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3.SPACE MAGAZINE

공원 나물

“아 정말 못 살아!” 소식을 전해들은 나의 첫 반응이었다. 작년에 서울 보라매 공원 안에 독일 작가 정원을 만들며 피복식물Ground cover 개념으로 부추를 꽤 많이 심었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누군가 홀라당 수확해 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정원을 열심히 돌보는 자원봉사자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노여웠다. 작약도 없어졌다고 했다. 그 외에도 몇몇 숙근초를 캐 간 흔적이 분명히 보인다고 했다.

붉은 작약과 보라색 밥티시아, 그라스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숙근초 다층식재 정원 © 오세훈

문득 20년 전에 겪은 일이 떠 올랐다. 서울 서머셋 호텔 옥상 정원을 조성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때 국내에서 처음으로 숙근초 다층식재 개념을 적용하여 정원을 만들었다. 나름 온갖 정성을 쏟았던 프로젝트여서 거의 매일 모니터링을 하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화단 한 쪽에서 어느 노인이 열심히 숙근초를 캐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곳은 투숙객들만 접근이 가능한 곳이니 그 노인도 분명 투숙객일 텐데, 고급 호텔에 묵으면서 꽃시장 갈 돈이 없어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심은 숙근초를 어여삐 여긴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말렸더니 오히려 나를 노려보며 야단을 쳤다. 그 태도가 너무 당당했다. 20년 전에도 지금도 국내의 공공정원은 ‘식물 도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울산 아우돌프 정원에서도 숙근초 도난이 심각한 지경이라고 했다.

한국은 정직하기로 소문난 나라다. 카페에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두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다. 마트에서 3천원이면 살 수 있는 부추를 살 돈이 아까워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절대로 마트에서 부추 한 단을 그냥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달라질까? 그걸 절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와아 신선한 부추가 자라고 있네!” 라면서 심봤다는 식으로 캐갔을 것이다.

옛날 산에서 나물하고 들에서 쑥 캐던 시절의 기억이 마치 유전자처럼 각인되어 있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물은 산에 가서 캐세요’ 라는 팻말을 붙여 놓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각할수록 노여움은 가시고 오히려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정원에 엎드려 진기한 숙근초를 캐는 모습을 상상하니 어쩐지 귀엽다는 생각도 든다. 산에서 나물 캐던 시절이 아득한데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도 우리 민족 만의 기억일 것이다.

공원과 자연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흙과 연결된 탯줄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옛날에 배고팠던 시절, 산과 들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마트에 가서 사는 것보다 땅에서 직접 채취하는 즐거움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꼭 말려야 할까? 우리만 가지고 있는 소중한 유전자 아닐까?

지금은 생태계 교란 등의 이유로 산에서 함부로 식물을 채취할 수 없는 시대다. 그렇다면 차라리 공원을 나물 캐는 곳으로 만들어 준다면 어떨까?  

피처이미지: 보라매공원 독일 작가 정원. 추명화와 숙근초가 조화롭게 자라고 있다. © 조정우


© 3.SPACE MAGAZINE / 장소 / 공원 나물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