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드코트 동쪽 마당. 낡은 돌담에 얽히고 설킨 식물들. 코티지 정원을 연상시킨다. © 고정희

이번 강의에서는 영국 코츠월드에 위치한 히드코트 매너 정원Hidcote Manor Garden을 통해 ‘장소의 혼Genius Loci’을 실제 정원에서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히드코트는 종종 토피어리와 화려한 경계 화단으로 기억되지만, 이번 강의의 초점은 개별 식재 기법이나 식물 조합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원이 지닌 전체 구조와 맥락, 그리고 그 안에서 식물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이해하는 데에 중심을 두었다.

이는 시즌 4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즌 2와 3이 디자이너별 식재 기법, 식물 조합, 식물 선택의 전략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면, 시즌 4는 한 걸음 물러나 정원을 하나의 ‘장소’로 읽는다. 기술적으로 중요한 것은 개별 식물의 디테일이 아니라, 장소를 구성하는 방식과 식물 적용의 큰 틀이다.

히드코트 매너 정원은 이 관점을 이해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사례다. 이 정원은 가든룸이라는 독창적인 공간 분절 방식, 서로 교차하는 시각축vista, 그리고 닫힘과 열림이 반복되는 동선 구조를 통해 방문자의 감각과 인식을 끊임없이 전환시킨다. 식물은 이 구조 안에서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고, 감정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예컨대 정원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레드 보더는 단순한 색채 실험이 아니다. 그것은 정원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축이자, 주변의 녹색 공간과 대비되며 시선을 끌어당기는 구조적 장치다. 이처럼 히드코트에서 식재는 언제나 공간 구성과 분리되지 않으며, 독립적인 기법이 아니라 전체 질서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강의는 또한 히드코트가 ‘식물 디자인 정원’으로 불리는 이유를 재해석했다. 이곳에서 식물은 풍부하지만 결코 무질서하지 않으며, 채워진 공간만큼이나 비워진 공간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녹색으로만 구성된 방, 의도적으로 단순화된 구간들은 화려한 가든룸과 나란히 배치되며 정원의 호흡을 조절한다. 이는 식물 적용이 곧 공간 해석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히드코트 동쪽 마당의 낮은 돌담에서 건너다 보이는 유럽피나무길 © 고정희

마지막으로, 히드코트는 하나의 완결된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정원으로 읽힌다. 이 장소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에 앞서 ‘이 장소는 어떤 구조와 질서를 필요로 하는가’를 묻는다. 시즌 4의 강의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해, 식재를 넘어 정원의 전체 맥락을 읽는 시야를 확장하고자 한다. 정원은 기술의 집합이 아니라, 장소와 인간, 그리고 시간이 공명하는 하나의 총체적 경험이라는 점을 히드코트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