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칼 푀르스터 기일에 부쳐

칼 푀르스터는 정원을 설명할 때 종종 음악에 비유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정원은 오케스트라다. 하프의 맑은 선율이 없으면 너무 무겁고, 팀파니의 깊은 울림이 없으면 너무 가볍다. 둘이 만나야 비로소 교향곡이 된다.”

그가 말한 하프는 바람과 함께 미세하게 떨리는 그라스와 가늘고 긴 숙근초를 뜻했고, 팀파니는 계절의 중심을 잡아주는 힘 있는 다년초, 그중에서도 잎이 둥글거나 넓은 것을 의미했다. 이 둘의 대비는 정원이 살아 움직이는 리듬을 만드는 기본 구조였다. 푀르스터의 식물 철학에서 “하프와 팀파니Harfe und Pauke”는 시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실제 식재 전략의 핵심이었다.

실비아 클루게의 독창적 해석: 여성으로 변신한 팀파니

1985년, 독일연방정원박람회(BUGA)를 맞아 브리츠 공원에 조성된 칼 푀르스터 정원에는 그의 비유를 조형적으로 번역한 작품 하나가 놓인다. 베를린 출신의 여성 조각가 실비아 클루게(Silvia Kluge, 1944–)가 만든 “파우켄하르페Paukenharfe”다. 푀르스터가 말한 하프와 팀파니의 순서를 바꾸고 둘을 묶어버림으로써 그 의미도 살짝 변했다. 마치 “파우케의 하프”처럼 들린다. 독일 여성 이름에 프라우케, 하이케 등 ‘케’로 끝나는 것이 많다. 아마도 여기서 착안하여 팀파니를 나타내는 독일어 ‘파우케’를 여인으로 의인화한 듯하다. 기발한 발상이다. 

인조석으로 만든, 다소 풍만한 여성 ‘파우케’가 정원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 다리를 꼬고 있는 형상이다. 굵고 짧은 다리, 자그마한 발이 인상적이다. 가슴 위에는 원형의 금속 악기가 올려져 있어 하프이면서도 북을 떠올리게 한다. 그 여인은 마치 숙근초 정원 한가운데서 자신만의 깊은 음을 연주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정원을 디자인한 크리스티안 마이어Christian Meyer는 그 주변에 Alchemilla mollis를 심었다. 그의 유머 감각이다. 독일에서는 이 숙근초를 ‘여인의 외투’라고 부른다. 파우케가 외투를 벗어 펼치놓고 그 위에 누워있는 것 같다. 

클루게는 푀르스터의 상징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 그가 말한 식물의 ‘감각성’을 신체적·여성적 이미지로 전환했다.
여성이 곧 Pauke가 되고, 그녀가 안고 있는 금속의 둥근 악기는 Harfe와 Pauke를 동시에 암시한다.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풀과, 계절을 울리는 초본의 리듬이 인간의 몸짓과 겹쳐지는 순간이다.

 

감각의 정원

푸른 초본과 그라스가 둘러싼 공간 속에 누워 있는 이 조각을 보고 있으면, 푀르스터가 평생 강조했던 “정원은 감각의 예술”이라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정원은 식물의 배열이나 조합만으로 만들어지는 장소가 아니다. 거기에는 빛의 움직임, 계절의 호흡,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울림이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클루게의 해석은 의외이지만 매우 푀르스터적이다. 파우케를 여성의 신체로 해석함으로써, 그녀는 정원에 깃들어 있는 감정과 더불어  천연스레 관능을 드러냈다. 
여인의 가슴 위에 놓인 원형의 금속 악기는 식물 세계에서 들려오는 보이지 않는 진동을 상징한다. 바람이 불면 울릴까? 정원 안에서만 완성되는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이는 푀르스터의 사유와 놀라운 합을 이룬다.

오케스트라로서의 정원을 다시 듣는 날

11월 27일, 푀르스터가 세상을 떠난 날. 비록 지난 해 나치와의 연루 건으로 비판대에 오르긴 했지만 정원철학자로, 식물해설가로서의 그의 의미는 아직 아무도 따를 자가 없다. 그의 정원과 그의 문장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복합적인 질문을 던진다.

브리츠 공원에 누워 있는 여인 파우케를 떠 올리며 오늘은 그저 정원이 어떤 음악을 연주하는지 그에만 귀기울이고 싶다. 
어떤 식물이 하프가 되고, 무엇이 팀파니가 되어 깊은 울림을 만들까?

11월 27일 늦가을에는 어느 정원을 막론하고 하프가 단연 주도한다. 크고 작은 팀파니는 이제 울리다 지쳐 피곤한 듯 늘어져 있다.

정원은 이제 하프의 고운 선율을 연주하며 우아하게 가을을 떠나 보내려는가? 

칼 푀르스터 정원의 늦가을. 그라스들이 하프처럼 우아하게 서 있고 겨울아스터가 아직도 피어있다.

칼 푀르스터 기일에 보는 그의 정원. 그라스들이 하프처럼 우아하게 서 있다. 여기서 겨울아스터라 부르는 Chrysanthemum indicum이 이제 자신의 시즌이 왔음을 알린다. ©Jeonghi Go

© 고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