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장난

파사우에서 생긴 일

1984년 1월 7일

파사우는 오스트리아 국경, 알프스 발밑에 있는 독일 도시이다. 알프스에서 발원한 세 개의 강, 도나우, 인, 일츠 강이 만나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강가에 살았고 아이들은 늘 강가에서 놀았다. 여름에는 물놀이하고 겨울엔 얼음지치기하며 놀았다.

1894년 1월 7일, 몹시 추운 날이었다. 네 살배기 소년 요한은 그날도 얼음을 지칠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그때 먼저 나와 놀고 있던 이웃집 소년이 얼음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얼음이 깨진 것 같았다. 이웃 소년도 네 살배기였다. 요한은 얼른 달려가서 죽을 힘을 다해 이웃 소년을 끌어냈다. 같이 얼음물에 빠져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사건은 파사우 신문에 크게 실렸다.

“지난 일요일 소년 하나가 익사하기 직전,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강의 살얼음이 생긴 곳에서 놀다가 얼음이 깨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용감한 동무가 구해줬다.”

도나우 차이퉁 1894.1.9.

용감한 소년 요한은 종교음악을 공부한 뒤 신부가 되었다. 그때 구해준 다른 소년 이름은 아돌프였다. 그는 커서 히틀러가 되었다.

요한은 평생 정신적 고통 속에 살았다. 그때 아돌프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그때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도 있었다. 네 살배기 아이로는 당연한 행동일 것이다. 또는 집으로 뛰어가 어른들을 부를 수도 있었다. 그 사이에 아이가 죽었을 것이다. 요한은 앞뒤 가리지 않고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그의 본능은 남을 돕고 구하는 것이었다. 그때 아돌프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훗날 어른이 된 히틀러가 인류에게 행한 그 끔찍한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한편 아돌프가 죽었더라도 요한은 평생 또 다른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친구를 구하지 않았다는 죄의식에 시달렸을 것이다. 히틀러의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요한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고 친구를 구하지 않아 죽게 했다는 사실만 남았을 것이다.

이래저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대답이 없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며 평생을 살아야 했으니 참 가여운 사람이었다. 신의 장난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어떤 큰 섭리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얄궂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왼쪽. 신부가 된 요한. 오른쪽 아돌프 히틀러의 어린 시절.

© 써드스페이스 블로거진/고정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