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섬 공원 해부하기

코로나 봉쇄로 인해 오래 우정섬에 못갔다. 지난 한 해 우점섬 공원 관리소에서도 문을 열었다 닫았다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본래 행사가 자주 열리는데 이 역시 모두 취소되었다. 지난 연말 봉쇄가 강화되어 15km 반경을 떠나면 안된다기에 11월에 다녀온 후 못갔었다. 대체 어디를 기준으로 15km인가. 설왕설래하다가 ‘시 경계’로부터 15km라고 발표되었다. 그렇다면 우정섬 뿐 아니라 칼 푀르스터 정원에도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우정섬은 베를린을 벗어나면 바로 나타나는 곳이다. 지난 금요일, 1월이 가기 전에 다녀왔다.

1월의 우정섬 정원은 작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겨울재스민, 겨울바람꽃, 크리스마스로즈들의 웅성거림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없는 곳에서 신나게 재잘거리는 겨울새들의 웅성거림이었다. 물새, 비둘기, 유럽까치들이 산책을 나와 점잖게 걸어다녔다. 그들과 나란히 걷고 싶었지만 다가가니 날아가 버렸다. 그라스정원을 청소하는 정원사, 자작나무에 매달려 목죄기에 여념없는 아이비를 잘라주는 정원사. 버드나무 가지를 정돈하는 정원사. 이런 정원사들의 하얀 입김서린 웅성거림도 있었다.

골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팔을 넓게 벌린 채 서 있는 큰나무들이 유난히 눈에 띄는 계절. 1월의 정원은, 정원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는 계절이다. 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정원의 해부학‘이라는 말이 떠 올랐다. 그 말 그대로 이번 금요일의 정원산책은 정원을 즐기기 위한 산책이 아니라 정원을 해부하려는 의도를 가진 못된 행보였다. 정원이 뼈대있는 정원인지 아닌지, 즉 제대로 만들어진 정원인지 아닌지 알고자 하면 겨울에 가봐야 한다.

우정섬이 정원의 끝판왕인 이유

우정섬을 처음 둘러 본 어느 동료가 이건 “정원의 끝판왕인데요” 했던 것 같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해부의의 시선으로 아무리 날카롭게 지켜보아도 그 시선을 끄덕없이 견뎌낸다. 이 정원이 끝판왕이 될 수 있던 것은 우선 기초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처음 정원을 조성할 때 설계도 출중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부단히 가꾸어 기초를 단단히 다졌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마구 뜯어 고치지 않고 초심을 유지했다. 1937년에 헤르만 마테른이 설계하고 이후 그의 후배 발터 풍케와 헤르만 괴리츠가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에 여러 차례 보완했지만 싹 뜯어 고친 것이 아니라 최초의 개념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1980년대에 우정섬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에는 고치고 싶어도 고칠 수 없는 상황이다. 이후 이곳의 관리책임자는 스스로를 섬정원사Inselgärtner라 부르며 겸허하게 정원과 정원의 아이디어를 지켜냈다. 지금 섬정원사 3대, 토랄프 괴치가 책임을 맡았다. 그는 포츠담 토박이로서 우정섬에서 정원사 훈련을 받은 뒤 드레스덴 공대 조경학과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 토포스라는 설계사무소에 특채되었다. 2001년도 포츠담 부가 개최를 위해 우점섬 리모델링 설계를 의뢰받은 회사여서 우정섬에서 뼈가 굵은 괴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우점섬 복원 설계의 큰 부분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 깊은 인연으로 8년 전 2대 섬정원사가 은퇴할 때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도 그의 전임들처럼 여기서 은퇴할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물적용학의 정석에 따라 조성된 정원

3월부터 시작하는 식물적용학 강좌에서 우점섬을 낱낱이 해부할 예정이다. 이에는 출중한 조경가들이 설계하고 가꾼 정원의 끝판왕이라는 점 외에도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이 정원은 처음부터 칼 푀르스터가 주창한 시범 정원 또는 전시정원의 개념에 따라 조성되었다. 시범정원이란 전문가뿐 아니라 학생, 일반 정원애호가 모두 식물을 보고 연구하고 식물이 어떤 방식으로 ‘조합’되어 아름다운 공간을 이루는지 배워갈 수 있는 정원을 말한다. 우정섬은 칼 푀르스터의 개념에 따라 유럽 전체에 조성된 일련의 시범정원 중 제1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적용학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과 맞물려가며 정석에 따라 조성되었고 그 기본 개념에 부합하도록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장미원, 숙근초원, 아이리스 정원, 작약원, 그늘식물원, 암석정원, 황야정원(내건성 식물), 그라스정원, 관엽정원 등으로 구역을 나누었으며 특히 숙근초 조합의 교과서를 그대로 정원으로 옮겨놓은 헤르만 괴리츠 정원이 압권이다.

물론 세월이 흐르며 식물적용학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칼 푀르스터 계열의 클래식한 방법론에서 벗어나 지금은 합리적인 뉴저먼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뉴저먼스타일은 전혀 새로운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클래식을 현대의 요구에 맞게 적응한 방식이다. 일단 기초가 있어야 응용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최신 경향을 공부하기 이전에 우정섬의 클래식을 해부하기로 한 것이다.

우정섬 공원의 콘셉트와 구성은 별도 자료 참고 바람.

[고정희]

괴리츠 정원. 식재 디자인의 교과서급. 겨울에도 꽉 찬 느낌을 주는데 봄이 오면 사이사이에서 숙근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 Jeonghi Go

우정섬의 1월 갤러리


© 3.SPACE MAGAZINE/정원의 해부학/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