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예술의 신 아폴론은 에로스의 활쏘기 실력을 비웃었다. 그 작은 화살로 뭘 맞출 수 있는데? 자존심 상한 에로스는 아폴론에게 사랑의 황금 화살을, 요정 다프네에게는 사랑을 거부하게 만드는 납 화살을 쏘았다. 황금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다프네를 보고 첫눈에 반해 따라다녔다. 하지만 납 화살을 맞은 다프네는 아폴론에게 극심한 혐오감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아폴론이 거의 다프네를 붙잡으려는 순간,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던 다프네는 자기 아버지, 강물의 신 페네오스에게 모습을 바꾸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다프네의 몸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아름답던 피부는 나무껍질로 덮였고, 발은 뿌리로, 머리카락은 나뭇잎으로, 팔은 가지로 변했다. 나무로 변신한 것이다. 사람들은 후일 그 나무를 월계수라 부르게 된다. 아폴론은 슬퍼하며 나무를 끌어안고 “너는 영원한 내 나무”라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다프네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월계수 잎으로 승리의 관(월계관)을 만들어 썼다. 이제 다프네-월계수는 아폴로의 신성한 나무가 되었고 시인과 승리자의 관이 되었으며 영광과 예술의 상징이 되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20세기에 와서 페미니즘에 의해 이 ‘신성한’ 이야기가 갈기갈기 찢긴다. 1960년대에 여성 작가들이 아폴론의 사랑을 성폭력으로 정의하고 다프네가 박탈당한 ‘거부할 권리’를 애도했다. 딸이 나무껍질에 갇혀 말을 잃었다고 해석하는 심리학자도 있었다. 단단한 나무껍질 속에 딸을 가둬버린 아버지 역시 혐의를 벗지 못한 것이다. 다프네가 아버지에게 간청한 내용을 직역하자면 ‘나를 변신시켜 이 모습을 없애 달라’, 즉 나의 아름다움을 없애 달라는 뜻이었다. 아버지로서 차마 딸의 아름다움을 추하게 만들 수 없어 나무로 변신시킨 것일까?
가해자 아폴로를 벌주지 않고 피해자를 벌주는 못된 이야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아폴로는 제우스의 아들로 어마어마하게 막강한 신이다. 강의 신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의 위계, 힘의 섭리로 볼 때 강의 신은 딸을 변신시킬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 필자처럼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월계수로 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월계수처럼 향기로운 나무로 변할 수 있다면.
진테니스의 해석

<Daphne>, Renée Sintenis 1917년 작. 청동. 29.2cm ©LUDORFF
그런데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다프네 신화를 다르게 해석하기 훨씬 전, 1917년에 조각가 르네 진테니스Renée Sintenis가 빚은 다프네 상이 하나 있다. 이 조각상은 우리에게 다프네 이야기를 다르게 들려준다. 진테니스 자신이 사춘기 소녀 시절 다프네와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방 유지였던 아버지는 신사들을 자주 집으로 초대해서 딸을 선보였다. 르네는 키가 훌쩍 컸고 깡말랐었다. 그리고 어여쁜 소녀라기 보다는 미소년 같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손님들의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다. 저들 중 누구와 결혼해야 한다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어서 더 커서 하늘까지 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아무도 자기를 바라보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조용히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러나 중성적 매력이 넘쳤던 르네 진테니스는 나중에 베를린 예술계의 스타가 된다.
그 큰 키 속에 한없이 섬세하고 여린 감성이 숨어 있었다. 그녀의 다프네 상은 바로 그런 그녀 내면의 자화상이다. 머리카락만 월계수 잎으로 변했고 온전한 몸은 하늘을 향해 가늘고 길게 뻗어 있다. 약간 굽힌 무릎과 살짝 들어 올린 뒤꿈치에는 도약하기 직전의 긴장감이 어려있다.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욕망과 힘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는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은 진테니스의 영혼이다.
