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잘 살게 해 준다는 것이 아니라 내세에 영원한 천국을 약속한 예수님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누군가 나타나 독립운동 하는 청년들을 모은 다음 일본군들과 싸우지 말고 다른 쪽 뺨도 내주라고 했다면 어느 누가 그 말을 들었겠는가.

니코 페히Niko Paech 교수가 그의 책 “성장으로부터의 해방”에서 하는 얘기들은 거의 그 수준에 가깝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지만 만약에 지금 한 번 김포공항에 가서 항공사들에게 제주도항 비행기가 5분마다 뜨는 것은 대기권을 죽이는 행위이니 하루에 한번 만 운행하라고 요구해보라. 항공사보다는 고객들에게 몰매 맞을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거기에 있다. 현대산업사회의 소비성향은 거의 중독 증세에 가깝다. 마약거래상들이 청소년들을 마약에 중독 시키듯이 산업사회는 소비자를 소비에 중독 시키고 있다. 마약중독이나 알코올중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중독증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만 소비중독은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것 중 하나가 겨울에 신선한 채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독일의 장벽이 무너진 그 해 겨울, 망년회에 동베를린에서 넘어 온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파티를 했었다. 그 때 뷔페에 차려진 신선한 샐러드와 오이를 보고 동베를린 친구들이 놀라워하는 걸 보고 내가 오히려 놀랐던 기억이 난다. “겨울에 신선한 오이가 있네!”

그 사실 뒤에 어떤 복병이 숨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그 점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얻어지지 않는다. 농장주들에게 겨울에 비닐하우스 생산을 중단하라고 한다면 그들이 뭐라고 할까. 우리는 모두 비타민 결핍으로 죽어갈까?

뉴질랜드산 사과이건 이집트에서 온 바나나건, 독일산 자동차건 필요 없는 아파트 열채이건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지구 구석구석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현대 복지사회의 ‘권리’로 여기고 있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신화를 처음에 누가 퍼뜨렸는지 매우 알고 싶어진다.

니코 페히 교수는 생산을 급진적으로 감소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현재 지구 전체에 흩뿌려진 퍼즐형 생산체계를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온 상품을 굳이 소비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페히 교수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어떤 방법이 있는지는 책을 끝까지 읽어 봐야겠지만 그는 처음부터 정치에 큰 희망을 두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정치가들은 소비자들, 즉 유권자들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에 그들의 편익을 저해하는 일은 결코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엄청난 은행 빚을 내어 비닐하우스 농장에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겨울 오렌지를 최저가에 구입할 수 있어야 남는 돈으로 비싼 자동차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빚을 갚아야 하는 세대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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