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성장으로부터의 해방>을 번역할 때 쓴 것이다. 2014년 3월 6일에 썼으니 벌써 시간이 또 이렇게 흘렀다. 요즘 부쩍 이 책 생각을 많이 한다. 니코 페히 교수의 경고가 떠 오른다.
[재앙이 일어나] 강요당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풍요로부터] 하차한다면 기회는 있다고 했다. 과연 기회가 있었을까? 그때 이미 늦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사람들이 지금 코로나 팬데믹을 별로 재앙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재앙이라면 우선 엄청난 굉음이 일면서 화산이 폭발한다거나, 구약성경 수준의 대홍수가 일어난다거나 중세처럼 역병으로 죽은 시체가 거리에 널려있다거나 등등의 확실한 징표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눈치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아주 조용히 번지고 있는 코로나도 재앙인가? 이렇게들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면 재앙은 영화 속에만 있다고 여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환경파괴와 코로나가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지 않으려 드는 맹한 눈동자들이다.
독일에선 코로나 감염자가 매일 일만 명 이상 나오고 있다. 오늘 메르켈 총리가 코로나 규정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이 미워하거나 말거나 꿋꿋하게 주관대로 밀고 나가는 게 역시 믿음직하다. 백신 접종을 의무화할 모양이다. 반발이 심할 것이다.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지 말아라, 민주주의가 망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다시 우르르 일어날 것이다.
성장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번역노트를 쓴다고 예고하고 또 여러 날이 지났다. 이상하게 제목이 유난히 신경쓰이는 책이다.
원제는 Befreiung vom Uberfluss인데 이를 성장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번역한 이유는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에서 책 소개를 듣는 순간 성장과 해방이라는 두 개념이 머릿 속에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곰곰히 생각한 끝에 풍요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다시 고쳐 불렀으나 실은 그것도 아주 정확한 건 아니다. Uberfluss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말하는 데 풍요가 꼭 필요이상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며 곳간이 차고 넘치게 해달라고 제를 들인다면 이는 니코 페히 교수가 말하는 ”넘쳐남’과는 다른 의미이다. 그러고 보니 [차고 넘쳐남]을 한 마디로 정의해 주는 단어가 우리 말에 없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사전을 찾아 보아도 마땅한 단어가 없으니 차라리 책 제목을 [차고 넘침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제목은 책이 다 번역된 후에 붙여도 상관없으니 좀 더 숙고해얄 것 같다.
글의 맥락으로 보아선 오히려 “성장으로부터의 해방”이 더 적절하며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성장이 가져다 주는 차고 넘침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이 책의 저자 니코 페히 교수는 경제학자이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자본주의 국가들이 좇고 있는 경제성장의 당위성에 반론을 제기한다. 경제는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는 명제는 커다란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성장을 지속한다는 건 미친 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차고 넘침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깊이 속박하는 것이므로 그로부터 각자 스스로 해방해야 비로소 개인의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환경파괴가 있고 사회적 불평등이 있으며 대대로 물려주는 엄청난 빚더미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범사회적 차원에서 조절할 수 있는 수위를 이미 넘어섰으며 정부나 국가, 유럽 연합 등에서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으며 찾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이 각자 자기 길을 찾아 가는 것 뿐.
80페이지 남짓의 얇고 작은 책이지만 이런 폭발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서론과 결론을 빼면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를 간략히 살펴보면;
서론
1장: 우리는 모두 우리 형편 이상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믿고 있다. 과연 그럴까?
2장: 성장과 발전은 환상에 불과하다. 잘 먹고 잘 사는 이면에는 파괴와 착취가 있다.
3장: 자유 역시 환상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예속관계에 빠져 있다.
4장: 녹색 성장이라는 신화
5장: 성장 강박증과 이를 부추기는 것들
6장: 적은 것이 많은 것일 수 있다. 탈성장시대의 경제론
결론: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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