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하우스 2015,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서양 정원사 해설
77-78쪽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존 하비John Harvey가 분석한 알 비루니al-Biruni가 남긴 1050년의 식물 목록을 통해 이슬람권 동부지역의 정원에서 어떤 식물들을 재배했는지 부분적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John Harvey’s analysis of al-Biruni’s list of plants of AD 1050 provides us with a limited idea of which plants may have been cultivated in the eastern Islamic gardens.((Harvey, John (1976): “Turkey as a Source of Garden Plants”, in: Garden History 4, No 3. pp. 30-41))
한 번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홉하우스 여사식 문장입니다. 번역이 그리 시원치 않게 되었으므로 원문을 함께 넣어 보았습니다. 뜻을 보면,
알 비루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양반이 1050년에 식물 목록을 하나 만들어 남겼다. 그것을 존 하비라는 사람이 나중에 분석했다. 그 덕에 11세기 이슬람권 동부, 터키나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어떤 정원 식물들이 재배되었었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가 됩니다. 매우 간단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이 떠오르지요.
존 하비는 누구고 알 비루니는 또 누구인가. 홉하우스 여사님은 아무 것도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누구나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도였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두 사람 모두 보편적으로 알려진 인물들은 아닙니다. 그리고 알 비루니가 작성하고 존 하비가 분석했다는 식물 목록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하시죠?
알 비루니Al-Biruni
알 비루니에 대해서는 여기 정리해 두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세 이슬람의 대학자였으며 그 유명한 의사 이븐 시나Avicenna와 동시대를 살았고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유럽에는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알려졌다고 합니다. 알 비루니의 전기를 읽다 보면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라는 책 제목이 저절로 떠 오릅니다. 장영실과 코드가 비슷했던 인물이었던 듯해요. 하늘과 땅의 이치를 이해하고자 평생을 바친 사람들. 열정이 너무 넘쳐서 여러 사람 분량의 삶을 살았던 인물들 중에 포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알 비루니가 어디에 식물 목록을 발표했는지 확인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는 약 146권의 책을 썼다는데 물론 다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영국의 존 하비라는 인물이 그 목록을 찾아서 분석했다니 무척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 고마운 분이 누구신가.
존 하비 John Harvey (1911-1997)는 영국에서 비교적 널리 알려진 건축사가입니다. 특히 중세 건축의 전문가로서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건축뿐 아니라 정원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서 Garden History 라는 잡지에 많은 글을 발표했습니다. 1976년에는 “터키 – 정원 식물의 보고 Turkey as a Source of Garden Plants”라는 20쪽 분량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중 10쪽이 식물 목록입니다. 홉하우스 여사님이 그 목록을 읽고 식물 이름을 모두 나열해 주었습니다. 78쪽에 열거되어있는 수많은 식물 이름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존 하비의 논문은 1976년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접하기 어렵습니다. 옛날 같으면 국립도서관에 가서 찾아보았겠지만 요즘은 편히 집에 앉아 JSTOR를 검색하면 됩니다. 해당 논문은 여기를 보시면 됩니다. 이 논문은 서양 정원의 역사 내지는 정원 식물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보물단지와 같습니다. 무료로 화면에서 읽을 수도 있고 세금 포함 9달러 상당의 비용을 지불하고 다운받을 수도 있지요. 내 경우 식물 목록만 장장 10쪽이므로 화면을 보면서 그걸 정리하면 눈병이 날 것이 뻔하고 무엇보다도 참고자료로 보유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과감히 9달러를 지불하고 다운 받았습니다. 여담인데 그동안 홉하우스 여사 덕에 구입한 책과 논문 비용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그건 그렇고,
논문의 후반부는 “1600년경 이란과 터키에서 재배되었던 식물” 목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목록을 만들기 위해 무진 고생을 한 듯합니다. 모두 다섯 건의 사료를 분석했답니다.
- 우선 알 비루니가 1050년에 집필한 의약서((Al-Btriuni’s book on pharmacy and materia medica, ed. with English translation by H. M. Said and R. E. Elahie, Karachi, Hamdard National Foundation, 1973, volume 1, pp. viii, 376+430 pp. (Arabic text), $30.00; Introduction, commentary and evaluation, by S. K. Hamarneh, volume 2, pp. 152, illus., $6.00.))를 참고로 했고요. (BIPR)
- 바부르 Babur (1483-1530)라는 모굴제국 황제의 자서전에 언급된 식물들. 바부르 황제는 정원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의 자서전은 “바부르나마 Baburnama“라고 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여기 가면 온라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B)
- 이븐 유수프 헤라트 (혹은 하바리, 1542 사망)라는 페르시아 의사가 1515년에 집필한 의약서. 이 책은 아직 영어로 번역이 되지 않았는데 존 하비님은 아랍어를 읽을 수 있었던 듯합니다. (I)
- 파리에서 1681년에 출간된 “페르시아 약물도감 Pharmacopoea Persica”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동의보감과 유사한 같은 것이지요. 라틴어로 출간된 438쪽의 두꺼운 책입니다. 이 책은 유럽의 여러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므로 스캔한 것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여기로. (P)
- 오스만 터키에서 1600년에 출간된 원예서 “레브나키 보스탄 (Revnak-i Bostan,아름다운 정원)”에 언급된 식물. 이 책은 이브라힘 이븐 알 하즈 메흐메트Ibrahim ibnu’l hac Mehmet라는 사람이 쓴 것입니다. 이 책은 터키에서만 알려진 듯합니다. 궁금하신 분은 여기로. (R)
알 비루니의 식물 목록은 한없이 깁니다. 1050년경에 이미 이렇게 많은 식물이 재배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네요. 요약하자면:
- 유실수:
아몬드, 사과, 살구, 바나나, 검은딸기나무, 체리Prunus avium, 모렐로 체리P. cerasus, 무화과, 포도, 대추Zizyphus jujuba, 뽕나무, 올리브, 오렌지, 자두, 테레빈 나무, 대추야자 , 석류
- 장미:
홑꽃과 겹꽃의 흰장미와 노란장미Rosa hemisphaerica, 짙은 붉은장미와 흑장미, 분홍장미, 그리고 사향장미R. moschata와 들장미
- 관상용 목본 식물:
흰재스민과 노란재스민(Jasminum officinale과 J. fruticans), 라벤더, 은매화, 루타, 버드나무, 플라타너스, 협죽도
- 꽃과 초본 식물:
아네모네Anemone coronaria, 카모마일Matricaria chamomilla L., 콜키쿰, 고수Coriandrum sativum, 쿠민Cuminum cyminum, 목향Inula helenium, 서양현호색玄胡索, 아욱Malva sylvestris, 스위트마조람, 마시멜로, 박하, 쑥, 수선화 종種, 양귀비, 개사철쑥, 백리향, 알렉산더스Smyrnium olusatrum, 아스파라거스Asparagus officinalis L., 병아리콩, 양배추, 당근, 샐러리, 오이, 부추, 렌즈콩, 순무 그리고 대마, 인디고, 잇꽃Carthamus tinctorius, 사프란Crocus sativus, 제비꽃, 성모백합
틈나는 대로 이 식물들에 대한 설명과 사진 자료를 정리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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