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 공작의 달력 10월
한국의 10월 달력은 단풍으로 화려한데 베리 공작의 10월은 어쩐 일인지 잿빛이다. 하늘은 파랗지만 루브르 궁전을 두르고 있는 성벽이 먼지색이고 농부들이 씨를 뿌리는 밭의 모래가 칙칙하다. 저기서 과연 싹이 날까? 걱정된다. 화가의 색 안배 기법인지도 모르겠다. 잿빛을 배경으로 말탄 농부와 빨간 의상, 씨뿌리는 농부의 파란 의상이 돋보인다. 빨간 농부, 파란 농부, 허수아비가 삼각형의 구도로 배치되었다.
10월에 씨를 뿌린다? 겨울보리를 파종하는 중이다. 센 강 평야에서 농사를 짓는 모습은 생소한데 6월 달력에 이미 같은 장소에서 꼴 베는 모습이 등장했었다. 빨간 옷의 농부는 말을 타고 밭을 갈아 골을 내는데 쟁기 위에 무거운 돌을 얹은 것이 흥미롭다. 파란 옷의 농부는 씨를 뿌리고 그 뒤에서 까마귀들이 배를 불리고 있다. 뒤쪽의 밭은 이미 파종이 끝난 듯, 허수아비가 허세로 활을 들고 서 있고 밭에 그물을 쳐 둔 것이 보인다.
이번 달에 보여주는 성은 설명이 필요없는 루브르. 물론 루브르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기 이전, 샤를르 5세 때의 모습이다. 샤를르 5세는 베리 공작의 형이었다. 성의 중앙에 거대한 탑이 서 있는데 이것이 오랫동안 프랑스 왕권의 상징이었던 루브르탑이다. 왕이 되지 못한 왕족에게 이곳에서 재산을 나누어 주었고 이곳에 왕실 보물을 저장해 두었었다. 후일 이 그림을 바탕으로 중세 때 루브르의 모습을 모형으로 재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모형이다. 중앙의 탑이 제대로 보인다.
이후 루브르 성은 여러 왕대에 걸쳐 증축, 개축을 거듭하였으며 중세 성에서 르네상스 궁전으로, 르네상스 궁전에서 바로크 궁전으로 변신을 거듭한 뒤 19세기 말에 와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성벽 아래 센 강변을 산책하는 모습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그림에서 처음으로 그림에 그림자를 그려 넣어 입체감을 주는 기법이 시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을 그린 화가를 <그림자 마스터>라고도 부른다. 누가 그렸는지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9월 달력에서 성을 그린 바르텔레미 데이크가 아닐까라는 설은 있다.
3. SPACE MAGAZINE/스토리/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그림 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