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싱허스트 캐슬 가든을 유심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상징물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스나 터키 등지에서 많은 고대 유물을 실어 날랐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상은 두 점의 디오니소스 상과 바쿠스 무녀상이다.
어느 날 비타가 런던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길가 조형물 상점에서 디오니소스 상과 바쿠스 무녀상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내려서 주문했다고 한다. 지금 해자 저편에 서서 정원 전체를 응시하고 있는 디오니소스 상은 어렵게 구해서 세웠다. 이들은 모두 시각축을 따라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해자 변의 디오니소스와 바쿠스 무녀는 개암나무 숲을 사이에 두고 마주고는 위치다. 그래서 보름달이 뜨면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서 밀회를 즐기다가 해가 뜨면 다시 대위에 올라서서 시치미 뗀다. 소설가였던 비타가 지어낸 말이다.
비타가 왜 수많은 신 중에서도 디오니소스를 정원의 수호신으로 삼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시싱허스트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는 열쇠가 된다.
디오니소스는 흔히 ‘두 번 태어난 신’으로 불린다. 이는 시싱허스트라는 폐허 위에서 자신의 우주를 창조하며 정원가로 다시 태어난 비타의 삶과 궤를 같이한다. 또한 디오니소스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모호한 정체성을 지닌 신이기도 하다. 이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란도』의 실제 주인공이자, 성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을 살았던 비타의 자아를 투영한다. 소설 속 올란도가 시간을 관통하며 두 번 태어나듯, 비타 역시 시싱허스트라는 공간을 통해 자신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표출한 것이다.
동시에 디오니소스는 ‘자연의 걷잡을 수 없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비타는 남편 해롤드 니콜슨이 설계한 엄격한 기하학적 구조 안에 식물들이 제멋대로 뻗어 나가고 넘쳐흐르게 함으로써 정원에 야생적 활력을 부여했다. 이는 비타가 통제된 질서의 이성적인 정원이 아니라, 본능과 생명력이 요동치는 디오니소스적 공간을 지향했음을 보여준다.
시싱허스트는 겉으로 보기에 고즈넉한 전형적인 영국 정원이지만, 그 이면에는 비타의 복잡한 내면과 신화적 서사가 촘촘히 얽혀 있다. 동화가 정원의 외관을 장식한다면, 디오니소스로 대변되는 신화는 정원의 영혼을 지탱한다. 이 신화적 맥락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시싱허스트가 풍경을 넘어 한 예술가의 치열한 자아 탐구의 장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디오니소스 상 3점 콜라주. 횐쪽 부터 바쿠스 무녀상 (©geograph.org.uk), 해자의 디오니소스 상(©geograph.org.uk). 개암나무 숲의 디오니소스 상 ©고정희
© 3.SPACE MAGAZINE/강의 후기/시싱허스트 캐슬 정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