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안데스 산맥의 도시 우라라스에서 농사를 지으며 등반 가이드로도 일하는 사울 루치아노 리우야Saúl Luciano Lliuya 씨가 독일 최대 에너지 사 RWE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은 독일 법정에서 벌어졌으며 의외로 성공적인 결과를 내어 화제가 되었다. 모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도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페루의 농부가 독일 최대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다시금 독일 환경과 법치사회의 승리이기도 하다.

페루의 산간 도시, 후아라스의 농부가 어떻게 독일 최대 에너지 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었을까.

배후에는 독일 환경보호 협회 저먼 워치가 있었고 함부르크의 열혈 변호사가 거들고 있다. 실은 저먼 워치가 리우야 씨를 앞세워 소송을 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야기는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저먼 워치 대표가 페루 리마에서 개최된 유엔 세계 기후 회의에 참석했었다. 회의 뒤에 그는 안데스 산맥을 여행하던 중 후아라스 시의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리우야 씨는 평소에 등반 가이드를 하며 온난화로 인해 산 정상의 만년설이 녹는 것을 관찰했다고 했다.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게 되면 산의 호수가 넘치게 될 것이고 주변에 사는 주민 십 이만 명이 위협을 받게 된다. 리우야 씨는 환경보호를 위해 개인적으로 6000 유로 정도를 투자하기까지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2014년 저먼 워치의 대표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의 도움으로 소송에 참여할 것에 동의했고 변호사도 소개를 받았다. 독일 환경보호자들은 “이번 사건이 인류 복지를 위한 선례가 될 것이다.”라며 기대에 차 있다. 독일 에너지사 RWE를 대상으로 소송을 건 이유는 간단하다. RWE는 독일 최대 에너지 사로서 연간 1억 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내보낸다. 배출량으로 보면 유럽 둘째다. 페루에서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RWE사에서 창사 이후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전 세계의 하늘로 번져 결국 페루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을 녹이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RWE 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0.47%.

홍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리우야씨가 개인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 약 17,000 유로라고 한다. 그중 0,47 퍼센트를 RWE가 물어야 한다는 것이 소송의 요지다. 이에 대한 증거 자료는 “Carbon Majors 보고서“이다. 전 세계 굴지의 에너지 산업 중 배출량이 많은 순서로 90개의 업체에 관해 각각 배출량과 배출 비율을 분석한 연구 보고서로서 2013년 호주 정부에서 의뢰했으며 그 사이 두 차례에 걸쳐 업데이트 되었다. 이 보고서는 기후 변화 연구를 위해 매우 중요한 데이터로 인정되고 있다.

법정에서 변호사와 함께 서류를 살피는 리우야 씨. Source: dw.com

RWE 본사가 독일 에센에 있기 때문에 에센에서 첫 재판이 열렸다. 함부르크 출신 변호사 로다 페어하이엔 씨는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을 즐겨 맡는다. 이번 사건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가 내세운 법적 근거는 독일 민법 제 1004조. 모든 토지 소유자는 제3자가 끼치는 부정적 영향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조항이다. 독일 민법이지만 독일 국민에 한 한다는 항목이 없다. 이와 유사한 법 조항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약 50개라고 한다. 이번에 선례를 남기면 같은 조항을 가지고 있는 다른 50개 국가에서도 향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가 큰 재판이다.

RWE 측에서는 물론 같은 이유에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지불해야 하는 배상금의 액수는 적지만 금액이 문제가 아니다. RWE 대변인은 “우리가 배상금을 지불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거절 이유를 밝혔다. 사전 합의도 거절했다. 합의 역시 선례를 남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에센 법정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나 변호사는 항소했고 고등법원에서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위의 Carbon Majors Study를 증거로 채택하면서 소송이 성립되었다. 이에 환경 보호 협회 당사자들도 놀랐다고 한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최소한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아직 재판이 끝난 것은 아니다. 페루 우아라스 시에 가서 얼음이 녹아 홍수의 위험이 있다는 사실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아직은 증거 수집에 대한 페루 정부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먼 워치와 RWE 사이에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RWE가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RWE의 입장에서도 이번 소송이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이미지 쇄신을 위해 2040년까지는 탄소 중립의 목표에 도달하겠다고 홍보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 한 편 책임을 계속 회피하고 있으므로 언론과 환경 단체, 녹색당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번 소송 건은 2019년 말에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세계 기후 회의에서 소개되어 큰 호응을 얻어냈다. 리우야 씨의 승소 여부에 따라 향후 기후 변화 정책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출처:

  • Agentur für Erneuerbare Energien e.V. (AEE)
  • D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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