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예수의 탄신일 임을 상기하며

2018년 가을, 로마 여행 때의 일이다. 그날 반드시 찾아가고자 했던 성당이 하나 있었는데 찾기가 어려워 구글을 참고했더니 티베르 강변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했다.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종일 걸었던 터라 다리가 아파 실례를 무릅쓰고 어느 건물 문턱에 주저 앉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건물이 Santo spirito hospital 이었다. 제대로 찾아 앉은 것이다.

결국 버스가 오지 않아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걸음 걷다 보니 병원 건물 한구석에 걸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좀 섬뜩해지는 형상이었다. 손을 내밀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다가가서 보니 사람이 아니고 청동상이었다. 손등에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이 제법 컸다. 혹시 예수님?

예수님이 바닥에 앉아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형상인데 청동잔 하나와 청동 접시 하나가 옆에 놓여 있었다. 청동기 시대의 예수님인 모양이었다. 주변이 지저분했다. 휴지도 있고 담배꽁초도 있고 모래 알갱이도 굴러다녔다. 휴지와 담배꽁초를 치우고 사진을 찍었다.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기에 읽어보니 “When I was hungry & thirsty”라는 제목과 Timothy Schmalz라는 작가의 이름이 새겨있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의 작품을 또 만났다. 헤매고 헤매다 마침내 성당에 도착했을 때 그 앞 벤치에 걸인이 한 명 누워있었다. 이 역시 수상쩍어서 자세히 보니 청동상이었다. 거적을 뒤집어써서 모습은 안 보이는데 거적 밖으로 나와 있는 발등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 또 예수님? 어느새 여기에 와서 누워 계시네! 벤치 아래 안내판이 있기에 보았더니 역시 티모시 슈말츠의 작품이었으며 제목은 “Homeless Jesus“였다.

그 날 하루에 충격적인 예수님 형상을 두 번이나 만나고 나니 기분이 영 이상했다. 교회엔 더 이상 다니지 않지만 예수님은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런데 동냥을 하거나 벤치에 노숙자가 되어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말았으니……

하긴 따지고 보면 예수님은 늘 가엾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지난 2천 년 동안 줄곧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제 그만 십자가에서 내려드리면 어떻겠냐고 독일 친구들과 여러 번 토론했었다. 모두들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 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눈치였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으나 아직 아무에게서도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기독교의 상징이 십자가인데 그걸 없애라는 것은 곧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 이들 실증주의자의 논리다. 십자가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 내려 드리고 빈 십자가를 보면 안 될까? 안 된다고 한다.

상징을 내용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어려워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닐까, 그런 의심도 든다. 사람이니까 형상이 있고 우리와 같은 모습이니 믿기 수월할 것이다. 이들이 이룩한 건축 문화와 어마어마한 예술 작품들을 보면 이들에게 형상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늘 옆에 두고 보아야 비로소 착하게 살 수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많다. 기 또는 우주의 섭리 등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더 잘 믿는 우리들과는 정말 다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홈리스 예수” 상을 하나 구해 교황 집무실 옆에 두었다고 한다. 교황이 이따금 홈리스 예수에게 가서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작가는 예수님 발치에 누구라도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넉넉히 남겨 두었다. 무슨 얘기가 오갈까. 두 분이 대화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할 이야기가 무척 많을 것이다. 두 분이 의기투합하면 뭔가 좀 되지 않을까?

성탄절이 다가오니 문득 구걸하던 예수와 노숙자 예수가 떠올라 이 글을 쓴다. 4주 전부터 성탄절 무드에 들어가 성탄절 이야기를 읽고 성탄절 영화를 보고 성탄절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가 “잠깐, 성탄절이 선물 주고받는 날이 아니라 원래는 이 분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 아마?” 라는 깨달음이 왔다. 저런. 그런데 갓 태어나 말먹이통에 누운 아기 예수보다는 왜 하필 주리고 목마른 예수, 노숙자가 되어 벤치에 누운 어른 예수가 떠 오르는 걸까.


내가 주리고 목마를 때

마태복음 25장 35절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가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티모시 슈말츠는 캐나다 작가인데 작품이 완성된 후 로마에 일이 있어 갔다가 병원장에게 작품의 모형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구입하여 이렇게 구석에 앉혀 두었다.

사진: JEONGHI GO

홈리스 예수

이 홈리스 예수가 티모시 슈말츠의 대표작이다. 전 세계 수십 곳에 ‘누워’ 계시다.

바티칸 시티, 더블린, 스페인 마드리드, 헝가리, 이스라엘, 영국 멘체스터, 벨기에 두 곳, 스코틀랜드 글라스고, 뉴욕, 원싱턴 D.C., 싱가포르,

작가: Timothy Schmalz, Homless Jesus,

위치: Chiesa Sant’Egidio, Trastevere, Roma.

사진: JEONGHI GO

바티칸 시티 교황청에 설치된 홈리스 예수에 대한 영상 자료.

‘Homeless Jesus:’ the new statue installed in the Vatican, 2016.

© 써드스페이스 블로거진/고정희 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