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풍경정원을 마지막으로 ‘시즌4: 장소의 혼’ 온라인 강의를 모두 마쳤다. 식민제국 주의로부터 풍경의 정치성까지, 이번 학기에는 이야기가 다분히 정치적으로 흘렀다.  

스토우 정원 내 엘리시언 필드에 위치한 ‘영국 위인들의 사당(Temple of British Worthies)’. 명예혁명 직후의 정치 철학과 미덕을 시각화한 도상학적 정원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 고정희

특히 스토우Stowe 정원이 태동하던 시기의 풍경정원은 정치 철학을 새겨 넣은 도상학적 정원이었다. 고대 미덕의 사원이나 영국 위인들의 사당 등은 지금도 명예혁명 직후, 영국의 정치 분위기를 증언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토우 정원의 ‘엘리시언 필드Elysian Fields‘는 ‘읽는 정원’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세대 조경을 맡았던 란셀롯 브라운Lancelot Brown은 읽는정원을 평평하게 깎아 ‘보는 풍경’으로 개선했다. 그렇다고 정치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영국의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은 자연을 분할하고 소유하는 과정에서 풍경식 정원의 미학적 토대를 형성했다. 이 목가적 풍경의 이면에는 풍경을 사유화하고 권력화하려 했던 인간의 지배 욕망이 숨어 있다. © 고정희

풍경 정원 자체가 ‘인클로저Enclosure’ 움직임, 즉 풍경의 사유화 과정의 결과로 형성된 ‘목가적 풍경’위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풍경 정원 자체가 권력화된 자연”이라고 말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이런 뒷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 강의 시간에 전하긴 했지만 뒷맛은 썩 좋지 않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원과 식물과 풍경을 지극히 사랑하는 수강생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풍경에게 미안했다. 

 

풍경은 사람들의 짝사랑 대상일까?

자연스러운 들판과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 흩어져 있는 스토우 정원의 픽처레스크(Picturesque) 전경은 ‘그림과 같은(Like a picture)’라는 뜻으로 18세기 인간이 짝사랑한 자연의 이상향이다. © 고정희

자연은 문자 그대로 무심無心하다. 무심한 채로 거기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짝사랑하고 스토킹한 것이 아닐까? 짝사랑이 지독해지면, 막장 드라마에서 보듯이 별 짓을 다 하게 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묻지도 않고,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라거나 “내게 네가 얼마나 필요한지”만 중요해진다.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기울기 시작한다. 풍경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 막장성을 품는 경우가 있다. 

“네가 너무 좋아서, 네가 더 예뻐 보이게 해 주고 싶다”라는 말 뒤에는 “너를 내 마음대로 하겠다” 라는 지배와 소유의 욕망이 숨어 있다. 풍경 정원은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자연을 통제하고 재편했다. 자연을 극히 통제했다던 바로크 정원에 반하여 형성된 것이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정복했다. 건축물을 세우고, 시야View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를 베고, 더 멀리까지 내다보기 위해 언덕을 쌓고 골짜기를 내고, 물길을 돌려 호수를 만든다. 

그래도 자연은 불평하지 않는다. 무심한 채로 묵묵히 견디며 아름답게 자라주고 언제라도 받아준다. “그렇게 들볶으면 다 뱉어버릴래” 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피처이미지: 랜설롯 브라운이 조성한 스토우 정원의 대저택 앞 전경. 한편의 그림처럼 철저히 통제되고 계산된 풍경이다. © 고정희


© 3.SPACE MAGAZINE / 강의 후기 / 풍경의 정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