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을 약속할 화단의 토양 기반 만들기 — 이양희
사실 시작부터 겁이 났다. 한국의 정원박람회에서 ‘풀만 심는 정원’이 갖는 무게를 알기 때문이었다. 풀은 자칫 쑥대밭이 되거나, 한꺼번에 몰살되곤 했다. 그것이 내가 경험한 숙근초 정원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숙근초를 오래 살아갈 식물이 아니라 일시적 장식품으로, 다루기 어려운 식물로, 여차하면 교체되어도 별문제 없는 존재로 대하곤 했다. 나의 ‘겁’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두려움과 기대는 거의 같은 무게로 다가왔다. 어쩌면 마크 크리거Mark Krieger 교수의 숙근초 정원이 그 익숙한 흐름에 도전하는 첫 정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단단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지는 느티나무와 이팝나무 그늘 아래에 있었다. 공사는 크리거 교수가 그린 선형을 땅 위에 옮기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그다음은 땅을 파는 일이었다. 화단이 들어설 자리의 점질토를 걷어냈다. 배수가 되지 않는 흙은 과감히 덜어내고, 기존 집수정과 연결되는 배수관을 깔았다. 40mm 골재와 모래를 섞어 30cm 깊이의 배수층을 만들고, 그 위로 20cm 깊이의 정원토를 부었다. 백 년을 약속할 화단의 토양 기반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 SOIL PREPARATION ARCHIVE

점질토였던 토양 © 이양희

기반이 되어준 골재와 모래 © 이양희

pH 9.0의 토양 © 이양희

배수층 작업 후 30cm 깊이의 정원토 © 이양희

배수관거 작업 중 © 이양희
주변에서는 수군거림이 시작되었다. ‘기반 공사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왜 계속 땅만 파고 있느냐’, ‘왜 계속 새로운 골재와 토양이 들어오느냐’… 기반 공사에 오랜 시간과 비용을 쏟는 우리 팀의 모습이 어쩌면 미련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사이 다른 곳에서는 속전속결로 거대한 구조물이 세워졌고, 선명한 색채가 공간을 채워나갔다.
하지만 땅에 대한 투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은 마사다짐을 위한 기층 작업이었다. 우리는 여러 차례 크리거 교수에게 우려를 전했다. 한국에서는 비가 많이 올 때 마사가 쓸려나갈 위험이 있으니, 시멘트가 섞인 반경화 마사포장이 더 안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독일 전통 방식의 물다짐이라면 문제가 없다고 확언했다. 너희 나라 궁궐의 마사다짐도 그렇지 않으냐고.

포장구간 배수층 ©️이양희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40mm 골재에서 시작해 점점 작은 입도의 재료로 층을 쌓고, 그 위로 10cm의 마사를 다졌다. 큰비가 몇 차례 지나갔지만 마사는 제자리를 지켰다. 우리의 우려는 조용히 잦아들었다. 250mm 깊이로 박힌 목재 엣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큰비가 오면 썩거나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것은 우아하게 식물의 자리를 지켜냈다. 편견을 내려놓고 기초를 단단히 한 공정이 건네는 보상은 생각보다 컸다. 그 안쪽으로, 제 수명대로 살아갈 숙근초들이 자리를 잡았다. 내년에도, 10년 후에도,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오래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식물들이었다.
완성된 정원은 화려하지 않았다. 보라매공원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그 선형들을 무심히 지나쳤다. 꽃이 별로 없다며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것들은 땅속에 있었다.
숙근초들은 저마다 그 땅의 입지 조건에 맞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느티나무 근권부의 식물들은 뿌리 경쟁에 밀린 듯 성장세가 약했다. 어디서나 잘 자랄 것 같았던 돌단풍과 부추는 여전히 면을 충분히 채우지 못했다. 생각보다 그늘진 나무 아래의 일부 식물들은 웃자라며 길게 목을 뺐다. 반면 청화쑥부쟁이는 본 개체를 불려나가는 것도 모자라, 무수한 씨앗을 떨어뜨리며 조용히 세를 넓혀갔다.
우리는 이 모든 변화를 즐겁게 바라보았다. 예상 밖을 맴도는 숙근초의 변화무쌍함은 이 정원을 가꾸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다. 정원은 한순간의 완성으로 끝나는 장면이 아니라, 식물이 자기 방식으로 장소를 읽고 응답해가는 시간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이 믿음을 함께 나눈 동료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부지런히 정원을 찾았다. 정원의 안부를 살폈고, 서로의 안부를 나눴고, 함께 적절한 처방을 고민했다. Aviators Garden이 이륙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정원이 우리의 믿음을 증명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 또한 이 설계의 일부가 되었다.
피처이미지: ©️ 최진우
© 3.SPACE MAGAZINE / 특집 / 풀만으로 정원을 만든다는 것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