향기로운 거절
잎만 변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월계수 잎은 향기의 원천이다. 잎을 세게 문지르거나 부스러뜨리면 말도 못 하게 고귀하고 신선한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그래서 고급 요리의 향신료로 쓰인다. 아폴로는 다프네를 소유하려 했지만 끌어안은 건 단단한 나무이고 다프네는 향이 되어 그의 품을 벗어난다.
월계관은 승리의 상징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진테니스의 다프네를 통해 우리는 월계수의 진정한 의미를 만난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낸 고결한 거절이며 영혼의 향기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월계수는 참으로 기묘한 나무다. 그 잎은 짙고 푸르지만, 가만히 두면 아무런 향기도 내지 않는다. 타인에 의해 꺾이고 상처 입는 순간에야 비로소 숨겨두었던 고결한 향을 세상에 내보낸다. 이는 마치 세상의 시선에 상처 입으면서도 끝내 자신의 영혼을 예술로 빚어낸 르네 진테니스의 삶과 같다. 예술은 향기와 같아서 누구라도 만끽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소유할 수 없다.
월계수 Laurus nobilis
월계수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식물종으로, 주로 약용 식물 및 향신료로 사용된다.
베를린 식물원 내 약용 식물원에서 화분에 담아 기르고 있는 월계수(Laurus nobilis). © 고정희
식물학적 특징
- 상록관목 또는 교목으로, 서식 조건이 좋으면 높이 10m 이상까지 자랄 수 있다.
- 잎은 타원형 또는 피침형이며 좁고 긴 편이다. 길이는 5~12cm. 어긋나게 달린다. 가죽질이며 광택이 난다. 잎을 부러뜨리거나 강하게 문지르면 고귀한(nobilis) 향이 난다.
- 꽃과 열매: 꽃은 작고 황록색 또는 흰색으로 4~5월에 피는데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검은 열매가 달린다.
- 원산지 및 분포: 지중해 연안(모로코, 알제리, 이탈리아, 터키 등)이 원산지이며, 온난한 기후 지역에서는 야외에서 연중 재배가 가능하지만 중북부 유럽 등지에서는 화분 식물로 키우는 것이 안전하다.
성분 및 용도
- 오일 성분: 잎에는 1.3%의 에센셜 오일이 포함되어 있는데 주요 성분은 시네올(45%), 테르펜, 메틸유제놀 등이다. 열매에도 에센셜 오일과 지방유가 함유되어 있다.
- 향신료: 잎의 향은 수프, 스튜, 고기 요리, 생선 요리 등에 잘 어울린다. 프랑스 요리에서는 ‘부케 가르니bouquet garni‘의 필수 재료이다.
약용 및 기타 용도
- 열매에서 추출한 오일은 타박상, 염좌, 류머티즘 통증 완화에 사용된다.
- 알레포 비누 등 피부 관리 용 세정 제품의 성분으로 유명하다.
- 과거에는 살충제나 기생충 구제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 월계수 잎을 태우면 심리적 안정 효과가 있다고도 알려져 있다.
정원 식물로의 의미
요즘 베를린 도시 풍경을 잠식하고 있는 가짜 월계수. (Umberullaria californica) © 고정희
- 썩 눈에 드는 장식성이 높은 나무는 아니지만 진한 녹색의 길쭉한 잎이 반들거려 나름대로 매력있다. 화분에 넣어 기르다가 겨울에 실내에 넣어 두면 여러 해 동안 제법 크게 키울 수 있다. 잎에서 발하는 오일 성분 덕으로 병해충이 적고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관리 품이 적게 든다.
- 최근에 캘리포니아 월계수라는 이름의 가짜 월계수Umbellularia californica가 독일 도시 조경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건축가들이 선호하여 펜스 녹화용 생나무 울타리 등으로 자주 쓴다. 아무 관리 없이 사철 싱싱하게 잘 자라고 기후변화에도 적응을 잘하며 성장도 빠른 고마운 나무이긴 하지만 빠르게 도시를 장악하고 있어 우려의 대상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