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공작 달력 6월력. ©Photo. R.M.N. / R.-G. OjŽda

지난 5월에 보았던 파리의 시테섬 궁전 Palais de la Cité이 다시 나타났다. 듣자니 베리 공작의 거처에서 시테섬 궁전을 바라보며 그린 것이라고 한다. 지난 달에는 숲 너머로 궁전의 파란 탑과 지붕이 조금 엿보였다면 이젠 정면으로 성 전체를 바라보게 되었다.  베리 공작의 파리 거처였던 Hôtel de Nesle 역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루멕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들에서 농부들이 꼴을 베고 있는 모습니다. 꼴 베는 농부들 치고는 입성이 깨끗하고 세련되었다. 이미 벤 곳은 풀밭이 연두색이고 아직 베지 않은 곳은 짙은 녹색인데 남자들이 베고 나면 여인들이 긁어모아 짚단을 쌓는 방식으로 분업을 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파리에서 한 복판에서 농부들이 풀을 벤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Rumex obtusifolius. 사진: Frank Ensinger

꼴 베는 시기가 6월이 적절한지 알아보니 원칙적으로는 맞는데 요샌 기후 변화로 기온이 높아져 5월부터 시작한단다. 5월이든 6월이든 그보다 중요한 것은 풀밭에 지천으로 자라는 루멕스 Rumex라는 ‘채소’가 여물기 전에 베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루멕스는 수영속 식물로서 여린 순을 뜯어 된장국 끓여 먹으면 좋은데 된장국의 맛을 모르는 안스러운 유럽사람들은 생으로 샐러드에 넣어 먹는다. 더러 데쳐서 생크림에 비벼 먹기도 한다. 루멕스 잎에  옥살산이 제법 많이 포함되어 있어 사료로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들에서 풀을 뜯을 때면 가축들이 알아서 루멕스는 먹지 않고 피해간다. 대개는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캐 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뜯어가고 나면 그제야 꼴을 베었다고 하는데 요즘엔 물론 들에 나가 루멕스를 뜯어가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일찍 일찍 풀을 베야 한다는 소식이다.

강가 폴라드버드나무

강변에 나란히 서 있는 버드나무의 형상이 특이한데 이는 그림을 잘 못 그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폴라드버드나무(영: pollard willows; 독: Kopfweide; 불: arbre têtard)를그린 것이다. 유럽 시골 강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나무다. 버드나무 가지의 쓰임새가 커서 3년 내지는 10년 터울로 가지를 모조리 잘라 썼기 때문에 기둥만 남게 되었는데 기둥의 꼭대기 부분이 머리통처럼 굵어진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머리통버드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찌보면 커다란 주먹같기도 하다. 

반 고흐가 그린 그림이 여러 점 전해진다.

요즘은 버드나무가지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자연보호의 차원에서 특정 하천변의 폴라드버드나무의 가지를 의도적으로 잘라주어 형상을 유지하기도 한다. 폴라드버드나무에 즐겨 서식하는 올빼미, 박쥐 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른 봄 일찍 나온 버들강아지는 벌의 중요한 먹이가 된다. 한때 폴라드버드나무로 썼던 것을 15년 내지 20년 이상 잘라주지 않으면 가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기둥이 갈라져 버리는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계속 잘라주기도 한다. (고정희)

Vincent van Gogh, Pollard Willow, 1882. 개인소장. Public Domain
반 고흐, 폴라드버드나무 가로수길과 빗질하는 남자. 1881년. 연필, 잉크 스케치. Public Domain
베를린 브리츠공원의 양서류 계류 변 3월. 깨끗하게 이발한 버드나무들. 양서류 최적의 서식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 수면에 그림자가 지는 것을 방지한다. 사진 출처: Berlin George

큰낫

농부들의 큰낫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농부들은 작은 낫으로 풀을 베노라면 허리가 휘어졌을 텐데 유럽 농부들은 서서 낫질을 한다. 대가 매우 길고 그에 맞추어 날도 매우 크다. 농부들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 큰낫을 휘두르며 진압군에 저항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림 속 농부들은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잔디기계가 발명되기 전에는 정원 잔디밭도 바로 이런 낫으로 잘라 주었다.

1738년 영국 풍경정원 움직임이 시작될 무렵 발타자르 니봇이라는 이름의 화가가 정원 장면을 세밀히 포착한 그림이 여덟 점 전해지는데 정원사들의 작업 장면을 함께 그려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아래 그림이 그중 하나인데 큰 낫으로 잔디를 깎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잡혔다. 이 정원은 바로크 풍을 벗어나는 중인 듯한데 십 여년 뒤 1750년 랜셀롯 브라운이 나타나 모조리 풍경식으로 바꾸게 된다.  

하트웰하우스. 정원사들이 낫으로 잔디를 깎고 있는 장면. 정원은 바로크에서 풍경식으로 전이하는 중인 것 같다. 1738년.
Nebot, Balthasar; The North West Woodlands with Gardeners Scything, Hartwell House, Buckinghamshire; Buckinghamshire County Museum; http://www.artuk.org/artworks/the-north-west-woodlands-with-gardeners-scything-hartwell-house-buckinghamshire-26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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