문전옥답’이란 문전門前이어야 옥답沃沓이 된다는 뜻이다”라는 가까운 농민의 명언을 떠올렸다. 조건이야 어떻든 가까운 거리에서 내가 열심히 들여다보면 뭐라도 해볼 수 있겠다. 덕분에 2022년 4월 초, 주인이 ‘말끔하게’ 갈아 엎은 땅을 인도받아 처음으로 무경운 농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2022년 3월 밭주인에게 지금의 자리를 처음 분양받던 당시의 모습. 뒷쪽으로 담벼락과 아파트가 있는 쪽이 정남향이다. 아직 이른 봄이라 아까시나무는 황량한 모습이지만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무성한 잎사귀를 틔워낸다. ©️ 이아롬
가장자리에서 마주한 당황스러운 다양성
친환경 농사를 기반으로 자연을 모방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퍼머컬처Permaculture’에는 ‘가장자리의 법칙’이 있다. 생태학의 ‘가장자리 효과Edge Effect’에 기반한 이 법칙은 ‘경계의 땅에서는 다양성이 생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물가 경계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수생식물과 습기에 강한 식물, 수생동물과 물을 찾아오는 육지동물 등 서로 다른 생태계가 중첩되면서 공간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는 중앙에서 서서히 밀려난 존재들이 닿는 변방이지만, 사실 가장자리는 가장 다양한 존재들을 품어내는 풍요로운 공간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휴경지로 방치되었던 이 쓰레기 밭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전혀 다른 결의 다양성이었다. 언덕에는 돼지감자, 개망초, 쇠비름, 여뀌같이 반갑지 않은 풀들이 질서 없이 자라나 있었다. 주어진 밭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언덕을 개간하고 틀밭을 세워볼 요량으로 삽과 호미를 들었다. 땅을 파 내려갈 때마다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만든 쓰레기의 다양성’이었다.
오래 방치된 모퉁이 땅이 품고 있던 것들. 버스정류장과 아파트, 군부대가 맞닿은 가장자리에서는 ‘인간이 만든 쓰레기의 다양성’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 이아롬
밭의 가장 끝부분인 내 자리는 군인아파트와 군부대, 그리고 버스정류장과 맞닿은 경계였다. 버스정류장 근처 땅속에서는 담배꽁초, 과자 봉지, 캔, 페트병, 마스크가 끊임없이 나왔고, 아파트 바로 밑에는 누군가 이사가며 묻었을 그릇 세트와 옛날 장판, 한때 가구였을 합판 조각들이 가득했다.
농사용 멀칭 비닐, 부직포, 에너지 음료 캔, 전선, 야생동물의 사체, 심지어 군대 폐기물로 추정되는 지뢰 모형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폐기물이 이곳에 매립된 것만 같았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괴롭힌 건 농업 폐기물이었다. 비닐이나 그물망, 부직포는 얇고 가벼운 소재이지만, 흙 속에서 수십 겹으로 엉키고 진득하게 달라붙어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주변의 만류와 걱정 속에서도 집착적으로 캐내었지만, 거대한 돌이나 통나무 밑에 깔린 폐자재들은 끝내 발굴을 포기해야 했다.
틀밭만 만들었다면 닷새 만에 끝났을 작업이 쓰레기를 발굴하느라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처음에는 50L 종량제 봉투를 사서 처리했지만,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양이 되어 밭에 굴러다니는 상토 포대와 비료 포대를 전부 동원했다. 그렇게 모인 포대만 40개가 넘었다.
