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헤르만 괴링이?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는 기분이 이런걸까. 독일 자연보호의 역사를 조사하다 나치스를 만났다. 늘 이런 식이다. 좀 잊을 만하다 싶었는데 번쩍 헤르만 괴링이 나타났다.
사연인즉, 현행 독일연방 자연보호법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국 자연보호법을 1935년 의회에서 밀어붙인 인물이 바로 헤르만 괴링이었단다. 뭐 이런 경우가. 해도 너무한다 정말. 써드스페이스의 문을 닫아야 하나? 여태 독일 자연보호법에 의거한 환경정책 정보를 전달해 오지 않았던가?
일단 충격에서 벗어난 뒤 마음을 가다듬고 자초지종을 알아보았다. 알고 보니 괴링이 자연보호법을 직접 만든 것은 아니었다. 좀 다행이다 싶다. 그럼 그렇겠지. 그 곰단지가 어떻게.
1930년경 제국의 통일된 자연보호법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자연보호는 이상하게도 문교부 소관이었다. 그런데 법무부에서 자연보호법 초안을 만들어 내각에서 의결에 붙이고자 했다. 문교부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되었다. 이를 지켜본 괴링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저것도 내가 챙겨야지.
나치스의 악마 제 2호 헤르만 괴링은 엄청난 권력욕, 명예욕, 탐욕의 소유자였고 수렵광이었다. 오래오래 사냥을 즐겨야 하니 사냥감들이 오래 살고 많이 번식해야 했다. 그러기위해 <보호>해야 했다. 사냥감들이 서식하는 숲도 보호해야 했다. 괴링은 잽싸게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제국산림본부를 만들고 자신을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제국수렵본부도 만들어 그 본부장도 했다(괴링은 산림부, 수렵부를 포함 모두 22개의 부서와 기관의 장이었으며 월급을 모두 받아 챙겼다). 그리고 내각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자연보호법은 앞으로 산림본부 소관이다. 그리들 알아라. 그리고 당시 국립천연기념물 보호소((이 기관이 발전을 거듭하여 현 독일 연방 자연보호 연구원이 되었다.)) 소장이었던 한스 클로제에게 법안을 다시 만들라고 명령했다. 클로제가 법안을 만들고 이를 괴링이 내각에서 그대로 밀어붙였다.
2차 대전 후 당연히 법의 효력에 대한 논란이 따랐다. 법 자체는 전문前文과 사유지 몰수에 관한 조항을 제외한다면 나치의 이념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판단이었다. 그뿐 당시 국제적으로 최고의 수준이었고 시대를 앞섰으며 지금까지도 유효한 자연보호 원칙들이 정립되었다. 알고 보니 괴링의 머리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한스 클로제의 공적도 아니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인데 애초에 초안을 작성한 것은 한스 클로제의 동료 베노 볼프 박사였다. 이미 1920년대에 바이마르 공화국을 위해 만든 법안이었다. 다만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가 꾸물거리다가 그만 나치가 집권하여 기회를 놓친 것이다. 유대인이었던 볼프 박사는 관직을 박탈당한 것은 물론 그의 지적 재산을 포함한 재산 전체를 몰수당했다. 그중 자연보호법 법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중엔 수용소로 끌려가 목숨도 잃었다.
오랫동안 한스 클로제가 <독일 자연보호법의 아버지>로 인정되어왔다. 그러던 것이 2006년 독일 자연보호역사 백 주년을 맞아 다각도로 탐구하던 학자들이 그 동안 깊이 감춰두었던 비밀을 밝혀낸 것이다. 결국 괴링의 손을 거치기는 했으나 법 자체는 베노 볼프 박사가 그 시대의 순수한 자연보호 의도를 집결된 것이라 보아도 좋겠다.
괴링이 약탈한 예술품이 괴링의 작품이 될 수 없듯, 괴링이 통과시켰다고 해서 괴링의 자연보호법이 되지는 않는다. 써드스페이스가 문을 닫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후기
나치 독일이 와해되고 나치제국 자연보호법을 그대로 끌고 갈 수 없었기에 사회적으로 여러 해 동안 논란이 지속되었다. 내용이 워낙 좋기 때문에 자연보호가들은 그대로 존속시키길 원했고 나치스의 법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여론이 이에 맞섰다. 사실적으로는 1949년 서독 기본법의 제정과 함께 이에 위배되어 실효를 잃었다. 제국 자연보호법에선 법정 정책구현을 위해 사유지를 보상 없이 몰수할 수 있다고 규정했는데((이에 기초하여 유대인들의 부동산을 모두 몰수)) 연방공화국 탄생과 함께 제정된 기본법에 위배되어 해당 조항이 삭제되었다. 1958년, 연방헌법재판소에서 판결하기를 연방법 고유의 프레임워크법 범주를 넘어섰기 때문에 연방법으로는 적합치 않으나 각 연방주에서 이를 적절히 수렴하여 쓸 수는 있다고 했다.
서독에선 오랜 산고를 겪은 뒤 1976년 연방자연보호법이 탄생했다. 동독은 1954년 일찌감치 국토경관 관리법을 제정했고 오스트리아는 1997년에야 새로운 자연보호법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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