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다. 마크 크리거Mark Krieger 교수는 컴퓨터 그래픽(CG)의 당위성을 전혀 못 느껴 손그림을 그려서 보내왔다. 자연주의자로서 당연했다. 실은 나 자신도 CG의 난무를 우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 스스로 설득되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 어떻게 설득하랴! 결국 “주최 측에서 원하는 것이니 해야 한다. 해야 하는 일이니 일단 하자”는 데에 합의했다.
마크 크리거의 손그림 평면도 © 고정희
이 시점에는 이미 식물 선발에 서너 달 정성을 쏟은 뒤라 시간이 촉박했다. 작업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느린 독일 업체에 일을 의뢰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천변만화’의 이양희 대표와 ‘가든 트래블러’ 이안숙 선생의 신세를 졌다.
마크 크리거 교수와 함께 일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적정 식물을 찾기 위한 그의 끈질긴 노력이었다. 서울이라는 서식 환경에 잘 적응하여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는 식물을 열심히도 찾았다.
작가로 초청받자마자 인터넷에서 한국 식생을 검색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거의 매일 내게 이메일을 보내 이 나무는 어떤가. “저 숙근초는 또 어떨지?” 의견을 물어왔다. 시공사가 ‘더 페레니얼’로 결정되자 소통을 위해 카카오톡에 가입하고 단톡방에 들어왔다. 거기서 또 토론이 이어졌다.
식재 리스트를 몇 번 변경했는지 모른다. 2024년 겨울에 설계를 시작했으니 긴 겨울을 그렇게 보낸 것 같다. 식물에 대한 토론은 공사가 시작된 후에도 이어졌다. 이런 작가에게 컴퓨터 그래픽을 하자고 조르는 나의 입장도 난처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식물 찾기는 숙근초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의 스케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정원을 감싸고 있는 생울타리의 물결은 그에게 매우 중요했다. 크리거 교수는 서로 다른 열 가지 떨기나무를 섞어 심고 높낮이를 다르게 하여 새와 작은 동물들이 깃들 수 있는 서식처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종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목표였다. 아쉽게도 이 생울타리 과제는 아직 다 풀지 못했다. 앞으로 서서히 완성해야 한다.
🖥️ 수작업 도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모습
조율의 첫 단추는 이안숙 선생이 그린 초기 CG 평면도를 통해 채워졌다. © 이안숙
천변만화 이양희 대표가 정교하게 3D 시뮬레이션 완성한 장면 © 이양희
🌿 특집 | 에비에이터 정원, 다섯 편의 기록
피처이미지: 마크 크리거의 손그림 © 고정희
© 3.SPACE MAGAZINE / 특집 / CG를 거부한 자연주의자와 정원 만들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