행인들이 버린 가벼운 쓰레기는 개인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포대에 담긴 거대한 생활·농업 폐기물은 무게와 부피 때문에 지자체의 도움이 절실했다. 구청에 여러 번 상황을 설명하고 읍소한 끝에 겨우 수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 정중하게 부탁한 일이었지만, 사유지 쓰레기 처리에 난감해하던 구청 담당자는 “이런 일로 다시는 구청을 소환하지 말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언덕의 쓰레기를 모두 발굴한 뒤 틀밭을 건설한 것을 기념해 찍은 사진(좌). 마침내 건설이 끝난 2022년 여름, 에어룸 토마토가 자라는 텃밭 ©️ 이아롬
마인드풀가드너스에서 사람을 모아 밭로깅한 뒤 주운 모판과 멀칭비닐 ©️ 이아롬
그렇게 흐른 5년의 시간 동안, 텃밭 이웃들은 여전히 내가 깨끗하게 치워둔 자리에 모종판부터 비료 포대, 씨앗 봉투까지 다양한 쓰레기를 얹어두고는 했다. 혼자서 묵묵히 쓰레기를 주우며 몸과 마음이 지쳐갈 무렵, 당시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플로깅Plogging(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환경운동)’을 밭에 접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정원활동가를 지원하는 플랫폼 ‘마인드풀가드너스’를 통해 밭에서 하는 플로깅, 이른바 ‘밭로깅’ 프로그램을 열었다. 평소 환경 활동에 관심이 많던 이들이 기꺼이 우리 밭을 찾아와 힘을 보태주었다.
6~7월 만개한 보리지에 매달린 벌. 밀원수를 심고 가꾸자 벌과 나비, 귀한 새들까지 가장자리의 진짜 다양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 이아롬
다행히 그 시간들은 완전히 헛되지 않았다. 아직도 무단 투기 되는 쓰레기가 존재하지만 양이 눈에 띄게 줄었고, 고성이 오가는 몇 차례의 거친 조율을 거치며 이제는 텃밭 이웃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고 자정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생겼다. 공용공간의 풀을 예초기로 미리 베어버리자 밭 주인도 더이상 제초제를 치지 않게 됐다.
땅을 갈지 않고, 비닐을 씌우지 않으며, 음식물 쓰레기와 텃밭 잔사로 만든 자가 퇴비로만 농사를 지어온 지 5년째. 텃밭 한 켠에 다양한 꽃과 밀원수를 심고 가꾸자 벌과 나비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특히 허브 ‘보리지Borage’와 ‘딜Dill’이 만개하는 6~7월이 되면, 벌이나 산호랑나비 애벌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무료 급식을 즐기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게다가 새라고는 까치와 비둘기, 직박구리가 전부인 줄 알았던 동네였는데, 이제는 지렁이와 벌레를 사냥하러 오는 박새, 노랑눈썹솔새, 붉은머리오목눈이 같은 보기 귀한 새들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쓰레기만 쌓였던 척박했던 변방의 땅에서, 마침내 가장자리가 가진 진짜 생태적 다양성을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달의 식물 — 돼지감자 Helianthus tuberosus
5년 만에 밭 한구석에 다시 나타난 돼지감자 ©️ 이아롬
농민들이 가장 “이기기 어렵다”고 혀를 내두르는 식물이 있다. 보통 식재료로 환영받지 못하면서 지독하게 번지는 것들에 그런 특징이 있는데, 그게 알뿌리 형태라면 그 위엄(?)은 훨씬 대단하다. 그중에서 악명 높은 것 중 하나가 돼지감자. 지역에 따라 ‘뚱딴지’라고도 불리는 돼지감자는 몸에도 좋지만 누구나 맛있게 다루기에 난이도가 있는 식재료다.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농민은 돼지감자만 전문으로 납품하거나, 다품종소량생산으로 다양하게 납품하는 이들뿐이다.
당뇨에 좋다고 알려진 돼지감자는 뻥튀기 기계로 기름 없이 튀기거나 약불에 덖어 차로 마시기도 하고, 이걸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장아찌로 담가 먹기도 한다. 감자처럼 부드럽지 않고, 서걱거리는 식감에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기 때문에 심심한 맛으로 물처럼 마시거나 간장 맛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아는 쉐프가 생크림을 곁들여 크림스프로 만들었을 때 가장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처럼 제한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도시 농부에게 돼지감자는 반드시 솎아 내야 할 대상이었다. 맨손으로 그 빽빽한 군락을 전부 캐내어 주변 농민들에게 묘한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동안 종적을 감췄던 돼지감자가 5년 만에 다시 밭 한구석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뽑아 버리지 말고 가을에 수확해 볼까.
피처이미지: 2022년 4월의 밭 모습 ©️ 이아롬
© 3.SPACE MAGAZINE / 어반 엣지 가드닝 / 가장자리에는 (___)의 다양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