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들이 본래 좀 굼뜬데다가 의구심이 많아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워 한다. 그러다가 한 번 받아들이면 이를 절대 완성의 경지까지 올려놓는 저력을 발휘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절대 서두르지 않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절대 놓지 않는다. 영국에서 시작했으나 독일에서 대성한 풍경화식 정원이 그에 속하고 자동차 산업이 그러하다.    

환경운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이 환경을 선도하는 국가로 알려졌지만 환경운동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환경운동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미국을 선두로 서구사회에 거센 환경운동의 쓰나미를 몰고 온 한 여인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그녀의 이름은 레이철 카슨. 해양생물학자, 학술저널리스트였으며 특히 환경저술가로서 1962년에 발표한 <봄의 침묵Silent Spring>은 미국에서 환경운동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카슨은 20세기에 사회를 변화시킨 인물 100인 중에 꼽힌다.


화제작 <봄의 침묵>을 발표했을 때 카슨은 이미 잘 알려진 중견 작가였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에서 근무하던 시절 집필생활을 시작했으며 1951년에 출판된 <우리 주변의 바다The Sea around us>는 큰 성공을 거두어 미국출판상, 존 버러 과학저술상 등을 받았다. 후속작 <바다의 언저리에서The Edge of the Sea> 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칭찬은 받았으나 별로 팔리지 않았던 처녀작 <해풍을 맞으며Under the Sea Wind>가 재판되어 이 역시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세 권의 책이 소위 말하는 카슨의 <바다 삼부작>이다. 이로써 높 넓은 독자층이 해양 생태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 주변의 바다The Sea around us> 는 다큐멘터리영화로 만들어져 1953년 오스카 다큐상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가 너무 멜로드라마 풍이어서 카슨은 역정을 내고 이후 다시는 영화 제작권을 팔지 않았다고 한다. 

크랜베리 스캔들

크랜베리 수확장면. 1959년 추수감사절 직전 미국 보건부 장관이 크랜베리 판매를 금지시켜 대 스캔들이 일어났다. 출처: Agricultural Research Service

이후 카슨은 다음 저서 집필을 위해 집중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준비에만 거의 4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1950년대에는 DDT 등의 살충제나 농약이 기적의 약으로 통해 무분별하게 살포되었었다. 아무도 그 부정적 영향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1959년 <대 크랜베리 스캔들>이 터졌다. 크랜베리는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구이에 곁들여 먹는 매우 중요한 식품이었다. 농림부에서 아미트롤이라는 농약을 크랜베르리농장에 살포하도록 허용했다. 단, 수확이 끝난 뒤에 살포하라는 규정이 있었음에도 농부들이 이를 지키지 않았고 크랜베리에서 대량으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 1959년 추수감사절을 바로 앞두고 보건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크랜베리 판매를 전면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에서 추석 직전에 대추 판매를 전면 금지한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다양한 식탁은 대추의 부재를 참아낼 수 있지만 미국의 단순한 칠면조 요리는 다른 여지가 없었다. 여론이 들끓었다. 이어 열린 청문회에 참여한 카슨은 다음 책의 집필 콘셉트를 확실히 정한 듯했다. 

침묵하는 봄

1962년 마침내 <봄의 침묵>이 완성되었다.  어느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서 언제부턴가 봄이 되어도 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로 시작된다. 

책이 완성되자 출판사와 에이전시는  여론이 어떻게 반응할 지 매우 염려되었다. DDT 를 비롯 해 농약에 대해 심히 공격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농약 공격을 출발점으로 삼아 궁극적으로는 핵에 대한 비판으로 유도해 갔다. 출간을 앞두고 우선 내용을 압축시켜 세 번에 나누어 뉴요커 잡지에 연재했다.  반응이 대단했다. 뉴요커 잡지사에 독자 편지가 쇄도했다.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이었으나 카슨이 혹시 빨갱이 아니냐라고 욕하는 악플도 물론 있었다. 

정치계에서도 반응했다. 책이 릴리즈 되기도 전에 의회 농약 공청회에서 일부 구절이 낭독되고 케네디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카슨의 책을 언급하며 책에서 자극을 받아 현재 농약의 폐해에 대해 전면적으로 조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미국사회는 농약 등 화학약품의 폐해에 대한 토론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화학산업계에선 카슨에 대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농약 사용을 크게 장려했던 구 농림부 장관은 인신공격도 서슴치 않아 “제법 매력있는 여성이 독신으로 사는 걸 보면 빨갱이가 틀림없다.”라고 했다고도 한다.

이런 시끄러운 여론 덕에 1963년 CBS TV에서 <레이철 카슨의 침묵하는 봄>이란 타이틀로 르포를 내보냈으며 천 만명 이상이 이를 시청했다. 책 판매 부수가 하늘로 치솟았다. 의회에서는 농약금지법 제정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같은 해에 대통령 기술자문단에서 카슨의 경고가 옳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여 대세는 확실히 기울게 되었다.  결국  DDT 사용이 금지되었다.  

<봄의 침묵>은 백년 전에 출판되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비교되었다. 사회정치적 영향의 정도가 비교할 만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출판될 무렵, 노예해방이 이미 사회적 담론으로 정립된 시기였다면 카슨의 책은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을 혁신했다. 그 이전에 사람들은 환경보호 내지는 자연보호란 풍경이나 동식물을 보호하고 보전하는 것이라고 여겼다면 카슨으로 인해 이제는 생태계를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사람과 환경의 상호 종속관계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자연과 환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 것이다. 

레이철 카슨은 책이 출판되고 두 해가 지난 1964년 세상을 떠났다. 유방암을 앓고 있어 방사선 치료를 받던 중 바이러스 감염이 겹쳐 그만 회복하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동료와 함께 해양 생태계 조사 중인 레이철 카슨. 1952년. 출처:  National Digital Library of the United States Fish and Wildlife Service

독일의 반응

1963년 <봄의 침묵>이 독일어로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굼뜬 독일에서는 반응이 거의 없었다.  1968년 소위 말하는 68혁명과 함께 환경운동이 시작되며 비로소 반응이 나타났다. 지금은 독일 환경의식 정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자 중 하나로 <봄의 침묵>이 꼽힌다.

참고 문헌 


  • Carson, Rachel (1962): Silent Spring. Boston: Houghton Mifflin.
  • Murphy, Priscilla Coit (2007): What a book can do. The publication and reception of “Silent spring”. Amherst, Mass.: Univ. of Massachusetts Press (Studies in print culture and the history of the book).
  • Steiner, Dieter (2014): Rachel Carson. Pionierin der Ökologiebewegung. Eine Biographie. München: oekom Ver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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