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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 자유의 역설에 관하여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1906~1975) 1963년 경 사진

사상가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1906~1975) 1963년 경 사진

한나 아렌트의 50 번째 기일을 맞아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은 기원전 514년 참주(폭군) 히파르코스를 암살했기에 자유의 창시자로 여겨졌다.” 며칠 전에 이 글을 읽었을 때, 그야말로 오싹했다. 자유가 살인으로 시작되었다고? 우리는 얼마나 순진하게도 자유와 평화가 한 쌍이라고 믿어왔던가. 그러고보니 역사 속에서 인류는 언제나 자유를 얻기 위해 피를 흘려야만 했고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을 치렀다.

기원전 514년, 아테네의 파나테나이아 축제가 한창이던 날이었다. 젊은 귀족 하르모디오스와 그의 연인 아리스토게이톤은 단검을 옷 속에 숨기고 군중 사이를 헤집고 나아갔다. 그들의 표적은 참주 히피아스의 동생 히파르코스였다. 히파르코스가 하르모디오스에게 구애했다가 거절당하자, 보복으로 그의 여동생을 공개적으로 모욕한 것이 발단이었다. 개인적 원한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이 사적 복수를 정치적 저항으로 확대해석했다. 히파르코스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그를 죽인 하르모디오스도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고, 아리스토게이톤은 고문 끝에 처형당했다. 처참한 살인극이었다. 살해당한 것은  참주의 동생이었지만 4년 뒤에 참주정이 끝나고 폭군 히피아스는 쫓겨난다. 이후 아테네인들은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 두 사람의 동상을 세우고 자유의 순교자로 기억했다. 폭력이 자유의 신화가 된 순간이었다.

1975년 12월 4일, 한나 아렌트는 세상을 떠났다. 왜 그녀의 기일에 하필 위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폭력, 권력, 자유가 그녀 평생의 화두였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내가 그렇게 이해했기 때문이겠지.

1906년 독일 하노버에서 유대인 가정에 태어난 한나 아렌트는 20세기의 가장 어두운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상가였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밑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나치의 집권으로 독일을 탈출해야 했다. 파리에서 망명자로 살다가 프랑스마저 함락되자 수용소에 갇혔고, 가까스로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그녀는 20세기 정치철학의 지평을 열었다. 그녀에게 사유는 지적 활동을 넘어 하루 세끼 먹는 밥과 다름이 없었다. 그녀에게 사유는 저항의 한 형태였을까? 저항한 이들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지만 그녀의 사유체계는 초월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녀가 남긴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Men in Dark Times)』은 바로 초월적 따뜻한 시선으로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아렌트가 말하는 “어두운 시대”란 국가가 빛을 잃어버린 시대, 진실이 은폐되고 인간성이 말살되는 시대를 뜻한다. 그런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로자 룩셈부르크, 발터 베냐민, 베르톨트 브레히트—은 어둠과 싸우다 희생되었거나 고난을 당했거나 혹은 어둠과 타협했다.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홍원표 역. 한길사 2020.

자유는 정말 폭력을 통해서만 가능한가?

아렌트는 답한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행위 자체였다.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을지 몰라도, 어둠 속에서 인간으로서 행동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빛을 발했다. 그들은 승리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다.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들이 자유의 창시자가 된 것은 살인 행위 자체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참주에 맞서 행동했다는 사실, 즉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그 행위가 살인이었다는 것은 비극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의 동기가 애초에 순수하게 정치적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렌트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 어둠의 시대에는 선택지가 제한된다. 완벽한 도덕적 순결함을 유지하면서 폭정과 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어떤 경우라도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필요한 경우라도. 그녀는 폭력과 권력을 비교하며  진정한 권력은 사람들이 함께 행동할 때 생겨나는 것이지, 무력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르모디오스의 단검이 자유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이 함께 참주정을 끝내기로 결단했을 때 자유가 시작된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나? 아렌트가 보았던 20세기의 어둠은 사라졌을까? 아니다. 기후 위기, 민주주의의 후퇴, 불평등의 심화—우리 시대의 어둠은 더욱 복잡하고 교묘하다.

이런 시대에 한나 아렌트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절망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아렌트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에서도 인간답게 사는 법,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지켰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국 자유란 한 번의 영웅적 행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우리가 선택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아쉽게도 선택의 여지조차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한나 아렌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어둠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고 행동할 것인가? 자유를 위해 우리는 무엇 하나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과연 부정의에 맞설 힘이 있을까? 혹시 우리 모두 그 부정의의 공범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우리는 이 질문에 과연 하르모디오스의 단검처럼 날카롭게, 아렌트의 사유처럼 깊게 답할 수 있을까?  

 

한나 아렌트가 어두운 언급한 인물들이 경험한 어두운 시대와 자유의 역설:


©3.SPACE MAGAZINE/한나 아렌트 50회 기일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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